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 18 야간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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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18 야간산행
  • 김정민 기자
  • 승인 2023.01.21 0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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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영
수필가⋅문학평론가⋅문학 강사⋅이야기가 있는 문학풍경 대표저서; 가위바위보⋅반딧불 반딧불이⋅스타 탄생의 예감⋅영화 쏙쏙 논술 술술⋅이야기가 있는 문학풍경⋅카페 정담
수필가⋅문학평론가⋅문학 강사⋅이야기가 있는 문학풍경 대표저서; 가위바위보⋅반딧불 반딧불이⋅스타 탄생의 예감⋅영화 쏙쏙 논술 술술⋅이야기가 있는 문학풍경⋅카페 정담

어둠이 내린 산길을 걸어서 북한산 백운대 정상에 올랐다. 하늘에선 별빛이 쏟아지고 도심에선 불빛이 깜박거린다. 온기가 남아 있는 바위에 누워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이어진다. 지나간 삶의 여러 모습이 하나, 둘 떠오르기도 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잡으려는 현실의 고달픈 여정이 드러나기도 한다.

소심한 성격은 작은 일에 매달려 변화에 적응하는 데 힘이 들었다. 걱정거리를 운명처럼 달고 살았다. 아름다움을 보면서도 아름다움 뒤편의 그림자를 먼저 생각하는 어리석음 속에서 지냈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욕심을 부리기도 했다. 내 삶을 스스로 개척하기 보다는 남의 운명 속에 더부살이로 살아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진실 앞에서 용기를 잃고 거짓과 타협하는 비굴한 모습도 있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은 결코 나의 불행이 될 수 없다는 억지 주장도 해 보았다. 인생의 목표가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추구하며 살았는지 보이지 않는다. 캄캄한 어둠이 마음속에 드리워져 있다.

어둠 밝히는 도심의 불빛을 바라보며 내 마음 속의 불꽃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았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 또 하루가 지났다. 도대체 고통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묻고 또 물어도 대답이 없다. 인생 애환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산에 올랐는데 사려思慮의 몸뚱이만 키웠나보다. 밤이슬이 촉촉하게 내렸다. 하산하기 위해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잠이 든 큰 바위를 지나서 계곡으로 들어섰다. 시원한 물줄기가 밤을 잊은 채 소리 내어 흐르고 있다. 계곡을 지나는데 어둠 속에서 커다란 물체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깜짝 놀라서 걸음을 멈추고 전방을 주시했다. 물체는 계속해서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에 두려움이 쌓여갔다. 이렇게 야심한 밤에 나무에 매달려 움직이는 물체는 무엇일까. 잔뜩 긴장하고 시선을 집중했다. 상상 속에서 불길한 생각은 점점 더해 갔다. 실체를 파악하기에는 너무나 큰 두려움이 앞섰다. 별의별 생각이 짧은 시간에 수도 없이 이어졌다. 부정적인 생각이 눈덩이처럼 쌓여가는 상황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간신히 힘을 내어 물체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하산하는 길목에 물체가 있었기 때문에 그곳을 지나지 않고서는 산 아래로 내려갈 수가 없었다. 순간, 발을 헛디뎌 앞으로 넘어졌다. 정신이 번쩍 들고 등골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지나치게 긴장이 되어서인지 조그만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들고 있던 손전등도 켜지지 않았다. 넘어지면서 고장이 난 것 같았다. 무서움이 배가 되었다. 오랫동안 야간 산행을 했지만 이렇게 난감한 상황에 처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뒤로는 거대한 인수봉이 버티어 서 있고 앞으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가 가로막고 서 있으니….

한참만에야 물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 등산객이 나무에 걸어 놓고 간 옷이 바람 따라 흔들렸던 것이다. 오해가 풀리니 두려움도 사라졌다. 나뭇가지에 걸려 있던 등산용 점퍼를 내려보니 주머니 속에 담배와 라이터가 들어 있었다. 십 년 전에 끊었던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담배 연기를 깊숙이 들이 마시니 몸의 긴장이 풀렸다.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이렇게 놀라다니 허탈한 생각도 들었다. 점차 의식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면서 산정에서 느꼈던 인생살이의 고민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 동안 일상에서 느꼈던 두려움의 실체는 모두가 내가 만들었으며 부정적인 시각이 내 안에서 커 가고 있었음을 알았다. 내 스스로 어려운 상황을 만들고 거기에 수용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은 나에 의해서, 내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마음먹는 일이다’라고 했던 한용운 님의 말이 생각났다. 이제는 사소한 일에 집착하기 보다는 매사에 감사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했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기 보다는 멀리 보고 크게 생각하며 사는 지혜를 얻고자 간구했다. 어둠 속에서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산정에서 마음을 흔들었던 일단의 고민거리가 상쾌한 마음으로 바뀌었다.

유성이 어두운 하늘을 파르르 스치고 지나간다. 어디로 가는 인생길인지 알지 못하고 헤매던 어리석은 마음에 불을 댕기듯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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