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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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셨습니까?
  • 강서양천신문사
  • 승인 2022.03.08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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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계동 한국택시협동조합연합회 회장 (전 강서갑 국회의원)
택시협동조합연합회 회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박계동 회장 
택시협동조합연합회 회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박계동 회장 

1992년 강서구(갑)에서 제14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일약 정치권 스타로 유명한 박계동 전 의원. 정계를 뒤로 하고 택시협동조합연합회 회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그를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정계에 입문하신 계기는.

1975년 긴급조치 9호로 대학 시절 구속되어 한번 낙인이 찍히니 졸업 후 사회생활이 어려웠습니다. 그 당시에는 반체제 투쟁을 하면 그 자체로 사회적인 가치박탈이 되어 취업이고 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그러다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1979년도 최초로 민주청년인권협의회라고 하는 공개적인 민주단체를 만들었습니다. 

대부분의 민주단체들이 암암리에 숨어 활동하던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종로에 사무실을 내니 매일같이 안기부, 치안본부, 보안사, 경찰들이 상주 감찰을 했었어요. 1986년 민통련의 조직국장을 맡아 편집장이 되어 ‘민중의 소리’를 발간하고 재야 세력이 공적으로 논의해 꼬마민주당을 만들었지요. 

강서갑 지역에서 제14대 국회의원 활동 중 ‘노태우 비자금 정치 스타’로 유명하신데. 

강서구에 살고 있는 지역주민으로 강서구의 발전을 이끌고 싶어 국회의원에 출마했습니다. 만 39세의 나이로 처음 도전하는 데다 상대가 김영삼 대통령의 핵심인 민주자유당 이원종 후보여서 막강했기에 젊은 패기로 도전했죠. 

제14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고 일 년에 한 건씩은 터뜨렸어요.(웃음) 1992년 초선 1년차에 우리나라 선거사에 큰 획을 그은 한준수 연기군수사건, 1993년 뇌물을 받은 정·관계 인사들을 구속됐던 슬롯머신 사건,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까지 의미있는 정치활동들은 강서구 국회의원일 때 모두 있었던 일이네요.

택시 운전을 시작하셨다. 

14대 국회의원에 이어 강서에서 15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출마했다 낙선했죠.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지니까 만나는 사람들마다 선거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한 두 번도 아니고 어딜가든지 똑같은 질문을 해대니 답하는 것도 너무 힘들어 하던 중 기회가 되어 미국 미주리대학교 객원 연구원으로 2년 동안 있었습니다. 스탠포드, 해리티지 전략연구소를 오가며 극동 아시아 담당자들과 미팅할 때가 좋았던 기억으로 남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그 다음 목표를 서울시장으로 정했어요. 서울시장을 하려면 지역 구석구석 상황과 민심을 파악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택시운전이 안성맞춤이었지요. 약 1년 동안 택시 운전을 직업으로 하며 서울시내 안 가본 곳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니 그 때의 경험이 그 후 정치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치를 접고 택시협동조합을 설립한 이유는.

제가 52년인데 묘하게 20년 단위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어요. 72년 20살 때 대학생이 됐고, 92년 강서구 국회의원이 되어 본격적인 정치생활에 입문한 후 국회 사무총장을 끝난 해가 2012년이었어요. 그 다음 행보를 어떻게 이어갈까 고민하다 옳고 그름이 지나치게 분명하고 타협하기 보다는 제 의지를 관철시키는 성격이 정치에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죠. 그즈음 협동조합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의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라는 책을 접하고 굉장히 감명받았어요. 마침 2012년 쯤에 협동조합 기본법이 국회에서 막 논의되기 시작하고 만장일치로 통과되면서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됐죠. 어떤 분야의 협동조합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다 택시를 하면서 느꼈던 바가 있어 택시 협동조합을 설립하게 됐습니다.

2015년 법정매각돼 있는 택시회사를 인수해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는데 43% 가동률인 회사가 90% 가동률을 이루고, 월 매출이 2억4천만 원에서 6억8천만 원으로 급성장할 만큼 그 당시 획기적인 일이었어요. 그 당시 1인당 평균임금이 160만 원인 시대였는데, 조합원들이 265만 원의 평균임금을 가져갔습니다. 255개 택시회사 가운데 최우수 택시회사로 선정돼 서울시에서 성과를 인정받아 5천만 원의 포상금도 받았었지요. 소득이 높아지고 노동의 질도 훨씬 인간화되니 조합원이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웃음)

탄탄대로를 걷던 협동조합이 몇 년 동안 어려움을 겪었는데.

협동조합이 탄탄한 뿌리를 내리지 못하던 시대이니 제가 협동조합의 집단갈등문제를 몰랐어요. 협동조합의 시초를 닦았던 로버트 오웬, 푸리에, 생시몽 등도 모두 집단갈등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었죠. 약 3년 동안 계속되는 고소, 고발로 힘들었지만 14건 중 12건은 무혐의 판정을 받았고 나머지 2건도 조합원을 위한 일이었어요. 예를 들면 협동조합 기본법상으로는 퇴직 출자금 반환을 다음 해 정기총회에서 출자금 반환 의결을 하고 반환하게 돼 있지만, 개인택시를 구입해야 하거나 지방·해외로 이주하는 조합원들에게 즉시 반환하기 위해 힘썼던거죠. 수정이 필요한 기본법이었던겁니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 오해가 풀린 후 고소, 고발했던 조합원들이 미안하다고 다시 돌아오더라구요.(웃음)

지금은 다시 차근차근 택시협동조합의 토대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마카롱 택시, 마포에 법정매각된 택시회사, 성북구에 한국택시, 천호동 영림택시를 인수할 계획에 있고 천안 등 지방으로도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제가 강서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때, 그 당시 마곡지구가 허허벌판임에도 불구하고 강서구 전체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은 마곡을 개발하는 일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공약으로도 내세우고 실제로 마곡지구사업계획을 처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마곡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 참 흐뭇합니다.(웃음)

그래서 다음 계획은 강서구에서 이뤄보려 합니다. 부천으로 가는 대로 인근이 개발제한구역에 묶여 있다 택시발전법에 따라 공동차고지가 앞으로는 허용될 예정입니다.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는 택시 차고지들을 모아 멋진 디자인과 편의성을 갖춘 대한민국 최초의 공동차고지를 구축하는 것이 올해 목표입니다. 전기차 부스, 휴게 시설, 기사식당 등이 통합돼 체계적이고 시스템을 갖춘 차고지로 계획 중입니다. 이는 공항에서 가까우니 장기주차 서비스도 가능하게 됩니다. 

강서구와 택시협동조합의 발전이 함께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봐주시고, 강서구가 제게 있어 정치적 고향이니 만큼 무궁한 성장을 이어나가길 바랍니다. <박선희 기자>


이 력
현재 한국택시협동조합연합회 회장
2015.7~2018 한국택시협동조합 이사장
2008.7~2010.6 국회 사무총장
2007.8 한나라당 공작정치특위위원회 위원장
2007.5 한나라당 전략기획본부 본부장
2006 제17대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
2004.7~2006 제17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
2004.7~2006 제17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2004.5~2008.5 제17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송파을)
한나라당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1992.5~1996.5 제14대 민주당 국회의원(강서갑)
1972~1994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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