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휴의 귀촌일기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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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휴의 귀촌일기 16
  • 노원신문 백광현 기자
  • 승인 2016.12.2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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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 묘소를 다녀오다

서울에서‘절친’이 왔었다.

30여 년간 서로의 소리를 정확하게 감지하는 지음(知音)이다. 이 산골에 짐을 풀자마자 바로 뛰어내려왔고, 내가 서울엘 가면 내 집처럼 드나드는 곳이 그 친구의 집이다. 나의 귀촌을 적극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나의 일상을 무한 동경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도인처럼 무심한 듯 말한다. “이 산자락에서 내려다보이는 섬진강변에 반야용선(般若龍船;어지러운 세상을 넘어 피안의 극락정토에 갈 때 탄다는 배)을 매어놓았으니 언제라도 오소서.” 함박미소 머금은 그녀의 가자미눈을 마주하는 즐거움 나 또한 놓치지 않는다.

통영 미륵산 기슭에 있는 대하소설‘토지’의 작가 박경리(1926-2008) 선생 묘소에 갔다. 이곳에서 한 시간 남짓 갈 수 있는 거리라 늦가을의 여행길로 아껴두었던 곳이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선생의 유문이 늘 가슴에 남아있었기에 길을 나섰다. 가는 내내 이제 우리도 버리고 갈 것을 정리해야 하는데, 왜 이리도 누덕누덕 들러붙기만 하는지 모르겠다며 자신을 탓했다. 욕심과 탐욕, 집착의 덫에서 벗어나야 반야용선에 오를 수 있을 텐데…. 서로 말은 잘한다면서 허허롭게 웃었다.

‘한국의 나폴리’라는 통영은 바다의 땅이다. 7년 전쟁(임란, 정유재란)이 끝나고 경상, 전라, 충청의 삼도 수군통제영이 안착되면서 통제사가 상주하는 병영을 약칭으로 통영이라 했다. 한때는 이순신 장군의 시호를 따서 충무시라고도 했었다. 역사에 길이길이 남는 장군의 호국정신과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풍광이 많은 예술인들을 키워 낸 예향의 도시다.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시‘행복’)’로 시작하는 청마 유치환 선생을 선두로‘봉숭아’의 김상옥,‘꽃’의 김춘수 시인을 비롯하여 오페라‘심청’으로 세계적인 작곡가의 반열에 오른 윤이상 선생의 예술혼이 깃든 땅이다. 최근에는 박경리 선생이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미륵산 자락으로 귀향하여 영면 중이라 더욱 예술의 향기가 깊고도 풍부하다.

우리 문학사의 큰 봉우리인 박경리 선생은 통영, 원주, 하동이라는 산야를 아우르며 우리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출생지인 통영을 자양분으로 하여 강원도 치악산 기슭의 원주에서 26년 만에 ‘토지’의 막을 내렸다. 그 여광으로 내가 살고 있는 하동이 문학의 수도라는 자긍심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해마다 가을이면 토지의 무대였던 하동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 댁에서 문인들과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 토지문학제라는 큰 잔치를 펼친다. 나 역시 아름다운 여생(麗生)을 준비할 때 평사리 들판의 바람이 수시로 가슴을 파고들며 내가 빨리 짐 꾸리기를 재촉했다.

따사로운 햇살을 길라잡이 삼아 통영으로 들어섰다. 먼 바다의 윤슬은 더욱 반짝이며 우리를 환영하는 듯 했기에 눈은 자꾸 차선을 벗어나 바다로 향했다. 애정 어린 독설로 벌이던 ‘썰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는데, 내비게이션은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안내를 종료했다.

벽돌색으로 부드럽고 단아하게 세워진 기념관을 뒤로 하고 묘소 가는 길로 들어섰다. 야트막한 동산을 향해 산책하듯 천천히 오르니 동백나무가 도열하듯 우리를 맞았다. 두텁고 윤기 반질한 잎들은 꽃보다 아름다웠지만 성급하게 흰 꽃을 피운 나무도 있었고, 그 옆에는 철쭉도 덩달아 꽃이 피고 있었다. 어디든‘튀는’녀석은 있다면서 우리는 눈빛을 맞추며 웃었다.

묘비도 그 흔한 석물 한 점 없이 봉분만 투명한 햇살 속에 선정 삼매에 들어있었다. 간혹 불어오는 솔바람 바닷바람은 혼유석에서 잠시 머물다 감나무 공원 쪽으로 사라져갔다. 그 바람의 흔적들이 홀가분하게 버리고 간 선생의 체취인 양 웅숭깊은 울림으로 우리에게 전해왔다.‘왜’라는 질문에서 출발하고,‘왜’라는 질문이 문학을 지탱하는 골자라는 강렬한 메시지는 결국 인생에 대한 찬미가 아니었을까. ‘토지’속에 등장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의 갈등과 모순, 운명에 저항하면서 이뤄내는 지난한 과정이 우리의 삶이리라. 뿐만 아니라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세심하고 세밀하게 그려낸 인간과 삶에 대한 탐구가 고개를 절로 숙이게 한다.

긴 침묵을 깨고 차에 오르면서 우리는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자축했다. 축하연은 바다가 보이는 밥집에서 거하게(?) 하자며 의기투합했다. 하이파이브를 하자 갑자기 시장기가 돌았다. ‘멀리서 벗이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하는 귀촌의 명문을 또 인용하며 가속 페달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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