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인생학교 글쓰기…마장동 주민자치회에서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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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인생학교 글쓰기…마장동 주민자치회에서 열어
  • 원동업 기자
  • 승인 2022.07.26 1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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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동 주민자치회에서 5060 인생학교 글쓰기 교실이 열렸다. 마을자치회 간사 이재희(중앙 소개자) 님과 민선희 활동가가 전체 내용의 진행을 함께 맡아 진행해 주었다.

마장동, 5060인생학교 글쓰기교실

지난 6월 28일부터 7월 19일까지, 마장동(동장 김평선) 주민센터 3층 다목적실에선 5060 인생학교 '글쓰기' 수업이 열렸다. 마장동주민자치회(회장 김영진)가 주최한 주민자치활동 지원사업의 하나. 5060인생학교는 은퇴를 앞두거나 생애 전환기를 앞둔 주민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만남을 통해 삶의 활력을 찾도록 돕는 프로그램. 당시 참여자들의 글을 마련해 싣는다. 글을 통하여 '성하의 여름'을 느끼고, 각기 지역의 의미도 되찾아보는 특별한 경험을 하시길 빈다. - 편집자 주

1. 비오는 날
- 빈대떡, 꽃모종, 까만 가마솥 보리볶음 생각나

어릴 때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자랐다. 비오는 날에는 친구들과 봉숭아꽃과 다양한 꽃을 모종하여 심고 나면 마음이 뿌듯하였다. 비 오는 날이면, 또 어머니께서 부엌 까만 가마솥에 보리를 볶아 주셨다. 여름 방학때 친구들과 수영을 하며 간식으로 먹은 기억이 난다. 
내 고향은 신안군 흑선면 사리인데, 대흑산도 소재지이다. 마을 앞바다에 작은 섬들이 나란하게 자태를 보이는 곳. 거기서 모래 백사장에서 맘껏 뛰놀고 수영한 기억들이 이번에 제주여행 모래 백사장 여행 할 때 생각났다. 비오는 날에는 빈대떡을 붙여 아이들과 간식으로 부담 없이 먹은 때도 종종 생각난다!
- 박연아 / [대흑산도서 나고, 현재는 청계천 마장동 거주] 

 

 

2. 아버지와 은어
- 땡감 떨어진 길에서 어릴 적 추억에 잠기다

 

 

 

 

 

 

 

오늘 아침에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동사무소로 끌려가다시피 해서 같이 가게 되었다. 왜? 5060 건강체크 프로그램 받기 위해서다. 가는 도중에 동네 길 옆에 감나무에서 어린 땡감이 요즘 태풍에 떨어졌나 보다. 나는 그 땡감을 보는 순간 옆에서 같이 걷는 아들에게 
-이 땡감을 보니 내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아버지 왜요?
-음, 7월쯤 되면 한여름이잖니. 그때 이 땡감 주어다가 짓이겨서 집 부엌에서 재를 같이 섞어서 냇물에 푼단다.
-왜요? 

이종수

-7월쯤 날씨가 30도 이상이면 냇물도 미지근하지. 그때 이 땡감을 푸는 거야.
-무엇 때문에요? 
-음. 사실은 냇물에 은어라는 물고기가 한참 크고 있지. 그것을 잡아 회쳐 먹고 기름에 튀겨먹어도 아주 맛있단다. 왜냐하면 은어 고기는 비린내가 안 나고 담백하단다. 

-아버지 다음에 우리 같이 해봐요. 재미있겠어요.
-그래 한번 기회를 보자꾸나. 
우리는 동사무소에서 혈당과 혈압체크하고. 집으로 오는데 소낙비를 듬뿍 맞으며 집에 왔다. 
- 이종수[삼척이 고향, 마장동은 제2의 고향] 

 

3. 마장동 굴다리
- 여름 물난리 속, 따뜻한 이웃들 정

김창호

마장동에는 도선사거리에서 마장역 가는 방향으로 굴다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 위로는 경원선이 지나가구요. 내가 중학교 다닐 때쯤 지금처럼 비가 많이?오면 굴다리가 물에 잠겼습니다. 어른 허리 높이쯤? 되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려면 그 길을 통과해야만 했지요. 
그렇게 물구경만 하고 있는데 주변에 몇몇 총각(?)들이 어디선가 큰?스치로폴 판대기 같은 것들을?가져와서?학생들과 사람들을 태워 날랐습니다. 누구 하나 물에 빠지지 않고 무사히 건넜고 우리들은 그 모습을 꽤나? 재미있게 구경하던 기억이 납니다. 소설가, 박완서 님의 청계천 묘사 중?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순식간에 펼쳐진 그 장면들은 어렵지만 참 순수했던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김창호[마장동서 나고, 자라 지역일까지 맡고있다]  

4. 토렴, 알알이 스며드는 맛

- 마장동 식문화의 정수라고 할 국밥집 토렴 

마장동은 김영진을 설명하고 포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브랜드이다. 마장에서 태어나서 지금껏 마장에서 살고 사업하고 있는 기본 뼈대가 있다. 또한 나에 하루 24시간이 상당수 마장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마장동에는 청계천이 있고 청계천 하류 1.6km를 흐르고 있다. 마장 청계 주변에는 1930년대부터 야채시장이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야채 시장 주변에 하나 둘 씩 국밥집이 생겨났다. 설렁탕 원조라고 티브이에 나온 옥천옥, 우거지가 잔뜩 들어간 선지해장국이 유명한 대중옥, 간판도 없이 운영하는 갈비탕 전문 금호식당, 청계천 지류인 용두천에 곰보추탕 등 식당들이 즐비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 '왕십리' 속에 주인공인 준태가 자주 가는 식당이 바로 '대중옥'이었다. 청계천에 자리를 잡은 식당들의 특징은 24시간 영업을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술꾼들이 어디선가 술을 먹다가 새벽녘에 성업한 곳을 찾아오는 곳이 바로 청계천 국밥집이었다. 마무리로 해장국으로 속을 달래곤 했던 곳들이다. 대중옥에는 우랑(숫소의 정낭)과 송치(암소 배 속에 든 새끼) 등 다른 곳에서 팔지 않는 독특한 메뉴가 있었다. 또한 통 미꾸라지를 통째로 걸쭉하게 끓여내는 서울식 추탕도 있었다. 

마장동 국밥집들에 두 번째 공통적인 특징은 '토렴'에 있었다. 밥이나 국수 따위에 따뜻한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며 데우는 방식을 토렴이나 한다. 이런 토렴을 하려면 육수가 하루 종일 끊고 있어야 가능했다. 

김영진

밥은 미리 지어두면 찬밥이 되기 마련이고, 이를 따뜻하게 만들어 먹기 위하여 찬밥에 뜨거운 국물을 부어 밥을 따뜻하게 만들어 손님에게 내는 방법이 바로 토렴이다. 이렇게 토렴하면서 국물로 여러 차례 밥을 덥히므로 밥을 넣고 끓인 것에 근접하게 되어 따뜻한 국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쌀밥 낱알마다 국물이 배어들게 되므로 밥 자체가 맛있어지게 된다. 토렴에 횟수를 더 많이 반복할수록 국밥은 더욱 맛있어진다고 한다. 그릇에 밥을 담고 뜨거운 장국으로 토렴한 후 그 위에 고기와 달걀 지단을 얹으면 하나의 국밥이 완성된다. 한마디로 토렴은 국밥집 주인장이 손님에게 내미는 첫 인사이자 정성이라고 볼 수 있다. 노련한 주인장은 때로는 토렴을 하면서 손님과 인사로 말도 붙인다. 토렴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국밥 맛이 다르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을 보면 토렴이 상당한 솜씨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관계에서 나오는 토렴 맛에 끌려 수십 년간을 단골로 찾아가고 그 맛에 내 입에 인이 박여서 지금껏 나 역시 찾아가고 있다. 

토렴의  역사는 이랬다고 한다. 배고픈 사람이 끼니를 요구할 때, 집 안에 새로 지은 밥이 남은 게 없고 먹다 남은 보리밥을 줄 때가 있는데, 그땐 뜨거운 장국으로 토렴해서 주는 게 없는 사람에게 베푼 최소한 도리였다고 한다. 잠시 마장동과 청계천 국밥 토렴을 생각해보았다. 토렴은 수고이고 정성이고 솜씨이다. 우리네 사람 관계도 토렴처럼 때로는 소통 안되는 사람들과도 계속 반복적인 시도를 하는 수고를 하고 그것이 솜씨로 발휘되어서 차가운 관계가 뜨거운 관계로 변화했으면 좋겠다.
- 김영진[4대째 마장동서 살고 있는 본투비 마장동김씨]

5. 서촌과 북촌
- 화초 혹은 잡초에 대한 단상

며칠 전 종로구 옥인동, 속칭 서촌이라고 불리는 동네로 사진 촬영을 갔었다. 오래된 가옥들과 콘크리트건물들을 분류하여 구분하는 듯 얼히고 설킨 전깃줄로 어지러운 전봇대들이 우뚝 서 있는 곳이었다. 촬영 테마와 소재를 생각하는 와중에 눈에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이 있었다. 골목길변 옛가옥이든 현대식 빌라든 대문과 입구에 내방객을 환영하는 듯 놓여져 있는 화분들과  담벼락과 골목길 보도블록 틈새를 비집고 나온 잡초들이었다.
문득 일년여 전에 돌아보았던 북촌 골목길이 생각났다. 그곳 옛한옥들은 거의 다 육중한 대문을 갖고 있던 것 같은데, 한결같이 잠겨있었고 문앞에 화분이 나와 있는 것을 보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벽과 벽 사이 골목길은 매일 청소하는 듯 깨끗하여 그 흔한 잡초들 또한 보지 못했던 것 같았다.

북촌과 서촌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물론 화분과 잡초를 볼 수 있냐 없냐의 차이가 계기가 되었지만, 그것으로 각기 동네에 사는 이들의 성향 차이까지 확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예로부터 북촌에는 양반사대부들이 많이 살았고, 서촌에는 상업과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어쩌면 거주 인적 구성원의 특성 상 북촌은 내부지향형이고 서촌은 외부지향형에서 오는 세상을 보는 관점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북촌은 유무형의 자산을 지키고자하였고 서촌은 화합과 조화를 중시하다 보니 개방형 마인드 표시로 대문앞에 화분을 두고 그리고 자연상태의 잡초를 방치함으로서 내방객들과 가질 수 있는 긴장과 경계를 완화시키는 효과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서촌인들에게는 적어도 화초와 잡초를 구별하여 차별적인 대우를 하는 것은 아닌 듯하였다.

화초와 잡초.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싶진 않다. 식물 존재 자체적으로는 실제 아무 차이가 없다. 단지 사람이 설정하고 규정한 실용적인 관점에서 구분되는 것뿐인 것 같다. 사람 손을 타냐 아니냐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집에서 애지중지 키우던 반려견이 주인에게서 버림을 받게되면 천덕꾸러기같은 유기견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한다.

김석한

적어도 서촌에서는 화초에 비해서 못생기고 화려하지 않지만 생활공간 한 곳에서 버젓이 생생한 자태로 서촌 사람들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것을 구태여 잡초라고 분류하여 부를 필요가 없는, 또 하나의 이쁜 생명체일 뿐이다.

화초도 마냥 방치하면 잡초가 된다고 한다. 잡초 또한 마냥 방치하면 사람에게 해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식물에게만 적용되는 얘기가 아니다. 숨쉬고 자라는 생명체 모두에게 해당하는 얘기다.

오늘부터라도 도로변 아스팔트와 인도 경계면을 헤집고 빼꼼히 얼굴 내민 이름 모를 풀일지라도 그의 강한 생명력을 격려하며 이뻐하자. 서촌 좁다란 골목길변 오래된 가옥담벼락과 붙어있는 장독대 콘크리트 틈새로 살짝 삐져나온 갸날픈 강아지풀에 잠자리가 앉아 있었다.
- 김석한[광진 주민, 지역을 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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