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입고 근무하는 도시속 도금공장 꿈, 기어이 이뤄낸 형제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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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입고 근무하는 도시속 도금공장 꿈, 기어이 이뤄낸 형제 둘
  • 성동신문
  • 승인 2021.04.2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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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사람이다 (주)대도 세종컬렉션 정광수 정광미 형제

“기술과 역할도 나누고, 이익은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서로 권했지!”

왼쪽이 기술 담당 정광미, 오른쪽이 마케팅/관리를 맡은 형 정광수다. 정광미 대표는 ‘양복 입고 일할 수 있는 기업’을 꿈꿨다.
왼쪽이 기술 담당 정광미, 오른쪽이 마케팅/관리를 맡은 형 정광수다. 정광미 대표는 ‘양복 입고 일할 수 있는 기업’을 꿈꿨다.

이것은 형제의 이야기다. 둘째가 먼저, 큰형이 다음 그리고 넷째 막내와 셋째가 순서대로 같은 일에 합류했다. 8남매 중 형제 넷이 모두 같은 일을 하게 된 건 대단한 일이다. 그들은 ‘도금하는 형제들’이었다. 이중 넷째 정광미와 셋째 정광수가 현재의 대도도금(세종콜렉션은 그 자회사다)을 운영하고 있다. 공동 대표이사.

형 광수가 회사의 관리와 영업을, 동생 광미가 주로 기술과 생산으로 역할을 나누었다. 1981년 광미 대표가 동광금속에서 액세서리 도금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지 40년, 둘이 함께 대도금속을 창업한 1999년 이후로는 22년째다. 깨지지 않고 함께 일하고, 더욱이나 차츰차츰 번성해 온 비밀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올해 1월 준공한 7층 건물의 대도 사옥에서 두 형제를 만났다. 두 사람의 대표이사 사무실은 나란히 위치해 있었다.

명장이 돼 상금을 받았다. 그걸 고생한 아내들에 주자했다

- 동업이란 게 누구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렇게 오랜 동안, 잘 되고 있는 비결이 있습니까.

광수 : “우리 둘은 직원들 출근하기 전에 새벽에 나옵니다. 조율을 미리 해놔요. 일단 사람이 서로 마음이 같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게 기본이고. 새벽엔 큰소리로 싸우기도 하지. 그런데 이야기하다보면 결론이 나와요. 균형이 잡히지. 그리고 무엇보다 ‘돈’이 원인인 거니까, 그 관리를 다른 이한테 맡겼어요. 우리 총무부장이 열아홉 살 고교졸업때부터 현재까지 창립멤버거든. 우린 봉급도 똑같고. 서로서로 어디에 돈이 나가는지 다 볼 수 있어요. 뭐든 내 맘대로 못해. 또 나는 먼저 아우한테 신경써줘요. 차를 사도 동생 먼저 사줘. 그럼 그게 나중에 더 크게 돌아오니까.”

- 역할을 분담하고 계시죠? 기술 쪽은 정광미 대표이사가 맡고 계시고. 2015년 명장이 되셨더군요. 2009년 기술대회가 전환점이 된 거죠?

광미 : “작은 공장 사람들은 일을 어깨 너머로만 배웁니다. 그러다 2009년쯤에 전국도금기술경기대회가 있는 걸 알게 됐어요. 우리가 한국도금조합(액세서리 부자재 분야) 활동을 하고 있었으니까. 대회를 한번 나가보라는 거예요. 도금은 LG나 삼성전기 같은 데서도 하고 있으니까, 그런 쪽 사람들한테 우리가 되겠나 싶었는데, 자부심이 있었으니까 대회에 가봤죠. 거기서 1등을 한 거예요. 국무총리상을 받았어요.”

사진 상) 대도는 스마트 팩토리다. 로봇이 작업한다. 왼편은 정광미 대표가 개발한 원심건조기. 중과 하) 각종 특허와 인증 및 표창.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한 사람의 명장과 주목할 만한 기업이 탄생한다.
사진 상) 대도는 스마트 팩토리다. 로봇이 작업한다. 왼편은 정광미 대표가 개발한 원심건조기. 중과 하) 각종 특허와 인증 및 표창.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한 사람의 명장과 주목할 만한 기업이 탄생한다.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했던 물리학자 파인만의 자서전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젊을 적에 사장 하나와 자신, 이렇게 둘이 운영하는 작은 ‘도금업’을 하고 있었다. 물리 화학적 기술 몇 가지를 응용해서 사업을 하는 실험실 같은 것이었는데, 독일서 온 큰 회사의 도금 연구원과 만난 것. 독일회사는 미국에 시장을 확대하는 걸 겁내고 있었다. 이유가 놀라웠다. 파인만의 회사를 수십 명의 연구원이 있는 엄청난 회사로 지레짐작한 것. 그때 부상이 기능사 자격증이었다. 이후 학습에 매진, 기능장을 거쳐 명장까지 되는 데 6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광미 : “폴리텍 대학 황환일 교수께서 추천을 해주셨어요. 도금 관련 기능장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춘천 인천 같은 곳에 있었는데, 나는 화성으로 교육을 받으러 다닌 거예요. 여기서 퇴근하면 거기로 수업을 받으러 갔지.”

2010년 한국표면공학회 표창, 2011년 국무총리상, 2013년에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표창, 2014년 수출유망중소기업 선정, 13~15년까지 중소기업청장상 연속 수상을 거치며 2015년 드디어 정광미 대표는 표면처리 분야 대한민국 명장에 오른다. ‘선택적 도금 장신구 및 그 제조방법과 피도금체 건조용 스팀탈수기 등의 기술과 제품에 대한 특허를 여럿 내기도 했다.

- 명장이 되면 부상은 무엇이죠?

광수 : “2천만원을 부상으로 줘요. (부상으론 무엇을 하셨습니까?) 동생 광미가 그 돈을 형수하고 자기 아내한테 주자고 해요. 고생했다고. 나는 생각도 못했는데…. 고맙습디다. (그 돈으로 두 아내 분들은 무엇을 하셨나요?) 그건 모르죠!(웃음)”

주먹구구 도금기술 벗어나 뿌리기술 전문가로 우뚝

2015년에 대도금속은 뿌리기술 전문기업으로 인정받았고, 정광미 대표는 2018년 한국표면처리기능장회 이사장으로도 취임했다. 모든 산업의 기초가 되는 기초기술-용접, 주형, 열처리, 소성가공, 주조 그리고 표면처리기술 등 6대 기술은 집중 관리됐고, 2021년 현재는 16대 뿌리기술로 확대됐다. 대표이사 자리엔 <헐 아카데미> 안내판이 걸려있었다. 헐? 애들이 말하는 그 ‘헐’인가?

광미 : “헐셀(Hull Cell) 테스트라고 도금하는 이들에겐 가장 기본적인 도금 테스트장비를 만든 분이 리차드 헐입니다. 이윤주 박사라고, 유튜브를 운영해요. 표면처리 기술을 공부하는 이들을 위한 거죠. 거기 대도금속 소개나 제가 진행한 학습 영상도 있죠.”

유튜브에는 BTS의 노래들과 영화리뷰와 여배우나 전직 미스코리아의 일탈 가십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 아카데미는 자신들의 비기인 ‘생산기술’을 알려준다. 학교에서는 배울 수 있겠지만, 그건 자격이 필요하다. 기업에선 기술이 잘 연구되고 실행되겠지만 비밀이 아니겠나? 그런데 그걸 전부 알려주는 아카데미를 운영한다고?

광미 : “도금업체는 현재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경쟁도 심화하고 있고,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기술이나 환경기준을 발전시키지 못하면 소멸할 수밖에 없어요. 저변을 확대하고, 기술을 나누어야 함께 성장해 갈 수 있으니까.”

광미 대표는 40여년 전 처음 도금공장에 들어갔던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현재도 작은 공장들은 상황이 열악한데, 당시는 더욱 그랬다. 안전에 대한 기준도 없었고, 체계적인 학습이나 교육은 전무했다. 자주자주 공구들이 날라다녔고, 배우고자 하는 후배들의 갈증은 풀리지 않았다. 형네 회사에 있었지만, 막내의 생각이나 발언이 먹힐 분위기도 아니었다. 광미대표는 수첩에 하나하나 궁금한 것은 적고 공부해 가고, 고쳐서 취해야 할 것과 버릴 것도 기록했다. 거기 100여 개쯤의 아이디어가 적혔고, 지금은 그걸 하나하나 ‘도장깨기’하는 심정으로 실현해 가고 있다. 그 리스트에는 ‘양복을 입고 근무할 수 있는 도금공장’도 있었다.

- 서울 한복판에 도금공장이 있다니 놀랐습니다. 7층 건물 전체가 도금공장이라니.

광수 : “광미는 6대 뿌리산업 현장 교수예요. 산업인력관리공단 마이스터 과정과 폴리텍 대학서도 강의합니다. 여기 우리 회사에는 현장 실습장이고 강의실이이에요. 연구실로도 쓰이고. 우리 공장에선 A부터 Z까지 모든 도금 공정을 다 해낼 수 있죠.”

대도의 지하엔 대규모로 운용되고 있는 폐수시설이 있다. 정화된 물을 종말처리장으로 보낸다. 옥상엔 배기 굴뚝이 있는데, 1차 정화된 공기를 다시 물을 뿌려서 재정화한 뒤 내보낸다. 굳이 관을 구부려 물을 분사하는 아이디어를 낸 게 정광미 대표. 뒤따라 가지 않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해결점을 찾아 직접 현장에 적용한다. ‘도금공장’서 겪는 문화충격이었다.

성공 도와준 이들 잊지 않는다. 우리도 힘껏 돕고 키운다

- 널리 공유하고픈 기업문화고 기술입니다. 이런 데까지 오는 데 도움을 주신 분들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혹은 기업을 운영하고 교육을 하면서 눈여겨 보는 부분도 있을 것 같고.

광미 : “진성희 대표[진희장식 대표]가 있으세요. 사업을 크게 하시면서 저희에게 일 주시던 분인데요. 첫날 회사에 오셔서는 쓰레기통을 먼저 보시는 거예요. 우리 쓰레기통이 그날 깨끗했나 보죠. 도금해 달라고 보내온 부품들 불량이 나면, 다른 회사에선 버리기도 하는데, 난 언제나 봉투에 넣어 돌려줬어요. ‘너네 거니까, 너네가 알아서 해라.’ 그런 걸 좋게 봤을 수도 있고. 그분이 폐수처리공정까지 있는 건물을 지어선 물건을 거기서 만들어 달라 그러셨어요. 새벽도 밤낮도 없이 일했지.” 이게 대도금속의 시작이었다.

광수 : “예전에 모 은행하고 우리가 거래했어. 그런데 돈 빌리러 가면 엄청 요구하는 서류가 많아요. 담보 요구하고, 매출 살펴보고. 우린 그런 게 없잖아요. 마치 안 해주려고 핑계를 찾는 것처럼. 그런데 기업은행 현명택 성수동 지점장께선 우릴 잘 보셨나봐. 직원들 불러서는 그러세요. ‘이분들은 우선 대출해 드리고, 서류는 나중에 받아!’ 한 삼천 정도는 그런 융통이 가능했던 거 같았죠.”

두 사람도 사람들, 기업들을 유심히 본다. 인사를 잘하고, 누가 보지 않아도 쓰레기를 줍고 정리정돈을 잘 하는 사람, 비록 낡아도 잘 정리되고 관리되는 화장실. 이런 것은 기억하고 있다가 뒷날에 판단할 때 기준으로 삼는다.

대도도금 공장엔 4대의 로봇이 운용되고 있다. 제품별로 미리 설정해 둔 값에 따라 도금과 도장의 전 공정이 처리된다. 반도체와 자동차 제조시스템에서 운영되는 콘베이어 벨트를 따라서 자동생산된다. 사람은 과정에서 필요한 일(뒤치닥거리)을 하거나, 전체를 제어하는 연구인력 이렇게 크게 나뉜다. 물론 후자의 숫자는 손에 꼽는다. 정광수 대표는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대도는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와 교육지원 협약을 맺고 있다. 필요한 인력을 직접 교육해 회사에 공급받는 시스템. 현재 셋은 회사에 와있고, 둘을 더 지원하고 있다.

회사엔 많은 젊은 직원들이 보였다. ‘자동화공정’을 배우고 익히는 데 관심을 갖는 이들이다. 이제는 공장의 핵심이 된 (40대가 된) ‘열아홉 살’의 그녀 장순애 총무부장도 실험실서 보였다. 요리사 박찬일은 100년이 가는 노포의 조건으로 1 독보적인 맛, 2 주인이 직접 일하고, 3 직원이 오래 일하는 회사를 꼽았었다 대도는 그 세 가지를 모두 갖추었다. 대도는 1층을 메인공간을 비워두었다. 전시장으로 쓰기 위해서다. 세종콜렉션은 그들의 자회사다.

광수 : “우리는 매번 도쿄나 유럽 등서 열리는 박람회에 매번 참석했어요. 코로나19로 그런 데가 막혔지. 우리같은 고급 제품, 많은 물량은 소비하는 시장 발굴이 핵심이란 말이죠. 그런 부분을 스스로 해소하려는 노력이예요. 직원들도 성수동을 방문하는 이들도 카페처럼, 갤러리처럼 편하게 이곳을 찾고 쉬고 보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참, 우리 대도가 명장이 운영하는 회사잖아요. 군대고 경찰이고 조폐공사고 명찰 상패 같은 거 잘 할 수 있거든요.” 그는 동생을 챙기고 있었다. 동시에 자신의 기업도. 그들 형제는 천상 사업가였다.

회사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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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대도 세종컬렉션: 주소 서울 성동구 상원12길 35 / 전화 : 02)462-6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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