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시간을 '사는'것과 '살아내는'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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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시간을 '사는'것과 '살아내는'것에 대하여
  • 정소원 기자
  • 승인 2021.10.27 1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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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원/광진투데이 취재부장
정소원
정소원

대학시절의 나는 순수한 현재의 시간을 살고 있었다. 신경 쓰이는 과거의 관계와 미래의 걱정들은 뒤로 하고 하루하루를 생각없이 재밌게 보내는 것이 그저 좋았다. 모임을 나가서 밤새 술을 마셨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를 만나 승패가 기억이 나지 않는 게임을 했다. 취업과 인생에 대한 걱정없이 현재의 시간을 만끽했던 시절이었다.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는 현대의 사람들은 경험지향적이다. 그들은 경험이 주는 미래의 결과보다 경험 자체에 의미를 둔다. 때문에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현재의 관계와 사건들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그들은 유희적이고 충동적이고 쾌락적이며 동시에 소비적이고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현재의 시간을 '사는' 것은 현재의 시간을 '살아내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이 다름은 자발성의 여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스스로 원하지 않는 경험과 관계에 얽매여 하루를 살아간다면, 그것은 현재의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하루는 유희나 충동, 쾌락과는 거리가 멀고 무의미하고 반복적이며 소모적이다.

 졸업 이후부터 나는 현재를 살아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이 영겁의 시간의 굴레에서 나는 대책없이 마모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내가 다 닳아 없어지고 나면 어떻게 될까. 인생의 마지막장에는 무엇이 그려져 있을까.

 미래와 현재를 온전히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은 과거로 회귀하여 살아간다. 과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젠가 경혐했었던 유대감과 인정으로 현재의 비루한 삶을 버티어낸다. 그들은 기억 속 저편의 추억들을 꺼내보고 닦고 어루만지고 다시 넣고를 반복한다. 이 작업은 슬프지만 중독적이고 무너진 자아를 일으키는데 적잖은 위안이 된다. 과거에는 페이스북이 그랬고 지금은 인스타가 그런 작업의 장소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잠깐의 회의를 마치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온다. 나는 여전히 현재를 살아내는데 급급하다. 요즘 들어서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겠다. 가끔씩 눈을 감으면 학교 뒤편에 있던 숲길 한가운데에 와 있다. 숲길은 초가을이 선물하는 특별한 냄새들로 가득하다. 아직 무더위의 열기가 남아있는 나무와 땅의 기운, 습기를 머금은 풀냄새와 옅은 꽃향기. 멀리서 도심의 웅웅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바람이 불고 나면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순수했던 열정을 품은 그 때, 그때의 기분을 되살려보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만 있을 것 같다. <smartsow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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