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성의 기초와 실천: 태갑(太甲)의 반성(反省)과 무역(無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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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성의 기초와 실천: 태갑(太甲)의 반성(反省)과 무역(無斁)
  • 성동신문
  • 승인 2020.12.1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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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항석/편집위원
정항석
정항석

무역(無斁)!

'싫증이 나지 않다'라는 뜻이다.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울 때 이러한 말이 얼마나 우리에게 다가올지는 알 수 없다. <書經(서경) 상서(商書) 태갑중(太甲中)>에 출처를 두는 이는 정치에 싫증을 백성이 느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겨울은 누구에게나, 아니 서민들은 몸도 마음도 춥고 시리기만 하다. 아마도 그때도 그랬을 것이다.

때는 지금처럼 날이 추운 십이월 초하룻날(惟三祀十有二月朔)의 일이다. 그 때는 상나라(商 B.C. circa 1600-1046)의 군주, 태갑(太甲 ?-?)이 즉위하고 폭정으로 하남성(河南城) 동궁(桐宫)에 유폐되어 삼년 만에 亳(박)이라는 궁궐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그를 맞는 것은 상나라를 건국할 때 도와준 이윤(伊尹 B.C. circa 1649-1550)과 백성들이었다. 겨울은 춥다. 누구나 아는 것이지만, 태갑이 돌아오는 그 날 모진 동풍(凍風)과 설한(雪寒)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그가 군주로서 적격한 지를 그리고 얼마나 반성하였는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이윤(伊尹)이 백성을 대신하여 태갑(太甲)에게 물었다.

"백성에게 정치를 바르게 할 임금이 없다면(民非后) 능히 서로 바로잡아 주면서 살아 갈 수가 없고(罔克胥匡以生), 또한 임금에게는 편안하게 살아갈 백성이 없다면(后非民) 세상을 다스려야 할 하등의 까닭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罔以辟四方). 이를 아시는지요?"

이윤(伊尹)이 정치의 도리를 일렀다. 정치는 백성을 위한 것이지 지배자로서 군림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것에 재차 언급하였다. 그러자, 백성을 향하여 태갑(太甲)은 손을 이마에 얹고 머리를 땅에 대어 절하면서(拜手稽首) 말하였다.

"하찮고 작은 이 사람이 미처 덕에 밝지 못하여(不明于德), 스스로 못난 짓을 하고(自底不類), 욕망을 좆아 법도를 어기고(欲敗度), 방종함으로써 예를 빗겨가(縱敗禮), 이 몸이 그 죄를 불러들였으나(以速戾于厥躬). 이를 뉘우치고 있다오!"

태갑이 반성의 말로 그 기미를 보이자. 이윤은 쐐기를 박듯이 정치를 행하는 것에 대한 마음가짐을 더 일렀다.

"하늘이 내리시는 (천재지변의) 재앙은 피하여 어기어 볼 수는 있으나(天作孽猶可違), 사람이 스스로 만든 (정치의) 재앙은 결코 피할 수가 없습니다(自作孽不可逭)...!"

하늘 아래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말이다. 이윤의 말을 듣고서 태갑은 지배자로서의 군주가 아닌 늘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개선(改善)하려는 정치가로서의 면모를 한 번 더 드러내었다.

"스승으로 모시지 못하고 그 가르침마저 어긴 탓에(背師保之訓) 처음 미흡하여 이를 따르지는 못했으나(弗克于厥初), 이제라도 바로 잡아 본디가 정착하게 할 덕을 받들어(尙賴匡救之德), 짐의 생이 마치는 날까지 힘을 다하고자 하오(圖惟厥終)!"

젊고 패기에 찬 군주가 이렇게 말을 하자, 나이 많은 이윤은 예를 갖추어 마지막 말을 올렸다.

"그렇습니까! 주공께서 곤궁한 사람들을 자식처럼 아끼신다면(子惠困窮) 백성 모두 주공을 따를 것이고(民服厥命),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니(罔有不悅), 늘 안주하지 않고(無時豫怠), 백성을 대하실 때 공손히 예를 다한다면(接下思恭), 누구라도 정치에 싫증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無斁)."

'누구라도 정치에 싫증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무역(無斁)은 예서 나오는 말이다. 기실, 상나라는 순(舜)임금을 물리치고 단군의 인준을 받아 제우(帝禹)의 하나라(夏朝 B.C. circa 2070-1600)이후에 세워졌다. 묘족과 동이의 후예들이 세운 나라이다. 하여튼, 하(夏)나라의 걸왕(桀王)의 폭정을 보았던 이윤(伊尹)은 탕리(湯履 B.C. circa 1675-1646)을 보좌하여 걸왕을 추방하고 백성들과 함께 상나라(商朝)의 건국에 이바지 하였다. 그렇게 국가를 건설하고도 상나라의 내정은 불안하였다. 탕왕 이후 제왕들의 제위는 짧았고 상나라의 4대 군주, 자용(子庸) 중임(仲壬)마저 재위한지 4년 만에 사망하였다. 그리고 조카인 태갑(太甲)에게 왕위가 계승되었다. 그때까지도 승상은 나이 많은 이윤이 맡고 있었다. 그는 정치가 백성으로부터 멀어지면 인심이 멀어지고 정권은 망하게 된다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그는 여하한 꼼수로 정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어느 왕조와 정권은 망할 수 있다는 것을 재차 역설하였다. <서경(書經)의 탕서(湯誓)>에서 그의 뜻을 전하고 있다.

'하나라 걸왕(桀王)은 백성들의 삶을 고갈시켰고(率遏衆力), 하나라 사회를 갈등으로 부추겨 갈라놓아 그 해악을 이루게 하였으니(率割夏邑)...마땅히...'

백성을 어렵게 한다면(率遏衆力) 어느 정권도 무너진다는 것을 이른 것이다. 이윤과 백성은 즉위 3년 만에 안주 속에서 정치행패를 부리는 태갑을 유폐하였고 그가 반성의 기미를 보이자 다시 제위에 올렸다. 이 과정에서 백성(百姓)도 그리고 태갑(太甲)도 이윤을 비난하지 않았다. 누가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사기(史記)>에는 태갑이 반성하고 군주로서의 면모를 새로 갖추었다(改過自新)라고 전한다.

고대사회에서 백성이 황량하고 추운 곳에 군주를 두고서 '당신이 정말 정치를 잘 할 수 있는가!'를 다그쳤는지는 진정 알 수 없다. 다만, 수천 년 전에 있었던 것을 잊지 않고 기록하였다면 후세에 그 교훈과 가치를 ‘꼭 전하고자’ 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세모(歲暮)가 되면서 거두어야 할 정치의 결과를 돌이켜보면, 과연 한국의 정치는 무엇을 얻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위의 고사에서 곰곰이 되씹어야 할 것들은 많다. 우선, '정치는 필연적인가' 하는 사변적 논쟁을 피한다고 하여도 지배와 군림이 역사를 흐려놓았다는 것은 거부하지 못한다. 건국이후 그리고 근자에 들어 이러한 것들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국민의 갈망과 달리 우리의 정치는 이윤(伊尹)이 말한 것처럼 '사람이 스스로 만든 (정치의) 재앙은 피할 수가 결코 없다(自作孽不可逭)'라는 것을 올해도 목도하고 있다.

예컨대, 법무부와 검찰의 수장 간의 다툼, 이미 7월 15일 이후 가동되었어야 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高位公職者犯罪搜査處)로 인한 여야 간의 공방 등이 그것이다. 주어진 제도의 범위 안에서 그리고 제 자리에서 마땅히 할 것만 한다면 비리를 감추고 가리며 숨긴 것을 찾아 모욕을 주는 법안이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둘러싸고 수개월 동안 '살아 갈 수 있도록 하는 이생(以生)'과는 상관없는 작태를 노출하고 있다.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드러내고 싶은 것인가! 이것이 국민세금으로 봉급과 국회 수당을 받아가면서 할 짓인가! 이는 정치의 추행이며 만행이다.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행패와 다르지 않다.

또한, 알아야 한다. 국민들은 코로나(Covid 19)를 '재앙(天作孽猶?)'이라 여기고도 스스로 재난에 잘 대처하고 있다. 다른 국가에 비하여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피해가 줄어든 것은 정부의 시책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국민들이 서로 바로 잡아주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胥匡). '조심하라고 경계문자'를 보내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볼 수 없으며, 이는 정부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국민이 휴대폰을 구입할 때 국가에서 무상으로 준 것도 아니다. 사적인 것을 공적으로 쓰는 것도 그렇지만, 세금으로 이루어진 '그 돈(?)이라면 더 잘할 민간업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이를 생색내지도 않겠지만 그렇게 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 일을 하라고 세금으로 봉급을 준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코로나는 전세계적 재앙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한국 역시 재앙 속에 사는 것이다. 그 재앙으로 인하여 유래가 없는 재난지원금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이는 서민의 경제가 엉망이 되었다고 판단한 데 따른다. 위기에 따른 각종 단계의 격상과 해제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한국경제는 '가다(go)' 그리고 '서다(stop)'를 하는 고스톱(go-stop)이 되었다.

상당수 중소기업은 세금을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는 형편이고, 시간당 임금(8750원)으로 먹고 사는 이들 역시 한 달의 최대치(1,822,480원)에 절대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르자면 서민을 위하여 위기상황을 타개할 전지전능한 방안은 아니더라도 이 위기시를 대비하여 모아둔 재정을 쏟아야 했다. 세금의 인하와 물가 잡기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재난지원금 역시 일부를 떼어 주면서 갖은 생색은 다 내고는 급기야는 전정부에서 하던 담뱃값인상과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어떻게 하면 서민들의 생활을 개선할 것인가 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세금을 더 걷어갈 것인가 하는 것에 몰입하는 양상이다. 게다가 경악할 것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공무원의 봉급은 인상하였다. 지난 3년과 비교하여도 높은 2.8%이다. 그리고 2021년도 역시 인상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그것이 서민경제 살리기보다 그렇게 더 급한 일인가! 군인, 경찰, 소방공무원 등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하는 분야는 더 상승할 것이나 다른 부서는 적극 만류되어야 한다. 재난 지원금을 주어야 할 정도이고, 기업은 문 닫아 고스톱(go-stop)도 아닌 올스톱(all stop)의 극악인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지난 3년간 서울 아파트값이 58%을 넘어서고 있다. 대다수 서민들이가질 심각한 박탈감과 우울감을 외면할 것인가! 이로 인해 극단적인 사회문제로 비화되어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전세 살던 세입자 부부가 아파트 매입 문제로 목숨을 끊는 참극이 벌어졌다. 의식주의 기본을 본래로 돌리려 했던 생각은 기특하다, 하지만 현장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왜 들으려 하지 않는가! 기십 차례의 주택정책으로 무너진 서민주택의 망연자실은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그리고 또 대북정책은 어떤가! 그렇게 많은 시간과 비용을 쏟아 부었지만 돌아온 것은 듣지 않아도 될 막말과 돌아선 북한의 자세이다. 현장감도 없는 안일함에 따른 경제는 그렇다고 하자. 하지만, 즉각적으로 국민의 삶에 연결되는 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대처는 다르다.

국민이 묻고자 하는 것은 결과만이 아니다. 어떻게 했는가 하는 마음가짐이다. 코로나로 득을 보았다는 정치는 있을 수 없다. 누가 이익을 보았는지는 역사가 이를 것이나, 코로나 백신을 확보하고 이를 발표하는 정부의 태도는 정말 이해불가이다. 되먹지 못했다고 필자를 비난할 일을 아니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은 백신 물량을 인구의 2배에서 최대 5배까지 확보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반면, 12월 8일 정부는 4400만 명분의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인구 88%가 접종할 수 있는 분량이다. 그렇다면 12%는 국민이 아닌가! 다른 국가는 그 량에서 인구 5배까지 구입하고 있고, 시기적으로도 즉각적으로 대처하였다. 타국 역시 백신의 효능과 결과에 대해서는 정부가 염려하는 것을 근심하고 있다. 국민의 눈빛이 날카롭다고만 할 것이 아니다. 100%도 그러한데, 국민을 위한다는 마음가짐이 보이지 않는다.

태갑이 그랬던 것처럼 능력이 없으면 물러서는 것이다. 그리고는 꼭 해야 한다면 백성들의 삶을 고갈시켰던(率遏衆力) 책임으로 국민을 향하여 머리를 땅에 대어 절하면서(拜手稽首) 용서를 구할 용기는 진정 없는가! 세밑의 공무를 정할 이 때에 행정서류만 만지작거릴 것이 아니다. 오류라고 판단되면 반성하고 수정하면 된다. 누구라도 다 잘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보자. '서로 바로잡아 주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罔克胥匡以生).' 그리고 지금의 제도로 '질서와 평온을 이룰 수 없다면(以辟四方)', 그 마음에서라도 '안주하지 않고(無時豫怠)' '되돌아 허물을 고치고 새롭게 할 것이다(改過自新). 그것이다. 새롭게 할 자신이 없다면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행패라도 저지르지 않으면 된다. 망설일 것도 없다!

알아야 할 것은 독단이 아니라 국민과 상의하여 같이 해야 할 것이다. 태갑과 이윤은 백성과 같이 하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수천 년 전에 말이다. 사회성의 기초와 실천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누구라도 정치에 싫증을 느끼지 않을 '무역(無斁)'이 주는 교훈과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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