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성과학자를 양성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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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성과학자를 양성하지 않는가?
  • 광진투데이
  • 승인 2021.04.2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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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원/광진투데이 편집부장
정소원
정소원

지금은 과학계 여성 과학자 수가 증가했는데 아직도 학계 내에서 여성과학자의 숫자는 굉장히 적다는 점에서, 특히 우리나라에서 여성과학자가 적다는 점은 그저 간과할만한 부분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왜 여성 과학자 숫자가 특히 적은 것일까?

첫째, 분야를 불문하고 여성이 과학자로서 뿌리내리기가 쉽지 않다고 보여진다. 과학을 선택해서 학자를 꿈꾸며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다른 분야보다는 적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해 봐야 할 필요가 있다. 보통 수학을 싫어한다 과학을 싫어한다 말을 하는데 그게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받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둘째, 일반적으로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경향이 학계에도 투영된다고 생각한다. 물리학은 굉장히 어려운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그래서 처음부터 흥미를 갖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수련 기간이라고 하는 것이 길게 되는 것이고 그 긴 기간 동안 사회적으로 어떻게 서포트를 받고 있는지 보면 평가가 냉혹하게 내려지고 있다.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고 전 세계적인 문제이고 여성에게는 거기에 플러스 출산과 양육이라고 하는 부분이 더 들어가기 때문에 본인이 아무리 열정을 가지고 있더라도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되는 부분이 굉장히 많다. 사회 제도적인 환경에 더해 학계에서 일어나는 독특함에 의해서 그런 일이 더 심화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노벨상을 받은 여성과학자들로부터 얻는 성찰
리제마이트너, 마리퀴리, 호프자런

더 큰 문제는 21세기 지금의 호프자런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어려움이 100년 전과 거의 동일하다는 점이다. 교육, 양육, 출산의 측면에서 정말 리제 마이트너나 마리 퀴리도 겪었던 어려움을 현재 여성 과학자들은 똑같이 겪고 있다. 정부 지원책 부재, 동료 과학자들로부터의 차별, 지원금 정책 부족...

물론 호프 자런이 자신의 연구실을 세 개나 가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리제 마이트너나 마리 퀴리의 시대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을 했다고 100년의 세월이라는 것을 지나면서 많은 사회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에도 여전히 어려움이라고 하는 것은 남아 있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여성이 가진 어려움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결혼을 하건 가정이 있건 있지 않건 간에. 

예를 들어 마리 퀴리는 가정을 서포트를 해 주었던 사람이 있었다. 해 줄 수 있었기 때문에 퀴리가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그런 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를 보면 사회 전반에 걸쳐서 굉장히 가시적으로 많이 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먼저 한 가지고. 두 번째는 여성에게 굉장히 많은 진화, 혹은 변화라고 하는 부분이 주어지기도 하고 쟁취된 이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기대감이라고 하는 것이 같이 부여된 점을 들 수 있다.

이 정도의 환경이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당신에게 이만큼 기대한다는 사회적 압박감 부담감이라고 하는 것이 마리 퀴리의 시대에 비해서 사회적인 활동 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한 가지는 획득했지만 그것에 의해서 다른 문제를 마찬가지로 가져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된다.

지금으로부터 한 30년이나 40년 후에는 과학은 전부 여자 아니면 외국인이 하는 학문이 될 지도 모른다. 사실은 20세기 초나 중반에 일어난 지식의 폭주는 다른 세기와 비교해 봐도 굉장히 큰 변화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과학을 하는 그룹이 항상 보면 초기에는 지식이 태동하고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나고 굉장히 학문이 번성하는 시기에서 주류 세력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백인 남자였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길 가는 사람 잡고 자녀가 어떤 직업을 갖기를 원하십니까 물었을 때 과학자라는 사람을 10명 중 1명 만난다면 굉장히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도 유수 대학교의 학과들이 문을 닫고 있다. 학부 졸업생이 4명 5명이다. 미국의 명문 대학들이 그렇다. 사회 주류가 더 이상 과학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주류가 떠난 틈을 메우는 것은 항상 비주류고 비주류는 여성이나 외국인이기 때문에, 여성 과학자의 시대가 도래될 환경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굉장히 심각하게 느끼는 것은 21세기 과학이 거대 과학으로 가고 있고, 돈과 인력이 투입되는 방법으로 상대적으로 과학이 발전해 가고 있는 반면, 과학이 거대해지면 정치적인 입김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물량이 투입되기 위해서는 결국은 그것이 세금이나 돈이 든다는 것이고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과학자가 아니라 정치가 됨을 의미한다. 
정치가랑 친한 사람들은 여자들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요즘은 연구를 커다란 그룹을 만들어서 하는 쪽으로 과학을 가지고 가고 있다.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가고 있는데 그런 그룹에 들어가기가 여자들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여성과학자가 적다는 문제를 직시해야

사실 왜 여성 과학자 수가 적을까에 대한 연구는 60년대부터 진행되어 왔다. 그 중의 한 설명인데 과학 자체가 굉장히 남성적이라는 설명을 한다. 연구를 할 때에도 연구 대상과 나를 철저히 분리하는, 연구 방식에서 객관성을 담보했다고 하는 그런 것들이 다 남성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여성은 관계를 굉장히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무언가를 이해하지만 남성들은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 과학의 연구 스타일이 남성들의 '관계와 그 관계 속에서 대상과 나를 분리시켜 이해하는 방식' 속에서 형성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21세기의 호프 자런, 리제 마이트너와 마리 퀴리가 받는 대우가 그닥 다르지 않았을 때 과연 이것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학문이라는 건 문학 작품의 어떤 창작이 아닌 다음에는 객관적인 사실과 그것에 대한 객관적인 질문과 비판을 통해서 학문이라는 게 성립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남성적이다 여성적이다를 붙이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과학 연구도 다른 연구와 마찬가지로 진리라고 믿었던 것이 변한다. 

시간이 가면 거기서 객관적인 방법의 실험이나 숫자나 이런 것을 통해서 다른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으로 증명하면서 연구하는 건데 거기에 특별히 여성이나 남성성이 관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람이다 보니까 학문하는 방법 속에서 남성성이나 여성성이 다르게 나타날 수는 있지만 단순한 성적인 기준으로 구분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단순히 '여성'이라서 옹호해달라기 보다, 차별은 없이 공정하게 능력과 실력을 인정받게 해주는 사회가 올 수 있기를 빈다. 그것이 소수의 분야가 될지도 모를 과학의 미래를 위해서도, 크게는 인류애의 관점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smartsow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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