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인터뷰-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지켜온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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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인터뷰-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지켜온 사람들
  • 강서양천신문사 남주영 기자
  • 승인 2017.03.09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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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와 풀뿌리들 모두 강서의 역사였다

 

공직 생활하며 지역 문화재 지켜온 강서구 향토사학자 손주영 씨

강서구 향토사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손주영 씨. ‘어떻게 향토사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느냐’고 묻자 손주영 씨는 손사래를 치며 “사람들이 그냥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처럼 일찍 강서의 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또 오랫동안 마음과 행동이 함께하는 애정 어린 노력을 기울여온 이도 없었다.

손주영 씨와 강서와의 인연은 1980년대에 강서구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공직생활 전, 사학을 전공하고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던 그는 원래는 입시 학원을 할 생각이었다. 주말마다 자전거를 타고 강서 일대를 누비며 학원 자리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학원 자리 대신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강서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의 흔적들이었다.

“당시에는 이 근방이 모두 논밭이었지요. 그런데 여기저기 역사적 의의가 있는 유적이 보이고, 인물들의 흔적도 보였어요. 그냥 두기엔 아깝다 싶어 본격적으로 문화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봉제산을 수없이 오르고, 방치된 무덤의 기원을 찾아 양로원에 가서 어르신들 말씀도 들어보았지요.”

손주영 씨 덕에 강서구의 문화재로 지정된 유적만 해도 다섯 손가락을 넘는다. 무엇보다 손주영 씨의 가장 큰 공적은 지금은 강서구의 대표적인 역사 유물로 알려진 ‘허준’의 흔적을 찾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에는 <허준> 드라마가 제작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허준이라는 인물을 잘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하지만 동의보감의 저자가 허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손주영 씨의 눈에 하나 둘 강서구 내의 허준 관련 유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감자 덩굴 하나를 캐면 여러 개의 감자가 줄줄이 올라오듯 사방에서 허준의 흔적이 보였다. 규장각을 비롯해 여러 대학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근거를 파악해 보니, 허준이 강서구에서 태어났음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이미 허준의 고향이 파주나 단양이라는 학설을 펼친 사람들도 있었던 만큼 강서가 허준의 고향이라는 주장이 쉽게 받아들여지진 않았습니다. 지금 허준박물관이 강서구에 세워지고 허준의 고향으로 알려지기까지는 정말 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지요.”

강서구지(區誌)가 만들어진 데에도 손주영 씨의 공이 컸다. 당시 서울 최초로 영등포구가 구지를 만들자, 강서구도 강서구지를 만들기 위해 전문가에게 제작을 의뢰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문가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강서구의 역사는 철거민의 이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구지를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어요. 이 땅에도 태곳적부터 굴러다니는 돌멩이와 풀뿌리가 있고, 사방에 역사의 흔적이 쌓여 있다는 걸 저는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의 노력 덕분에 강서구의 역사에 관한 많은 자료가 모여 강서구는 1992년 서울의 자치구 중에서 두 번째로 강서구지를 발행할 수 있었다.

이제 강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손주영 씨의 생각은 <우리고장의 역사와 민담>, <강서의 역사·문화·문화재>, <강서 팔경 한시로 그리다> 등 그의 저서에 온전히 담겨 세상에 나와 있다. 향토사학자가 지역에 기반해 쓰는 책은 특별하다.

그처럼 따뜻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찾아내주고 또 귀기울여주는 이가 없었다면, 지금쯤 수많은 다세대 건물과 높은 아파트 아래에 묻혀서 많은 이야기들이 머물 곳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이 이야기들이 향토사학자의 책 속에 머물 수 있는 덕분에 역사는 수많은 세대 사이에서 방향을 잃지 않고 보존될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은 참 바빠요. 집이라고 해봤자 하루 일을 마치고 잠을 자는 곳이고, 마을은 베드타운이 될 뿐이죠. 하지만 내가 사는 곳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애향심은 저절로 생겨납니다. 저 역시 강서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답니다.”

공직을 떠난 지 오래지만 여전히 그곳에서 받았던 도움과 애정을 잊지 않고 감사히 가슴에 새기고 있는 손주영 씨. 지금은 강서문화역사탐방 모임에서 한 달에 한 번 역사탐방을 떠나며 계속해서 역사의 의미와 가치를 배우고 또 즐기고 있다. “이제는 가진 재주로 봉사할 생각 뿐”이라는 손주영 씨의 발자취는 앞으로도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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