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문화원과 함께 하는 [사진으로 보는 성동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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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문화원과 함께 하는 [사진으로 보는 성동 100년]
  • 성동신문
  • 승인 2021.05.16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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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은 아이들 뛰어놀고 빨래도 널어놓던 복합 공간이었다
아파트 지으며 서로 밀쳐내는 도시 돼간다. 마을의 공공성과 활력 어디에

성동신문 창간 20주년 특집 제5회 골목길

사진1. 김병도 제공 / 1990년경/ 성수동 골목

골목은 도로와 집을 연결하는 작은 길이다. 대개는 차가 다니는 대로를 벗어난 이면도로 그리고 그보다 더 작은 실핏줄같은 길이 골목이다.
'골목길 접어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하고 김현식이 노래했듯 그 곳은 사람의 집으로 향하는 길목이기도 하였다.
여기 자전거를 타고 지면을 뛰쳐나올 것 같은 아이들 이 골목의 주인이었다다. 엄마나 할머니는 밥 때가 되면 아이들을 향해 목청껏 부르곤 했다.“얘들아, 밥먹자!”
오른쪽 사진 ①

골목의 주인은 아이들이었습니다. 이촌향도,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고향 시골을 떠나 보다 큰 도시로 보다 큰 도시로 이동해 왔습니다. 성동구는 서울 도심과 가까운 동네, 시골서 올라와 처음 터를 잡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이 오밀조밀 살던 동네엔 변변한 공공공간이 없었습니다. 유치원, 놀이터, 도서관, 공연장, 공원 같은 곳 말입니다. 그러니 차가 다니지 않는 집 앞의 골목길은 이 모든 역할들을 대신 했습니다.

사진2의 색동저고리를 보니, 아마 명절인가 봅니다. 친척집을 방문한 어린이라면 이 골목길이 탐험을 앞둔 신세계처럼 낯설고 큰 세계로 보이겠죠. 길을 걷는데, 앞쪽에 또래 친구가 나타나 그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둘은 만나 친구가 될지, 저 멀리 친구가 텃세를 부릴지, 골목길은 황야의 결투처럼 긴장감이 흐릅니다.

사진3의 풍경 뒤편으로 산동네가 펼쳐져 있습니다. 요즘은 멋으로 많이 쓰는 비니를, 당시엔 정말 추워서 방한용으로 썼습니다. 연탄을 때는 집집마다 굴뚝이 달렸는데, 연탄보일러라도 아직 온돌방 구조가 남아있죠.

사진4처럼 골목엔 평상이 있어 주민들의 휴식처가 되었습니다. 슬리퍼를 신은 두 어린이가 앉은 작은 벤치 앞뒤로 화분이 놓여 있습니다. 당시 개는 밖에서 기르는 게 불문율, 남동생은 인형 하나로 기쁩니다. 지긋이 이곳을 쳐다보는 할머니는 자주 골목에 나와 지나는 사람을 볼 것입니다. 골목에선 문 열면 집인데, 당시 마을이란 서로를 잘 알고지내는 연유로 큰 불편을 느끼진 않았습니다.

사진5의 축구공을 가진 소년은 친구들을 기다립니다. 여기 골목에서 또 축구경기도 벌이겠죠. 그러다 담을 넘거나 문으로 들어가면 난감하죠.

사진6엔 천기저귀가 담벼락을 따라 걸려 있습니다. 아마도 사진 속, 형 뒷자리에 자리를 잡은 아가의 것이겠죠. 햇살에 잘 마른 빨랫감은 살림의 고단함을 잠시 가시게 하죠.

사진7은 용답동의 골목입니다. 여타의 다른 곳처럼 이곳도 현재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파트가 들어서겠죠. 이전의 골목길이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었다면, 아파트는 사유공간으로, 다른 이들을 배제합니다. 놀이터마저 그렇죠. 이 정다운 자매들처럼 이웃들에게 아이들에게 우리가 사는 동네는 더 열려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서로 열리면 더 크고 풍성한 마을이 되는 것이니까. 

사진8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서울을 더 정확히는 남산을 구경'시켜 주고 있습니다. 아이는 잽싸게 두 손으로 '혹시 빠질지 모르는 목'을 지킵니다. 기린이 되면 안 되니까. 이 장난은 '귀한 딸'에게는 많이 하지 않았는데, 옆을 지나던 아이가 가슴을 쓸어 내립니다.

사진9는 흙길입니다. 수놓은 직장에 다니는 이 숙녀분 뒤로 통행에 불편을 주는 리어카가 '불법주차'돼 있습니다.

사진10은 빗자를 달라고 조른 아이와 대신 삽자루를 쥐여주는 옆집 언니입니다. 깨끗한 골목은 이 어린이들 덕분이군요. '우리 골목은 우리가 지킨다!' 마을마다 내걸어도 좋은 가로훈(街路訓 )이랄 만합니다.

평지 어린이에게는 이 골목길이 탐험을 앞둔 신세계처럼 놓여있는지 모릅니다. 명절을 맞아 친척집에 왔다면, 이곳은 앞쪽 대문입니다. 마당을 거쳐 들어가는 집은 한옥입니다. 땅의 기운을, 하늘의 변화를 겪으며 살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꿈은 2층 양옥이었습니다.

사진2. 최화영 제공 / 1979년경 / 금호동2가 골목탐험
4. 노의영 제공 / 1971년경 / 행당동 집앞
사진3. 최경순 제공 / 1969년경 / 옥수동 옥정초 인근
사진4. 노의영 제공 / 1971년경 / 행당동 집앞
사진5. 이한순 제공 / 1980년경 / 장소 미정
3. 최경순 제공 / 1969년경 / 옥수동 옥정초 인근
사진6. 이명순 제공 / 1981년대 / 장소 미정
사진7. 김닌재 제공 / 1990년경 / 용답동 골목의 자매
사진8. 임옥재 제공 / 1979년경 / 장소 미정 서울남산을 보여주마
사진9. 안옥자 제공 / 1969년경 / 행당동 집앞
사진10. 김지선 제공 / 1991년경 / 성수1가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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