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제다
상태바
○○○이 문제다
  • 강서양천신문사
  • 승인 2022.08.24 10: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해솜 기자 / 강서양천신문
권해솜 기자 / 강서양천신문

 

나는 서예가 하석 박원규(何石 朴元圭)의 제자다. 하석 선생은 한국 서예를 대표하는 대가이고, 전통의 가치를 지키면서 그만의 창작 세계를 가지고 있는 예술가다. 2016년 인터뷰를 통해 만났다. 

2020년 제자들의 서예 전시회인 ‘겸수회전’을 계기로 입문했고,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대가의 제자라고 하니 으레 글씨를 잘 쓰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매일 쓸 수 없고, 한문을 제대로 배운 세대가 아니다. 그나마 가끔 놀이 삼아, 재미 삼아 세필(細筆, 굵기가 가느다란 붓)을 잡는 정도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처음 선생님 앞에서 붓을 잡았을 때 참 난감했다. 기운을 감당할 수 없었다. “죄송하지만 기초를 좀 배우고 오면 안 될까요?”라고 했다. 그의 대답은 “No!”였고 단호했다. 처음부터 좋은 스승과 함께해야 한다고 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뭐든지 처음부터 좋은 환경에서 잘 된 것을 보고 배우고 자라는 게 중요하다. 글솜씨는 선생님이 서예 하시는 모습을 보며 익힌다. 이곳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됨됨이’와 상호 간 예절을 배운다. 

가령 일이 있어 수업이 끝나기 전 석곡실(하석 선생의 창작 공간)에서 나오게 되면, 스승은 배웅하기 위해 바깥 계단까지 나와 선다. 그리고는 제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계시다가 수업을 위해 들어가신다. 

또 있다. 본인에게 ‘아호’가 있어도 자기소개를 할 시 이름을 말해야 예절에 어긋나지 않는다. ‘호’는 남이 불러주는 것이다. 호를 말하고 싶다면 이름과 함께 호를 언급하면 된다. 나이 많은 이들 중에도 이를 몰라 본인의 이름이 아닌 ‘호’만을 말하는 사람이 많다. 선후배의 관계도 예의범절 속에 형성된다. 서로가 위하는 분위기 안에서 폭넓은 인생의 면면이 자연스레 묵색 퍼지듯 온몸으로 퍼진다.

최근 양천구로 취재 다니다 생각지 못한 시점, 장소, 사람으로부터 ‘예절의 바닥’, ‘됨됨이의 부재’를 맛봤다. ‘정치의 꽃’이라 불리는 의회, 활짝 피워도 모자랄 판에 50일 되도록 열리지 않는 양천구의회에서다. 뒤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기자와 의원이라는 서로의 완장을 내려 놓고서라도 인간 대 인간으로서 존중이 어디에 있나 싶다. 

양천구의회에서 문제는 단연 의장 후보 선출과 관련한 부분이다. 이를 둘러싸고 뭔가를 물어도 유독 질문에 대해 돌려서 말하는 이가 있다. 대화하자고 하니 경계 태세를 갖추고 본인 얘기만 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구의회를 많이 방문한 건 아니지만 인사 없이, 웃음기 없이 말을 마친 첫 사례였다. 회사로 돌아와 녹취를 풀어보니 그의 이야기에 알맹이가 안 보여 애써서 해석했다. 끝없는 도돌이표, ‘뫼비우스의 띠라고나 할까? 지금까지 들어왔던 그의 장점이 무색했다.

또 다른 한 명과의 상황에서 결국 내 기분은 바닥을 쳤다. 사실 확인차 전화하고 카톡을 남겼다. 한참 뒤 질문에 대한 답 없이 두 문장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기자님, 허위사실 유포하시면 불가피하게 법적 대응 취할 수밖에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참고 바랍니다”였다. 취재에라도 응한 뒤 그랬으면 좋았으련만. 무슨 글을 쓸 줄 알고 지레짐작할까. 나는 그의 역할에 대해 질문했다. 물론 그가 조금이라도 대답하면 꼬리 질문을 할 생각이었다. 한마디 답 없이 ‘허위사실’이란 카드를 쓸 줄 몰랐다. 

마침 그들은 공생 관계다. 선수라면 링 위로 좀 올라와 한판 붙어야 하는데, 장외 활동에 집중한다. 정작 소중한 한 표를 얻어야 하는 이들은 물론 양천구민 또한 안중에 없다. 아까운 시간은 지금도 산화 중이다. 

취재하면서 많은 얘기를 듣다 보니 그들 위에는 ‘형사 가제트’의 클로우 박사를 연상케 하는 이가 있다. 작품에서 손만 등장하는 클로우 박사는 ‘형사 가제트의 주요 악당을 이끄는 최종 보스’로 나무위키에 소개돼 있다. 문제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마지막에 꼭 그 클로우 박사같은 이가 등장했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의 문제 행동 근원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싶다. 물론 그 위로 올라가면 또 누가 나올지 모른다.

말이 길어지면 ‘허위사실 유포’와 ‘사실무근’을 무기로 쓸지 모르니 삼가야겠다. 

기자 혹은 작가라는 직함을 달고 살면서 나는 참 고운 인생을 살았나 보다. 비교적 좋은 사람을 만나 왔고, 상하좌우 구분 없이 대부분 좋았다. 그래서 그런가. 별거 아닌 일에 펜대가 굴러간다. 그래도 그들은 4년 동안은 구의회에 버티고 있을 이들이고, 나 또한 지역지 기자를 하고 있다면 계속 봐야 할 텐데, 처음부터 이러니 대책이 서지 않는다. 

이제 앞서 언급한 이야기로 마칠까 한다. “보고 배운다”란 말이 있다. 특히 나의 스승, 윗사람, 수장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르게 행동하고 옳은 본보기를 보이면 따라가게 돼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 또한 따라 하게 돼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