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비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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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비 행
  • 정소원 기자
  • 승인 2022.12.14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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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원/성동신문 취재부장
정소원/성동신문 취재부장

띠리리릭.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에 이어 문이 열린다. 터벅터벅. 눈을 감고 있는데도 현관으로 들어오는 광경이 그려진다. 동생방, 언니방을 차례로 거쳐 발소리는 내 방문으로 다가온다. 오지 마라, 오지마라, 머릿속으로 세차게 중얼거리지만 부질없다.

자냐.

끼이익- 문이 열리며 여느때처럼 아버지의 낯익은 술취한 목소리가 들렸다.

열린 문 틈 사이로 새어들어온 빛이 내 감긴 눈위를 짓눌렀다. 모른 척 끝까지 자고 싶었지만 저쪽 방에서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들어보니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언니와 동생은 이미 잠에서 깨어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싫다고 말하기에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있었다. 몸을 일으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기적 어기적 떠지지도 않는 눈을 손으로 비비며 방문을 열고 나왔다.

앉아서 이거 먹어라.

탁. 아버지가 술잔을 내려 놓으며 내게 한 말이었다. 식탁 위에는 아버지가 소주병과 함께 사온 치킨이 올려져 있었다. 그 앞에 언니와 동생이 죽어있는 채로 이미 식탁에 앉아 있었다. 나도 잠결이었지만 그들의 정신도 나처럼 잠에 취해 있을 것이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속에서 솟구치는 짜증을 억누르며 움직이지도 않는 다리를 이끌고 화장실에 들어간다. 감긴 눈이었지만 수도꼭지 위치를 습관적으로 잡아냈다. 화장실에 있을 시간을 벌기 위해 일부러 수도꼭지를 세게 틀었다. 밖에 나가기도 싫었고, 잠을 깨기까지는 내게 오랜시간이 필요했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어서 침대와 다시 한몸이 되고 싶었지만 그 일은 불가능한 소망일 것이었다. 콸콸콸 쏟아지는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그면 그마나 눈이 반쯤 떠졌다. 손이 얼 것 같았다. 밖에 겨울철이라 그런지 몸이 덜덜덜 떨려왔다. 나는 이 집이 정말 싫었다. 다시 울컥 짜증이 치밀어올랐지만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지금 현재 아무것도 없었다. 이틀 전 이미 난 집을 나와 친구 집에서 생활한 전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조용히 이 순간을 넘겨야 했다. 비행한 반역죄인의 대가- 아니, 사실은 비행하지 않아도 평소에 겪었을 일이었겠지만. 몇 시간 못 자고 아침에 등교해야 한다는 마음의 준비를 한 채 밖으로 나섰다.

그렇게 화장실을 나와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니 새벽 3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너희 세 명 키우는 게 쉽지 않았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방해되지 않게 최대한 느릿느릿 식탁 의자를 끌어 앉았다. 언니는 기계적인 젓가락질로 치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그 맞은 편 한참 클 시기의 남자아이인 동생의 젓가락질은 치킨을 집는 데 적극적이었다. 항상 같은 이야기, 같은 풍경이었기에 어떤 이야기 대목에 다다랐는지 뻔히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곤 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야기에는 항상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가 필요했다. 대화를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일방통행을 받아들여달라는 것이었다. 상대방이 싫든 안싫든 아버지가 이야기를 멈출 때까지 그 누구도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거기서 맞벌이로 아침부터 밤까지 힘들게 일하는 엄마는 제외됐고, 고만고만한 아버지의 자식들이 대상이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언니와 동생을 희생양 삼아 자리를 몇 번 벗어난 적은 있었지만 최근 집에서의 가출 사건으로 오늘 나는 이 자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암담함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잠이라도 몰래 잘 심산에 눈을 감고 있었다. 그때였다.

정소원이!

눈을 감은 것을 걸린 걸까, 사실 아직 졸지 않았는데. 고개를 들어 졸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냈는데 왠일로 아버지는 내가 졸았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저거를 직접 탯줄을 잘랐단 말이야...

전에 엄마한테 얼핏 들어본 얘기였다. 자세히는 아니고 내가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태어났었다는 얘기. 그리고 바쁜 생활에 치여 나도 엄마한테 궁금해하지 않고, 엄마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평소 술취하면 아버지는 자신의 화려했던 고교공대 포함 학창 시절 영웅담과 군대 이야기, 직장인의 고충과 활약상을 들려주시곤 했었다. 결론은 똑같았다. 아버지도 해내는 걸 이렇게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왜 너희는 못하냐.. 확률과 통계를 중시하는 아버지는 너희는 지금 이정도 위치에 있어 예언까지 곧잘 하곤 했었다. 그 순간 그 말을 들은 우리가 어떤 생각이 드는가의 여부는 아버지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던 아버지가 오늘은 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빨간 줄이냐, 파란 줄이냐. 손이 떨렸었지.. 내가 잘못하면 저것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잘못 자르는 순간 피가 철철철 쏟아져 나오겠지..

그 때 병원이 도착하면 이미 늦을 거라는 생각이 나자 머리가 하애지고 수화기 반대편에선 간호사가 어서 자르라고 하고 있었어..

아버지는 그때가 어제라도 되는 듯 손을 가위모양 집게로 한 채 자르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술에 취해 아버지가 손으로 화려하게 피날레를 할 때면 또 자랑이 시작됐구나 웃어넘기거나 짜증이 났었는데 오늘따라 진지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이 전체가 다 떠져 지켜보고 있었다.

공대에서 전선 자르는 건 익숙했는데 왜 그리 탯줄 자르는 건 어렵던지..

내 생애 그렇게 집중한 건 처음이었을게다 온신경에 집중을 하고 탯줄로 짐작되는 것을 잘랐어 아마 소원인이 배꼽이 이상하면 다 내탓이니 소원이 보기에 이상하면 이 아버지를 탓해라..

또르륵. 술이 술잔에 가득 채워지고 아버지는 술잔을 들어 목구멍으로 넘겼다.

술을 먹어야만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것처럼 아버지는 서둘러 소주병을 들어 술잔을 가득 채웠다. 젓가락질로 치킨을 들어 오물 오물 씹은 후에 아버지는 이야기를 다시 이어나갔다.

너는 위에 언니가 있었어.. 출산 시기를 잘 못 맞춰 수인이 언니가 잘못된 일로 병원에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 3일이나 늦게 시기를 알려준 병원 의사가 미안하다고 했지.. 거기서 뭐 어쩔 거야

멱살을 잡고 내 새끼 잘못됐으면 어떻게 할거냐고 뭐라 할 수도 없고 
아 거기서 의사새끼가 내 새끼 보고 정말 이쁜 따님이시네요 넉살좋게 이러는데

나도 허허 웃고 말았지.. 세상이 끝나는 줄로만 알아 간 떨렸었는데
그래도 내 애기가 태어난게 얼마나 다행이냐..

나는 이제 졸리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를 보며 이야기를 듣는게 익숙하지 않았기에 또렷한 눈으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도 나를 쳐다보지는 못했다. 맞은 편에 치킨 먹는 게 끝났는지 꾸벅꾸벅 조는 동생이 눈에 들어왔지만 이야기를 듣는데 방해되지 않았다. 언니도 잠이 깼는지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근데.. 저것은 또 몸이 약했단 말이야..! 열도 많이 나서 지하철 타는데

픽픽 쓰러지고 길 가다가 쓰러지고 응급실 가고.. 내가 저것 때문에 차를 샀어요

차를.. 차를 타면 병원에 곧바로 갈 수 있잖아
차 사서 걱정 끝났다 싶었는데 이번엔 팔이 빠졌어
여보 수인이가 팔이 빠졌어요 네 엄마가 울면서 말한 게 다섯번이나 돼..
그러면 또 헐레벌떡 뛰어가 병원에 가기도 하고..
팔 빠진 걸로 끝이냐 하면 천식에 걸려 숨 막힌다고 여러번 새벽에 병원에 갔었지..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숨이 막혀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용기를 내어 큰방 문을 열었었다. 엄마는 짜증을 냈지만 아빠는 묵묵히 옷을 입고 나를 차에 태웠었다. 그렇게 문을 연지 5분 만에 나는 차를 타고 동네병원 응급실로 향했고 대기 시간이 오래 걸린 뒤에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날 아빠는 내가 치료 받은 후 1시간 뒤에 바로 출근을 해야 했었다.

왜 그런 건 기억하지 못하고 이 아버지가 했던 나쁜 말들만 기억하는지...

아버지의 말끝이 흐려졌다. 탁. 마지막 술잔이었다. 식탁의 울림을 느끼며 난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이 진짜 누구였는지를 실감했다.

나는 너희가... 내가 너희에게 독하게 말했을 때
그 독설이 잘못됐다고 증명해주길 바랬다..

말을 마치고 아버지는 비틀비틀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는 소주 5병과 치킨, 텅 빈 술잔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언니와 동생과 함께 식탁 위를 치우고 목이 말라 물을 벌컥벌컥 다 같이 들이켰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물을 다 마시자 언니와 동생은 바로 방으로 향했다. 평소 같았으면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날 나였다. 그러나 나는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내 시선은 분리수거 통에 버려진 소주병에 꽂혀 있었다. 저것은 단순히 소주병이 아니다- 아버지의 비행이었다. 밖에서는 모범적인 가장인 우리 아버지의 자식들로 인한 비행- 엄밀히 오늘은 나 때문이었다. 나는 그동안 아버지의 비행의 의미를 모르고 있었다. 되려 아버지의 비행을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는 탈선으로 여기고 비웃었다. 아버지도 나의 비행이 탈선으로만 보였을까?

내가 가족들에게 내 고충을 알아달라 하기를 원하듯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혼자 잘난체 또옥또옥한체 다 하면서 아버지에게 다양한 정답이 있음을 인정하고 나를 받아들이길 요구했지만 정작 그렇게 주장하는 나는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고개를 푹 숙인채 이야기를 흘려버렸었다. 아버지의 비행을 철저히 외면하고, 잠을 깨우는 부주의함을 원망하기에 바빴다. 몸을 괴롭히는 저 쓴 독약을 몸으로 받아들일 때 아버지는 무슨 감정이었으며 무슨 생각이었을까-

세상을 다 산 것처럼 똑똑한 체 했던 게 생각나고, 방으로 걸어들어가는 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이 겹쳐져 나는 차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거실 창으로 아침 햇살이 비쳤지만 여전히 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정소원 취재 부장 <smartsow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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