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구에 살다가 강서구로 이사를 간다고 하니 지인이 대뜸 그러더라고요. 후진 동네에 왜 가느냐고. 그래서 제가 그랬죠. 세상에 후진 동네가 어디 있으냐고. 행복한 사람이 가서 살면 거기가 행복한 동네라고 말이죠.(웃음)”(흰샘)
20여 년 전 IMF로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그 충격으로 남편 흰샘(72·별칭)이 쓰러졌다. 유복하진 않아도 남 부러울 것 없던 부부의 삶은 크게 휘청였다. 교회 봉사밖에 모르던 부부는 일순간 도움을 받아야 할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우여곡절 끝에 부부는 13년여 전 강서구 방화11단지 영구임대아파트에 새 둥지를 틀었다. 몸이 불편한 남편과 그의 팔다리가 되어 줘야 했던 아내 진달래(71·별칭)는 고단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주민 모임 ‘풀꽃향기’를 만들어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를 시작했다.
수급자이면서도 이웃을 위해 적극 봉사를 하신다고요.
진달래_가진 게 없어서 정부 지원을 받아 살고는 있지만, 받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교회 봉사만큼이나 여기 단지에 함께 사는 외롭고 힘든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흰샘_저는 현재 풀꽃향기의 상임고문, 아내는 회장 직을 맡고 있어요. 말이 회장이지, 제가 몸이 불편하니까 봉사부장이자 활동가 역할을 오래 해왔죠. 아내는 봉사에 필요하다면 집에서 살림살이든 먹거리든 다 들고 나와서 해요. 우린 ‘우리 것’이 없어요.(웃음)
흰샘은 2013년 우연치 않게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프로포절 지원 사업인 ‘마을은 학교’ 강좌를 들었다. 처음엔 그저 빈자리를 채워주려던 것이었다. 강좌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이대로 일회성 모임으로 끝내기엔 내심 아쉬웠다. ‘좋은 강의를 들었으니 우리도 무언가를 해보자’고 제안했고, 2014년 가을께 첫 모임을 가진 후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주민 모임 ‘풀꽃향기’를 시작했다.
어떤 봉사를 하시나요.
흰샘_초기에 텃밭 하나가 주어졌고, 회원들과 거기에 무얼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상추 모종을 심어 이웃과 나누기로 했어요. 채소 수확물을 꾸러미로 만들어서 취약계층 어르신들에게 전달했고, 배추 모종을 심어서 김장 나눔도 해봤어요. 저희가 하기엔 너무 힘들더라고요.(웃음) 그래서 텃밭에는 무를 심어 동치미를 만들어 나눠 주고, 배추는 따로 구입해서 김장 나눔을 하고 있어요. 구정에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가래떡 썰기 행사를 열어 떡국떡을 나눠 드리고 떡국도 끓여서 함께 먹었죠. 봄에는 쑥을 뜯어 쑥개떡을 만들어 나눠 먹기도 하고요. 마을 윷놀이 행사를 열어서 주민들과 어울림 장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 많은 일을 어떻게 다 하시나요.
흰샘_8~9년째 꾸준히 활동하다 보니, 이제는 때 맞춰 기다리는 분들도 계세요. “우리 집에 남은 쌀이 있으니 가져가서 가래떡 행사에 사용하셔라”, “전통 된장 판매는 언제 할 거냐”고 먼저 물어보는 분들이 계시죠. 그럴 땐 정말 봉사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나누면서 산다는 게 이웃에게 서로 향기가 되고 참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 모임 이름도 ‘풀꽃향기’라고 지었어요. 나눔의 향기가 널리 널리 퍼져 나가길 바라면서요.
진달래_저희 부부는 양천구에 있는 교회에 다니면서 오랜 기간 봉사를 해왔어요. 고맙게도 그 교회에서 저희 김장 나눔 봉사에 지속적으로 후원을 해주고 있어요. 그 후원금도 소중한 헌금이잖아요. 한 푼도 허투루 쓸 수 없죠. 모르는 분들이 후원해 주시기도 해요. 감사한 마음으로 이웃을 돕는 데 사용하고 있어요.
흰샘_‘곳간은 열어야 다시 채워진다’는 생각으로 아낌없이 나누고 있어요. 대신, 철칙이 있죠. 회계 기록은 꼭 정확하게 남기고, 회비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는 쓰지 말자. 이웃과 마을을 위해서만 써야 한다.
새해 바람이 있으신가요.
진달래_이렇게 봉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사는 날까지 저희 부부 건강하고, 여생 동안 조금이나마 착한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도움이 꼭 필요한 곳, 절실한 분들에게 저희의 봉사가 닿기를 바라고요.
흰샘_저희는 복지관과 주민들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앞으로도 그러고 싶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