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곶이목장과 청계천 그리고 애달파서 아름다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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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곶이목장과 청계천 그리고 애달파서 아름다운 사랑
  • 성동신문
  • 승인 2020.11.11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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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의 엉뚱 발랄 성동 이야기> ⑪ 석우(石牛)와 천우(天牛)

○ 소재지: 서울시 성동구 마장동

석소가 있는 청계천 풍경, 서성원ⓒ
석소가 있는 청계천 풍경, 서성원ⓒ

 ◆ 살곶이목장을 관리한 사복시

한양 도성 동쪽에 살곶이 목장이 있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국립목장입니다. 지금의 성동구 땅입니다. 이곳은 군마를 기르기 위한 목장이었습니다. 살곶이목장은 사복시(司僕寺)라는 관아에서 관리했습니다. 사복시 관원은 정(正:정3품) 1명과 부정(副正:종3품) 1명, 첨정(僉正:종4품) 1명, 판관(判官:종5품) 1명, 주부(主簿:종6품) 2명을 두었습니다. 마의(馬醫) 10명을 비롯해 안기(安驥:종6품) 1명, 조기(調驥:종7품) 1명, 이기(理驥:종8품) 1명, 보기(保驥:종9품) 1명과 견마배(牽馬陪) 10명 등도 있었습니다. 

조선 성종 때입니다. 김삼수는 사복시(司僕寺) 판관입니다. 사복시 관리는 궁궐의 수레와 말과 기물 승여(乘輿), 마필(馬匹)을 챙겨야 합니다. 까닥 잘못하면 임금의 눈 밖에 납니다. 그래서 궁에서 일을 잘 챙겨야 합니다. 살곶이목장도 사복시 소관입니다. 돌봐야 합니다. 하지만 판관쯤이면 이른 아침에 말을 타고 나섭니다. 살곶이목장에 도착해서 초지와 마사를 말을 타고 한 바퀴 돌아보고는 노을을 안고 한양으로 돌아가곤 하죠. 왕이 목장을 순시할 때만 하루 전에 와서 묵어 갈 뿐입니다. 그런데 김삼수 판관은 달랐습니다. 

◆ 살곶이목장에서 만난 낭자 이지와 말구종 마이

김삼수가 살곶이목장에서 하루나 이틀을 묵고 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목장 일꾼과 관리자들은 불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도 귀가 있어 김판관이 그러는 까닭은 알고 있었습니다. 궁에서는 힘이 있어야 버텨냅니다. 그는 힘에서 밀려난 관리였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던 것입니다. 살곶이목장 일꾼들은 그가 머물면 알아서 기었습니다. 

그해 봄, 김삼수가 목장에 와서 몸져눕고 말았습니다. 가족들은 한양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김삼수는 가지 않겠다고 버텼습니다. 가족들은 애가 탔습니다. 부인은 부모님을 모시고 있어 남편에게 갈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이때 셋째 딸이 간병을 자청하고 나섰습니다. 이지였습니다. 

이지는 준비해온 탕약을 달이면서 아버지를 돌봤습니다. 목장 둘레의 배봉산과 아차산에 진달래가 발갛게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마이는 김판관에게 긴급히 알려야 할 일이 있어서 관사에 왔다가 이지를 보게 됩니다. 마이는 한눈에 반합니다. 시골에서 보지 못한 뽀얀 피부와 맑은 눈동자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였습니다. 마이는 일을 핑계 삼아 김판관이 머무르는 관아에 자주 들락거렸습니다. 

이지는 마이가 고마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움을 요청할 일은 마이에게 부탁했습니다. 언젠가는 잉어가 환자에게 좋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날 저녁 무렵, 마이는 짚단만큼이나 큰 잉어를 버들가지에 꿰어서 들고 나타났습니다. 이지의 얼굴이 환했습니다. 이에 용기를 얻은 마이가 말했습니다.

“아가씨, 내일 개천(청계천)에 가실래요. 꽃구경하게요.”
그러자 이지가 묘하게 웃는 얼굴로 말했습니다.
“두 마리 말은 필요 없고, 다섯 소를 데리고 오세요.”

마이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으나 그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습니다. 마이는 말을 돌보는 총각입니다. 처음엔 허드렛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말이 목초를 꺼리거나 시름시름 앓을 때, 마이가 해결했습니다. 말의 마음 이해하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목장 사람들은 마의(馬醫)는 아니니까 비슷하게 마이(馬耳)로 불렀던 것입니다. 

어쨌거나 마이는 말구종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런 마이를 말에 빗대어서, 이지가 필요 없다고 거절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왜 소 다섯 마리를 데리고 오라는 거지? 가난한 시골 촌놈이니까 포기하라는 말인가? 말 두 마리면 소 다섯 마리보다 큰 돈인 데 도대체 무슨 말이지?

다음 날, 마이는 개천둑으로 달려나갔습니다. 거기서 이지 아가씨를 만났습니다. 이지의 말은 '두 말 말고 오소'였던 것입니다. 두 사람은 김판관 병구완을 구실삼아 매일 같이 만납니다. 아차산에 진달래가 질 무렵, 마이는 한강이 보이는 목장 언덕으로 이지를 불러냅니다. 

“이 말은 임금이 타게 될 거야. 먼저 타게 해 줄 게.”
이팝나무 하얀꽃이 흐드러질 때 두 사람은 혼인을 약속합니다.

 

진헌마정색도(進獻馬正色圖) 지도, 보물 제1595-1호 목장지도 (牧場地圖) 중 일부(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진헌마정색도(進獻馬正色圖) 지도, 보물 제1595-1호 목장지도 (牧場地圖) 중 일부(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 청계천에 석우가 나타나면 혼인을 허락하겠다.

김판관은 기력을 되찾았습니다. 딸과 함께 개천(청계천)둑으로 산책을 나갈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가 딸에게 말합니다. 
“네 덕분이다. 선물을 하나 주고 싶은데 말해 보거라.”

이지는 망설이다가 입을 뗍니다. 마이와 혼인을 허락해 달라고. 김판관은 가타부타 말없이 흐르는 물만 바라봅니다. 
“저기 개천 바닥에 석우(石牛, 돌소)가 다닌다면 허락해주마.”

이지는 울먹이며 이 말은 마이에게 전했습니다.  그러자 마이는 주먹을 불끈 쥐고 말합니다. 
“돌소라니, 어쩌누”

며칠 후에, 김판관과 이지가 개천둑에 나가서 돌소를 발견합니다. 여러 사람과 함께 마이가 만든 게 분명했습니다. 김판관은 혼인을 허락했습니다. 단, 한양을 떠나서 살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백일홍 핀 여름날 이른 새벽, 등짐을 진 마이와 이지가 김판관에게 큰절을 올립니다. 마이가 장인 김판관에게 말합니다. 

“하늘에 소가 나타나면 장인어른도 나랏님 되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부디 건강하소서.”
언제부터일까. 마장축산물시장 입구에는 하늘소가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장축산물시장의 천우(天牛),서성원ⓒ
장축산물시장의 천우(天牛),서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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