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매체로 거른 깨달음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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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체로 거른 깨달음의 노래>
  • 성동신문
  • 승인 2019.05.3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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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옹거사(和翁居士) 이계묵(李啓默)

소(牛)를 찾아 나서다

망망한 풀을
헤치고 가서 찾는데

물은
넓고 산은 멀어

길은 다시 깊구나!
힘은 다하고

마음도 피로한데
다만
들리는 것은 늦가을

단풍나무에
매미 우는 소리 뿐이네.

茫茫撥草去追尋 水闊山遙路更深
力盡神疲無處覓 但聞楓樹晩蟬吟
                        <尋牛頌>

화옹거사(和翁居士) 이계묵(李啓默)

이 게송(偈頌)은 십우도(十牛圖) 또는 심우도(尋牛圖)에 나오는 첫 번째(第一頌) 심우송(尋牛頌)입니다. 십우도(十牛圖)는 북송말(北宋末) 정주(鼎州) 양산사(梁山寺)에 살았던 곽암사원선사(廓庵師遠禪師)가 각단(各段)마다 그림과 함께 칠언절구(七言絶句)로 수행(修行)의 단계를 시(詩)로 읊어 놓은 작품입니다. 보통 십우도(十牛圖)라고 하지 않고 심우도(尋牛圖)라고 합니다. 소를 찾는 다는 것입니다, 소는 우리 불성(佛性)에 비유 한 것입니다. 법화경에 나온 말입니다, 법화경에 보면

장자가 밖에 나갔다가 집에 와보니 집에 불이 난 것입니다. 불난 것도 모르고 어린 세 아들은 불집 속에 노는데 정신 팔려서 깜깜 소식이니 어쩌겠습니까?

그래서 장자는 소리를 내어 세 아들을 부릅니다. 불났다 불! 어서 나오라! 그러나 아이들은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방편으로 애들이 좋아하는 수레가 있다고 부릅니다, 그게 바로 우거(牛車) 녹거(鹿車) 양거(羊車)입니다. 부처님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삼계(三界)가 화택(火宅)이라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사는 이세상이 꼭 불난 집 같다는 말입니다, 오욕(五慾)의 불입니다, 집에 불이 났는데 불난 줄도 모르고 집안에서 노는데 팔린 아이들 같다는 말입니다. 오욕 락(五慾樂)에 빠져서 꼼짝도 안하는 불난 집에 어린아이 같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거(牛車)는 소 수레입니다. 소는 백우(白牛)를 말합니다. 백우는 흰 소를 말합니다, 불교에서 백우(白牛)는 일승법(一乘法)을 말합니다, 일승은 최상승의 진리 법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곽암사원선사가 깨달음에 이르는 열 가지 단계로 심우도(尋牛圖)를 지은 것입니다, 심우 도는 마음을 닦아 깨달음에 이르는 노래입니다. 곽암선사는 임제종(臨濟宗) 양기파(楊岐派)에 속하는 스님입니다. 양기방회(楊岐方會)-백운수단(白雲守端), 오조법연(五祖法演) 대수원정의 법을 이은 스님입니다. 벽암록(碧巖錄)을 쓴 원오극극(圓悟克勤)선사도 오조법연 문하(五祖法演門下)이니까 원오극근선사가 법계로는 백부(白父)가 됩니다, 또 간화선(看話禪)을 창안한 대혜종고(大慧宗杲) 선사는 법계로 보면 종형이 됩니다, 당시로 보면 정말 쟁쟁한 거장(巨匠)들입니다. 심우 도는 벽암록이 출판된 직후 나온 걸로 되어있습니다, 각단마다 그림과 함께 소를 찾는 대목부터 입전수수(入廛垂手)까지 칠언절구(七言絶句) 선시(禪詩)로 자세하게 읊어 놓았습니다. 심우도(尋牛圖)는 서(序).송(頌). 화(和).우(又).로 엮어져 있어 이해하기 쉽고 마음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는 가르침입니다.

선문(禪門)에서는 옛 부터 애송(愛頌)하는 게송(偈頌)입니다. 서(序).화(和).우(又)는 생략하고 송(頌)만 들어서 소개 할까 합니다. 왜냐하면 인터넷이란 특수성 때문입니다, 그러면 송(頌)을 한번 볼까요? 여기서 망망(茫茫)은 번뇌 망상(煩惱妄想)으로 보면 됩니다. 처음 우리가 마음공부를 할 때 그렇지 않습니까? 앉아 있어보면 별의별 잡념망상이 다 떠오릅니다, 소 찾는 목동(牧童)이 산속으로 들어가 소를 찾은데 소는(佛性) 보이지 않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망망한 잡초(번뇌) 뿐이니.

마음에 대비하여 읊은 것입니다. 소 찾는다고 하루 종일 온 산천을 다 헤맸으니. 물은 넓고 산은 멀 수밖에 없습니다, 숲속으로 소가 도망을 갔으니, 찾자니 망망할 게 아닙니까? 여기서 물은 넓고, 산은 멀다, 라고 하는 것은 애욕(愛慾)과 인, 아상(人, 我相)을 말 한 것입니다.

물은 애욕입니다, 산은 아상(我相) 인상(人相) 사상(四相)을 말한 것입니다. 소를 찾으려면 산 넘고 물을 건너야 찾을 것 아닙니까? 마음공부도 마찬가지 입니다. 애욕(愛慾)과 사상(四相)이 끓어져야 합니다. 겹겹이 산이고 물이듯이 마음공부도 안으로 반조하면 번뇌 망상과 사상뿐입니다. 통 방향을 잡을 수 없듯이 잡념망상이 쉴 사이 없이 괴롭힙니다, 소 찾는 목동과 똑 같습니다. 소는 보이지 않고 보이는 것은 산이요, 물 뿐이니. 지칠 대로 지친것입니다. 그래서 퍽 주저앉고 보니, 쌓인 피로가 밀려 온 것입니다, 찾을 힘도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힘이 다 하고 피로하여 찾을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마음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앉아 있어보면 망상 아니면 잠입니다. 화두는 어디 갔는지 흔적도 없고. 짓고 부수고. 짓고 부수고. 별의별 온갖 잡념 망상을 하다 보면 피곤하니까? 생리적으로 또 잠이 오죠? 잠자면서도 잠 속에서 꿈을 꿉니다. 그것은 혼 침 속에 도거라는 합니다. 잠자면서도 망상 핀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언제 화두(牛)가 보입니까? 지쳐서 앉고 보니, 다만 들리는 것은 나무 가지에 매미우는 소리뿐이다. 소 찾은 사람은 소를 찾아야지 매미 소리만 들어서 되겠습니까? 목적달성(目的達成)이 안 된 것입니다. 마음공부 하는 사람은 불성(佛性)을 깨쳐야지 망상 잡념 속에 살아간다면 별 볼일 없는 일생이 되고 맙니다. 이 게송은 곽암선사의 심우송 중(尋牛頌中) 첫 번째 단계인 소 찾는 심우(尋牛) 대목이었습니다. 송구(頌句)를 마음공부에 반조(反照)하십시오. 마음공부에 진척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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