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재지: 서울시 성동구 용답동

◆리비아 트리폴리에서 길거리를 누비던 고향식당 승합차

2005년, 종라는 티비 뉴스를 보고 있었다. 청계천 통수식 소식이었다. 그때 종라의 휴대폰이 울렸다. 이번에도 국제 전화였다. 그 사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전화는 리비아에서 왔을 것이다. 리비아는 아프리카에 있다. 종라는 전화기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우두커니 천정을 쳐다보았다. 

종라는 괴롭다. 놈을 목소리로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만나면 숨통이라도 끊어놓을 텐데. 리비아라니, 너무 멀다. 종라는 놈의 털끝 하나도 어쩌지 못할 처지였다. 기가 막혔다.

종라가 죽이고 싶어하는 그 인간은 민상이라는 놈이었다. 한때, 민상은 종라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사람이었다. 민상은 종라네 식당 앞 노점에서 과일을 팔았다. 그가 승합차를 운행해 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9인승 기아 프레지오를 들여오자 장사가 너무 잘 되었다. 종라는 틈만나면 승합차를 닦았다. 일손이 모자라 동동대는 날, 단체 손님이 차를 보내달라고 할 때가 있었다. 종라는 민상에게 부탁했다. 

“내 과일, 내 인생 책임져 줄 거죠? 그렇게 한다니까 다녀올게요.”
민상은 이렇게 넉살이 좋았다.
식당 쉬는 날이면 종라는 승합차에 가족들을 태웠다.
“형님, 여기 남은 데, 내 자리 맞지요?”이러면서 승합차에 올라앉았다. 

믿을 수 없는 게 사람의 속이라든가. 이러던 민상이 종라를 구렁텅이로 빠뜨렸다. 그 일로 종라는 딴사람 손에 식당을 넘겨야 했다. 1998년의 일이었다. 국제금융위기로 식당 같은 것이 넘어지던 시기였다. 종라는 민상이 때문에 망했다. 산동네 월세 집으로 옮겼다. 돈이 되는 것은 모조리 처분했다. 하지만 프레지오만은 놓으려 하지 않았다. 장안평중고차시장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곤 했다. 두 번씩이나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종라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노래를 불렀다. 다음날 날이 밝아도 멈추지 않았다. 그게 1999년의 일이었다. 

그 후, 종라는 민상을 수소문했다. 헛수고였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고 청계천에 물길이 열리는 날, 2005년에 민상에게 전화가 왔던 것이다. 

민상은 종라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식당을 내고도 남을 돈을 리비아에서 보냈다. 종라는 다시 식당을 열었다. '고향식당'이 아니라 이번에는 '리비아'였다. 양고기 전문점. 어쨌거나 마음이 풀린 종라가 민상에게 물었다. 어떻게 전화할 생각을 했느냐고.

“형님, 리비아 어떤 나란지 아시죠. 밤낮없이 총알이 날아요. 난 형님, 그렇게 만들고 나서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어요. 시체니까 총알 겁낼 꺼 없잖아요. 악착같이 벌었죠. 그러던 어느 날, 트리폴리에서 프레지오를 봤어요.”
“고향식당?”
종라가 물었다.
“고향식당 000-1234.”

◆ 장안평중고차시장의 과거  

이렇게 사람을 울고 웃게 하는 장안평중고차시장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70년대 서울시, 곳곳에 중고차 매매시장이 있었다. 중고차를 사고파는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한데 거래는 투명하지 못했다.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서울시가 나서서 중고차매매시장을 한곳에 모았다. 그곳이 지금의 용답동 장안평중고차시장이다. 1979년이다. 

그때도 그렇겠지만 현재도 거래할 자동차는 야외에 전시한다. 사무실이 있어야 했다. 4개 동이다. A동부터 D동에 매매 상사들이 입주해 있다. 64개(19년 기준)다. 

여기서 한 가지 확실하게 해둬야 할 게 있다. 사람들은 중고차매매시장이 어느 구(區)에 있다고 생각할까. 혹시 동대문으로 알지 않을까. 중고자동차부품은 동대문구 장안동에도 판매한다. 게다가 중고차시장 이름이 '장안평'중고차시장이다. '장안동'은 동대문구다. 나는 성동구로 이사 온 후에도 한동안 중고차시장을 장안동으로 알았다. 

중고차매매 시장의 전성기는 80년대 중반이었다. 사람들이 승용차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시기였다. 사람들은 그 시절을 마이카시대라고 이름 붙였다. 차를 갖고 싶은데 신차에 부담을 느낀 사람들이 중고차를 많이 찾았다. 그래서 중고차시장은 사람들로 넘쳤다.

◆ 장안평중고차시장의 현재와 미래

장안평중고차시장은 80년대를 정점으로 내리막길이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경기가 더 어렵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월요일 오전이었다. 오래전에 장안동 부품 시장은 갔던 적이 있었지만 중고차시장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예전과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시장 방문객이 적다는 게 한눈에 들어왔다. 자동차 전시장이 한없이 넓어 보였다. 그리고 온라인 거래가 많아서 방문자가 줄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매물로 나와 있는 자동차가 많았다. 중고차를 구입하려면 입맛대로 고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시장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서울시는 장안평중고차시장을 살려야 했다. 성동구 용답동, 동대문구 장안동·답십리동 장안평 일대 50만8390㎡를 도시재생활성화 지역으로 지정했다.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시비 200여억 원, 민간투자 5300억 원, 중앙부처 42억 원(예정)을 투입한다. 중고차 매매센터는 건물·토지 소유자 등 민간사업 주체와 협력해서 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시설을 현대화한다. 국내 유일의 자동차 애프터마켓 거점으로 재생한다. 자동차 애프터마켓은 신차가 팔린 후 차량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제품과 서비스를 거래하는 시장을 말한다. 자동차 부품을 수입·유통·판매하고 정비·수리까지 하는 곳이다. 튜닝산업 거점 기반을 조성한다. 영세 정비업체들이 사업을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재제조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 '재제조 혁신센터'를 건립한다.

재제조산업이란 중고부품을 분해-세척-검사-보수·보정-재조립 등 과정을 거쳐 재사용 가능한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신성장 산업이다. 폐부품을 재이용하기 때문에 자원순환에서 순기능이 있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차량 수리비를 절감할 수 있다. 보험료는 신품 가격보다 할인되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장안평중고차시장은 첨단시장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용답동이 달라질 것이다.

<서성원 작가> itt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