2019년 기해년, 아차산에서의 소망 빌기!
상태바
2019년 기해년, 아차산에서의 소망 빌기!
  • 광진투데이
  • 승인 2019.01.14 15: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정 수 /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한정수 /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빌다, 바란다는 의미를 갖는 한자로는 원(願), 망(望), 도(禱), 기(祈), 구(求), 염(念) 등이 떠오른다. 무언가 원하는 상태가 이루어지거나 되기를 바랄 때 이들 글자를 조합하여 단어를 만들 수 있다.
예컨대 소원(所願), 소망(所望), 기원(祈願), 기도(祈禱), 염원(念願), 기대(期待), 기구(祈求), 기망(期望)?기망(企望), 기앙(企仰)?기앙(期仰), 희구(希求), 희망(希望) 등이 있다.
새로이 떠오르는 기해년 새해의 차갑지만 뜨거움을 품은 빛을 받으면서 우리는 이러한 단어들을 넣어 올 한해의 꿈을 말한다. 아무래도 그 중, 가장 큰 것은 건강이고, 다음은 여러 가지로 나뉘게 된다. 1월 1일의 처음 떠오르는 해는 그래서 중요하다.
올해는 간지기년으로 기해(己亥)년이고, 소위 '황금돼지의 해'이다. 그렇지만 사실 12년 전인 2007년에도 그 해를 600년 만에 돌아오는 정해(丁亥)년 붉은돼지의 해라 하였다. 천간의 병(丙), 정(丁)은 오행 중 화(火)의 기운을 가지며 붉은색이 상징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를 확대해 황금돼지의 해라고 한 바 있다. 
올해 기해년의 기(己)는 오행의 색 기운으로는 무(戊)와 함께 황(黃)에 해당한다. 해(亥)는 12지 중 돼지를 뜻하므로 간단한 풀이로는 올해가 황금돼지의 해에 더 가깝다.
황색은 중앙의 색이자 중심, 혹은 모든 것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오행으로는 토(土)에 해당한다. 제왕을 뜻하는 기운이자 색이다. 여기에 돼지 해(亥)는 어떠한가? 12지(支) 가운데 해(亥)는 마지막 12번째에 있다. 끝에 있기 때문에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뜻하는 면도 있다. 음력 10월이 해월(亥月)이고 11월은 자월(子月)이다. 진시황제 때나 한나라 초에는 이 해월을 세수(歲首) 즉 한 해의 첫 달로 표기하였다. 그렇지만 한 무제 때에 역법을 재조정하면서 인월(寅月) 즉 현재의 음력 정월을 세수로 고정하게 된다. 요컨대 돼지가 갖는 의미가 끝이자 시작에 있다는 점을 읽을 필요가 있다.
돼지는 우리에게 있어 어떠한 것을 은유하고 상징할까를 보자. 일단 이미지 상 돼지는 더럽다 느껴지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에 갇혀 사육당하는 돼지를 떠올려서 그렇지 사실은 자신의 몸 관리를 아주 잘하는 동물이다. 잘 먹고 소화하고, 움직이며, 10마리 전후의 새끼를 낳고도 건강한 것은 이를 말해준다. 그리고 그 생김새나 생활 등으로 인해 건강과 재물, 복,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동물이 되기도 하였다. 돼지꿈을 꾸면 우리는 조용히 아무에게도 꿈 이야기를 하지 않고 복권을 사던 때가 있었다. 돼지가 품에 안겨 오는 꿈을 꾸면 태몽으로 여겼다.
이렇게 본다면 돼지는 사실 신성한 동물이다. 현재 우리가 아는 돼지가 되기까지 오랜 기간 개량되어 왔으나 그 처음을 보면 하늘에 제사를 올릴 때 희생 제물로 쓰였다. 돼지의 희생으로 소망을 이루고자 한 바가 있었던 것이다. 고구려 때, 하늘에 대한 희생제물을 넘어 도읍을 정하는데 그 역할을 한 바 있고 산상왕과 주통촌에 사는 여자와의 인연을 엮어주었다. 태조 왕건의 조부 작제건은 늙은 여우로부터 용왕을 구해 준 후 금으로 된 돼지를 선물로 받았다. 이때 칠보와 버드나무로 된 지팡이, 돼지를 함께 받았으며, 용왕의 딸 용녀와도 혼인하였다.
특히 이 돼지는 송악 남쪽 기슭에 드러누워 고려왕실의 뿌리가 되는 터를 찾는데 기여했다. 이후 풍수형상에서 돼지가 누운 곳은 명당으로 여겨지게 되는데, 예컨대 '와돈지처(臥豚之處)'가 이를 뜻하였다. 태조 이성계와 관련한 도참에는'목자(木子)가 돼지를 타고 내려와〔木子乘猪下〕나라를 세운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앞서 돼지가 태조 왕건 및 고려왕실과 연결된 상징물로 여겨졌기에 '돼지를 타고 내려와'라는 표현을 읽게 된다. 이처럼 돼지는 새로운 시작을 뜻함과 동시에 신성함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신성한 돼지 관련 이야기가 이처럼 전해오는 반면 우리가 복으로 여기는 돼지꿈 이야기는 그리 많이 전해지지 않는다. 해, 난초, 밝게 빛나는 구슬, 신인, 용, 들깨나 해바라기, 큰 뱀, 큰 잉어, 기린 등은 역사 사료에 위인의 태몽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돼지꿈 관련 내용은 재물이나 다산 등 세속적인 것과 관련되어서인지 필자의 과문 탓인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다만 돼지가 속해 있는 십이지신의 경우 이미 신라 때부터 탑에 새겨지고 무덤의 둘레석으로 세워져 십이지의 활용을 엿볼 수 있다. 김유신묘가 대표적이다.
드물지만 사찰 건축물에 돼지상이 세워진 사례가 있다. 불국사 경내 전각 중 극락전(極樂殿)은 조선 후기 영조 때 중창되었는데, 같은 시기에 올려졌을 것이라 추측되는 황금색 돼지가 2007년 2월 초 무렵 한 관광객에 의해 발견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당시 황금돼지해라 하여 사람들이 황금돼지로 새해 인사를 하고 있을 때 불국사에서 황금돼지라는 복돼지 상이 발견되었으니 기이한 일로 여겨졌고, 이는 방송을 통해서 널리 알려져 현재는 관광상품화 되었다. '극락전 福돼지 像'이 이것이다.
극락정토의 세계를 염원하는 사찰 전각에 부귀와 재화, 좀 세속적으로는 탐욕(貪欲)을 상징할 수 있는 돼지를 올려놓은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부귀재화를 기원하는 중창에 참여한 목수 중 누군가가 극락전 현판 뒤에 몰래 얹어놓고 스스로의 영달을 바래서였을까? 분명한 기록이 없어서 알 수는 없지만, 현판 뒤 숨겨진 복돼지를 통해 세속적 희망을 이루고 극락정토에 다다르기 위해 자비를 베풀어 진정한 복을 이루라는 심오한 뜻도 새겨볼 수 있겠다.
그런데 궁궐의 월대로 와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흥선대원군의 주도 하에 중창된 경복궁 근정전 월대를 보자. 근정전은 정전(正殿)이라 하여 상하월대 위에 전각을 놓아 규모와 높이로 위상을 나타냈다. 여기에는 황룡과 봉황을 포함하여 사신상과 십이지상이 조각되어 우주를 상징화하였다. 그런데 십이지 가운데 유독 개띠상과 돼지띠상만이 제외되어 있다. 단지 개, 돼지라서 제외되었을까? 영조 때 실학자 유득공은 돌로 된 암수 개가 있고 암컷에게는 새끼 한 마리가 젖을 물 듯 안겨 있다 기록하였다. 서수로 봐야 할지 개라 해야 할지 보는 눈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전히 돼지는 없는 것이다. 천한 동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은 십이지신은 모두 함께 있어야 완벽하기 때문에 어울리지는 않는다.
이 시점에서 다시 봐야 하는 것이 잡상이 아닐까 한다. 근정전 지붕 추녀마루를 보면 잡상이 있다. 잡상은 대체로 순서로 본다면 앞에서 세 번째 있는 상을 저팔계로 읽는다. 돼지가 나쁜 기운을 막기 때문에 이렇게 올려놓은 것이라 해석할 여지는 있지만 그야말로 견강부회적인 해석임을 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돼지꿈과 돼지가 상징하는 건강과 복은 우리 민간에 면면히 내려져 왔다. 제삿날을 정할 때 간지기일로'亥'가 들어간 날로 잡은 것이 이것이다. 태몽으로서 부귀재화의 꿈으로서 돼지는 우리와 가까지 있는 것이다.
현재는 음양력 즉 우리가 익히 아는 음력으로 치면 아직 12월이다. 옛날로 치면 아직 새해가 되지 않았다. 서력(西曆) 2019년 1월 1월은 지났지만 진정한 기해년 정월 정단(正旦)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황금돼지의 기운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있다. 설날이기는 하지만 부지런히 움직여 해 뜰 무렵 아차산에 올라 황금돼지의 기운을 온전히 느끼는 시간을 가져 강복(康福)을 희망해 보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