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말은 잇고 나쁜 말은 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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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말은 잇고 나쁜 말은 잊자
  • 성동신문
  • 승인 2021.12.20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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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성동신문 논설위원
송란교
송란교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보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살기 위해서는 발버둥을 쳐야 하고 옆에 있는 지푸라기도 잡아야 한다. 물에 둥둥 떠 있는 지푸라기가 무슨 버틸 힘이 있겠는가만, 손을 휘저으며 걸리는 것은 무엇이든 나의 생명을 이어줄 질긴 동아줄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 움켜잡으려 한다. 무엇이든지 잡거나 딛고 일어서야 물속에서 빠져나와 숨을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건장한 사람도 물에 빠진 사람이 붙잡고 잡아당기면 옴짝달싹 못 하게 된다. 이처럼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면 신(神)만이 알 수 있는 괴력(怪力)이 뿜어져 나온다. 여기에 젖먹던 힘까지 다 쏟아붓는다면 아마도 어마어마한 힘이 나올 것이다. 살아야겠다는 의지는 그만큼 힘이 세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는 손에 닿는 것이면 무엇이든 감각적으로 꼭 움켜쥔다. 그리고 그 물건을 입으로 가져간다. 무언가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그래서 움켜쥐고 있는 물건을 빼앗으려 하면 빼앗기지 않으려 고사리손을 더 세게 오므린다. 그러다 빼앗기면 온 힘을 다해 악을 쓰며 운다.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엄마를 향해 우는 것이다. 살아야겠다고 울부짖는 것이다. 이처럼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 온 힘을 쏟아붓는다. 먹잇감이 나타나면 반드시 잡아야 하고, 돈벌이가 되는 정보라면 상대보다 먼저 들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그리고 선악(善惡)의 경계는 항상 모호한 것이라고 외친다.

물에 빠져봐야 살려는 마음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배가 고파봐야 배고픈 설움을 알 수 있다. 뜨거운 불에 데어 보아야 불의 무서움도 알 수 있다. 전기에 감전당해봐야 그 찌릿찌릿한 두려움을 알게 된다.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봐야 피 흘리는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 절대적으로 믿었던 사람한테 눈뜨고 있다 당하면 그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된다. 내가 속이려 하면 상대가 먼저 나를 속인다. 누가 더 먼저 속이는가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그러나 상대를 속이려 하지 않으면 속을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요즘에는 잇속 먼저 챙기는 것이 생존본능이고 절대지존이 되는 지름길이라 믿는 듯하다.

마음속에 쌓아두고 한평생 사용할 예쁜 말은 거센 파도에 떠나가지 않도록, 비구름 타고 떠내려가지 않도록 신속하게 단단하게 잇자. 듣고 나면 분노를 치밀어 오르게 하는 독사의 말은 나의 흉이나 자식의 흠 감추듯 잽싸게 쓰레기통에 버리든지 지나가는 태풍에 날려 보내고 서둘러 지우고 잊자. 소화제 마시듯 거리낌 없이 분풀이 말들을 쏟아내면 그 사람은 기분 좋을 수 있겠지만, 억지로 웃음 지으며 듣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의 모래가루 씹다 치아 부서지는 소리에 토사광란(吐瀉狂亂)만 심해진다. 하늘에서 폭포수 떨어지듯 분노의 말을 쉼 없이 쏟아붓는다면 누군가는 저 밑바닥에 누워 그 분노의 화살을 끝없이 온몸으로 얻어맞아야 한다. 피멍이 들고 있는 속살을 보면서 꽃보다 더 예뻐 보인다고 비아냥거리거나 비꼬지는 말자. 정작 내가 쏜 화살은 지목했던 당사자가 아닌 그 옆에 있던 사람에게로 날아간다. 엉뚱한 사람도 날카로운 눈치에 찔리면 몸도 마음도 모두 아프다.

‘덕분에 산다’라고 시를 써보자. 상대를 높게 나를 낮게 평가하는 여유를 가져보자. 상대를 용서하는 것은 나를 용서한 것이고, 상대를 미워하는 것은 나를 미워하는 것임을 깨닫자. 내가 잘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분명 다른 사람도 잘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뭘까? 함께 어울리며 잘 살 수 있는 그 해답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우는 가슴도 이유가 있다. 허전하다고 운다. 입을 굳게 닫고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이유가 있다. 너를 미워한다고, 너를 죽도록 미워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이웃 간에 얼굴 맞대고 사는 것도 웃는 낯으로 아름다운 인연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하는 것이리라.

음식이 부패하면 썩었다 하지만 발효되면 익었다고 말한다. 곰삭은 김치는 맛있다. 남은 세월의 무게가 가벼워질수록 이웃 간의 정이 더 달달 해지고, 말에는 향기가 묻어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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