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송민순 회고록 왜 말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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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송민순 회고록 왜 말썽인가?
  • 성동신문
  • 승인 2016.10.2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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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길랑/천주교 서울평협 전 대외관계위원장
명길랑/천주교 서울평협 전 대외관계위원장

송민순 전 장관이 《빙하가 움직인다》는 회고록을 썼는데 회고록 일부에 대해 시끄럽다. 10월 19일 필자는 이 책을 구입하기 위해 교보문고에 갔다. 직원이 '단체주문'이 밀려 재고가 없다며 미안해 했다. 발송작업 중인 이 책을 잠깐 볼 수 있었다. 문제의 부분을 보니 언론 보도와 별 차이가 없었다.

2007년 10.4 남북 정상 선언 후 11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 우리 정부가 '기권이냐, 찬성이냐'를 놓고 11월 15일 안보실장 주재로 청와대 서별관에서 회의가 진행됐다. 문재인 비서실장도 참석했다. '기권'이 다수 의견이었으나 송민순 외교장관이 '찬성'을 고수했다. 이 회의에 참석한 관계자는 '기권'을 다수 의견으로 적고 송 장관의 '찬성' 의견을 소수 의견으로 부기해 대통령께 보고했다고 이 날 회의록은 기록하고 있다. 안보정책회의는 논의 결과를 대통령한테 보고할 뿐 결정하지 않는다. 결정은 대통령의 권한이다.

11월 16일 오후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 대통령 관저에서 비공식 회의가 있었다. 통일부장관, 외교부장관, 안보실장, 비서실장이 참석했다. 이재정 통일부장관과 송민순 외교부장관이 '기권이냐, 찬성이냐'를 놓고 격론을 벌렸다. 회의 뒤 드러낸 의중이 '기권'쪽이었다. 이점 양쪽이 인정했다. 송 전 장관은 “격론을 벌렸지만 결론을 낼 수 없었다”고 회고했지만, 다른 참석자들은 “기권 결정”이라고 말했다. 당시 청와대 연설비서관으로서 배석했던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1월 16일 브리핑에서 “대통령께서 송 장관의 말이 맞지만 이번엔 '기권'으로 갑시다”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11월 18일 청와대 서별관에서 다시 비공식 회의가 열였다. 송 전 장관은 이 회의가 '결의안 표결 방침을 재론하는 자리'라고 회고한 반면, 다른 참석자들은 “왜 이미 결정된 사항을 자꾸 문제 삼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는 회고록(451쪽) 내용처럼, '재논의'회의로 여기지 않았다.

송 전 장관은 회의록에서 11월 18일 논란이 계속되자 “국정원장이 남북 채널을 통해 의견을 직접 확인해 보자고 제안”했고 “문재인 실장이 일단 남북 경로로 확인해 보자고 결론을 내렸다.”고 적고 있다. 이재정 통일부장관은 “이미 결론을 냈는데 북한 입장을 왜 물어보느냐”고 반박했다. 김경수 의원은 “11월 18일 회의의 '기권결정'은 10.4정상회담 직 후 다양한 남북대화가 이루어진 시점에 북한에 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위 내용을 정리해 보면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기권 결정을 내리기 전에 북한의 의견을 물어 보았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재정 당시 통일부장관과 김만복 국정원장 등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했던 많은 관계자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 정부의 기권 입장은 송 전 장관이 말한 11월 18일이 아니라 이미 11월 15일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결정이 났으며 11월 16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해 최종 결정이 됐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북한이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온 점을 감안하면 우리 정부가 북한의 의견을 물어보고 기권을 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우리 정부가 기권을 하면 그것으로 북한의 입장을 배려한 것으로 끝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북한에게 물어보고 결정했다'는 뜻은 이 결의안에 '찬성'해도 좋으냐고 물었다는 것인데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 신경이 날카로운 북한에게 이런 질의를 할 만큼 우리 정부가 아둔한 짓을 했다고 보지 않는다.

송민순 당시 외교부 장관이 왜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을 주장했을까. 이 결의안은 미국이 주도한 것이기 때문에 한미협의가 잘 돼야 남북문제도 잘 된다고 본 것이다. 선 대미 후 대북을 말한다. 이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남북문제의 당사자로서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미국의 동의를 구해온 것과는 다른 미국 의존적외교라 하겠다.

여당 대표가 “북한과 내통했다”고 했는데 내통의 역사를 보자.
박정희 정부때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다. 이 과정에서 1971년 남북적십자사회담 사무국 운영부장을 맡은 정홍진은 3월에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방북전에 평양을 비밀리에 방문해 안전 및 절차 등과 관련해 실무회담을 했다. 그 후 이후락 중앙전보부장이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해 7·4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 냈다.

1985년 5월 장세동 안전기획부장은 전두환 대통령의 친서를 지니고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을 만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동안 일제하의 항일투쟁을 비롯하여 40년간 김 주석께서 북한 땅을 이끌어 오시고, 그동안 평양의 우뚝 솟은 의지를 보고 이러한 발전을 위하여 심려해 오신 점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다시 드립니다. 대통령 각하께서는 비록 체제와 이념은 다르지만 주석님의 조국애와 민족애를 높이 평가하고 계십니다.” 박정희 정부의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회고록을 통해 김일성이 진짜라는 사실을 고백했다면, 전두환 정부의 안전기획부장은 현직으로 김일성의 면전에서 그의 항일투쟁에 대해 존경과 감사까지 드린 것이다. 그 자리에 안전기획부장 특별보좌관 두 명이 함께 있었는데 박철언과 강재섭이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6년 4.11총선을 앞두고 북풍이 불기 시작했다. 4월 5일과 6일 북한이 난데 없이 판문전 공동경비구역(JSA) 북쪽 지역에 500여 명의 북한군을 진입시켜 무력시위를 벌리고 박격포 진지를 구축했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4월 8일자에 “총선을 앞두고 하락하는 한국 집권여당의 지지도가 북한의 비무장지대 병력투입으로 유권자들이 안보위기를 느끼면서 반등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것은 김영삼 정부가 북한에 휴전선에서 총풍을 일으켜 달라는 내통의 결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큰 공헌을 하고,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국민에게 심어 준 박정희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지지도 1위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한때 공산당원이었다.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과거를 말하지 않는다. 그 분의 딸이 대통령을 하고 있는데 대통령 소속 정당의 국회의원들이 종북·좌빨을 말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종북·좌빨 그만 찾고 국민을 위한 정치나 제대로 하시라.

제1야당 대표가 “회고록을 믿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는데 회고록도 회고록 나름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쓴 '처칠 회고록'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소련 흐루시초프 회고록은 전문 교수들의 자문과 검증을 받았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퇴직 후 쓴 외국 정상들의 회고록도 역사적 문헌으로 인정받고 있다.

김대중 자서전은 하버드 대학 교수가 번역중이고, 국내에서도 영문판 출판을 진행하고 있다. 임동원 전 장관의 회고록 〈피스메이커〉는 미국 출판사가 번역 출판해서 판매 중이다. 이런 상황은 이들 회고록이 역사적 가치가 있고 독자들의 관심을 고려한 것이다. 자서전에 대해 함부로 폄하하지 마라.

여야를 막론하고 비생산적이고, 국민들의 구토증을 일으키는 언행을 멈춰라. 국회의원답게 금도(襟度)를 지키고 월급 값이나 제대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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