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책임과 실천: 거안사위(居安思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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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책임과 실천: 거안사위(居安思危)
  • 성동신문
  • 승인 2017.07.17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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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항석 <캠브리지대 연구학자, 전 대통령자문위원>
정항석 <캠브리지대 연구학자, 전 대통령자문위원>

‘평안할 때도 위태로울 위험과 위기가 닥칠 것을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로 『춘추삼전(春秋三傳)』에 나오는 말이다.

어느 날이었다. 위징(魏徵 580-643)은 당 태종(李世民 599-649)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세민은 심중(心中)하게 위징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때는 약 360년간 중원의 이합집산이 이루어지던 춘추시대(770-403 B.C.). 진(晉)나라와 초(楚)나라가 중원의 패권을 놓고 맞섰고 있었다.

당시 진나라 왕이었던 여공(勵公)은 향락에 눈이 멀어 백성들을 위한 위정(爲政)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쯤 되자 나라의 기강이 무너져 사회는 어지럽고 혼란스러웠으며 진나라를 따르던 제후들의 이반이 속출하였다.

자연, 초나라에 비해 국력이 기울어졌다. 말하자면 국가위기에 대한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에 위강(魏綱) 등이 공모하여 여공을 축출하고 도공(悼公)을 왕으로 추대했다. 이러는 사이에 초(楚)나라는 정(鄭)나라와 연합하여 진(晉)나라의 동맹국인 송(宋)나라의 4개 읍성을 점령했다. 하지만 진나라는 도공과 위강의 지도력 하에 송(宋), 위(衛), 조(曹), 거(莒), 주(邾) 등의 나라와 동맹을 맺는 등 단합에 힘입어 마침내 초나라와 패권을 겨룰 수 있도록 바른 정치지도력에 집중하였다. 진나라는 승리하였고 정(鄭)나라까지 항복시켜 위세를 떨쳤다.

정나라는 항복의 표시로 진나라에 전차(戰車)를 비롯한 많은 병기와 악사(樂師), 미인들을 공녀로 보냈다. 이에 도공은 예물의 상당수를 위강에게 주며 치하하고자 하였다. 그러자 위강은 이렇게 말했다.

“윗사람이 이를 먼저 받을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과 장수들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할 일은 이것입니다. 지금처럼 평안하다고 느낄 때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것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른바 거안사위(居安思危)이다.

이 일화를 들려준 위징(魏徵 580-643)이 당 태종(李世民 599-649)에게 신신당부하였다. 연개소문에게 크게 패하고도 훗날 중국역사의 한 장을 장식한 인물로 기록된 그는 ‘거안사위’를 늘 마음에 새겼다고 『정관정요(貞觀政要)』는 전한다. 위 일화에 약간의 덧붙이고 덜어진 것은 있을 것이나 이야기의 핵은 그렇다.

위 일화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면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 국가와 국민을 위한 바른 판단을 하는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외적 단합, 특히 국민을 결집시킬 정치 지도력이 요구된다. 끝으로 생산된 결과에 대한 분배 혹은 배분 과정에서 국민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무엇보다 내적 단합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도공과 위강 그리고 태종과 위징은 이를 책임지고 실천하였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가? 현재 우리는 우리가 안고 있는 정치사회적 문제를 파악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마련하고 있는가? 그리고 누구와 할 것이며 또한 지도층은 이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말하자면 ‘내치와 외교로 이루어지는 국가, 그리고 그 역할과 기능의 원활함을 위하여 내적 단합을 위한 정치의 책임과 실천은 긍정적으로 나아가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그렇다면 따져보자.

우선, 우리는 평화롭고 평온한가? 아니면 위태로운 것인가? 어느 국가이든 국가사회적 문제와 위기는 있기 마련이다. 다만 이를 위한 ‘국가적 지도력이 국민의 믿음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사적으로 보면 국제사회에서 작은 나라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이를 맡아 선출된 인사들은 위강과 위징이 그랬던 것처럼 목숨을 걸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외교는 국가안위가 걸린 일이고 그러한 각오 없이는 이루기 어려운 것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의 염원과 세금을 모아 많은 의전과 혜택을 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외교의 결과에 대한 책임과 상여(賞與) 역시 엄격히 분리되어야 한다. 미봉책이고 임시방편적이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국가보존과 이익도모를 원칙으로 하면서 차기 정부에서도 탄력적으로 계승시킬 방법에 따라야 한다.

그 동안 한국의 ‘흔들리는 외교’로 인해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한국외교를 불신하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다른 국민은 몰라도 우리 국민이 납득할 외교원칙을 분명히 설정해야 한다. 적어도 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둘째, 갈린 내적 의견을 결집시킬 정치사회적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어느 사회이건 의견은 갈리고 분분하다. 당연한 것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것이 자기중심적이건 아니면 사회 우선적인 시각에서 나온 것이든 그럴 수 있다. 다만, 의견이 모아지면 모아진 의견에 따라 모두가, 특히 지도층에서는 의견과 정책의 생산적 결과를 위해 마음을 결집시켜야 한다.

현재 정부는 이전 정부의 무능과 정책실패 등 국민들의 바램에 따라 급히 이루어진 비상(非常)정부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국민의 의견이 모아졌고 시간적으로도 채 6개월이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신생 정부가 국가의 문제를 위해 제대로 파악하고 대비하는데 걸릴 시간을 주어야 한다. 있을 수 있는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국민 그리고 정치의 여야에서 기운을 넣어주어야 한다. 여느 정부도 그래야 하지만 이제 막 태동된 정부가 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을 해야 하는 것은 민심이 그것을 바라고 있고, 그렇게 하기로 국가제도를 설정하였으며 그것이 내분을 막고 단합된 국가의 국민성을 노출시켜야 보다 생산적 방향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한 이들은 더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것이 참다운 모습이어서가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 일하겠다고 공약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이 할 일은 그것이다. 동시에 당연하지만 신생정부 역시 내적 갈등을 위한 봉합을 시급히 해야 한다.

셋째, 분배의 문제이다. 논공행상은 그렇다치고 국가에 공로를 하는 것과 위해를 가한 것에 대한 신상필벌은 분명해야 한다. 지난 날 이에 대한 것을 가르지 않았던 탓에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이 정도는 되겠지’ 하는 안일하고 느슨하며 예외주의적 마음과 태도가 우리 사회를 좀 슬게 했던 까닭이다. 바로 이런 것들 때문에 정해진 정부의 선택이 앞당겨졌고 우리의 삶이 번잡해졌던 것이다.

특정의 것(?)은 그들의 것이 되었으나 공공의 책임과 실천은 누구도 외면하게 하는 이상한 사회적 현상으로 국민성을 의심받게 되었다. 이를테면 매국행위의 단절도 없었고 그 행위의 후광으로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혜택을 받는 것도 그러하며 비민주적 행위에 대한 엇갈린 평가로 인해 ‘흩어진 민심추리기’없이 오랜 세월을 허비하였다.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기실, 앞서 언급된 것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내용이다. 몹시 원론적이다. 새로울 것도 새로워서도 아니 되는 것들이다. 지난 날 이런 것들에 대한 정치적 책임과 실천의 부재로 인해 반복되고 있다. 그만큼 풀어야 하며 해결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다. 우리사회는 ‘평온한듯 보이나 화합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나라와 초나라 전쟁이후 위강은 도공이 내린 하사품을 받았다. 그러나 수준과 차원이 다르다. 그 분배와 배분에서 우선적으로 위강은 국가위기에 대처한 공로를 국민과 장수와 장졸에게 그 다음에 지도층이 받는 것을 권하고 있다. 그리고 지도층은 이를 수용하였고 당시의 백성들은 이러한 도공과 위강의 지도력을 따랐다. 이런 까닭에 위강과 도공이 존경받는 것이다. 거안사위. 이 고사성어가 우리사회에게 적용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책임 있고 실천하는 정치 지도자를 있어서 그들을 존경하였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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