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만나러 갑니다, 모란봉클럽”
상태바
“이제 만나러 갑니다, 모란봉클럽”
  • 광진투데이
  • 승인 2017.07.25 18: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종군 교수 / 건국대 대학원 통일인문학교
김종군 교수/건국대 대학원 통일인문학교

탈북 여성 전혜성(방송명 임지현)의 재입북 사건으로 연일 방송 보도와 인터넷이 뜨겁다. 가장 큰 쟁점은 한국의 방송 매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던 탈북민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의 탈북민 관리 시스템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탈북과 재입북이라는 반복적 노정이 분단체제에 잘 길들여진 한국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공식적인 허가를 받지 않고 북한을 간다는 일은 우리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탈북민들은 탈북-재입북-재탈북을 거듭한 사례들이 있다는 연관 보도도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여성이 북한의 대외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밝힌 한국 생활의 문제점에는 방송 활동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직접 경험하지도 않은 북한의 부정적인 상황을 작가가 써준 대본대로 이야기하도록 강요받았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출연료까지 언급하면서 자신이 철저하게 이용당했다는 논리로 재입북 소회를 밝히고 있다. 이 여성이 출연했던 프로그램을 방영한 방송사에서는 그런 강요는 없었다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북으로 간 당사자는 방송에서 자신이 작가가 작성해 준 대본에 따라 북한체제를 비난하고 부정적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하고, 해당 방송사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하니 한 번 꼼꼼히 따져볼 일이다.  

몇 년 전부터 종편 채널에서 탈북 여성, 그 가운데서도 입담 좋은 미녀들을 섭외하여 북한의 실상과 그들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가 처음 시도였는데, 어느 정도 시청률이 오르자 경쟁 방송사에서는 <남남북녀>, <모란봉클럽> 등의 예능프로그램을 제작하여 방송에 내보내고 있다. 탈북민 3만 명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한국의 주민들은 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들 방송을 통해 북한의 식량난과 비인도적인 인권 실태에 대해 알아가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필자도 초창기 <이제 만나러 갑니다> 프로그램에서 탈북 여성들이 전하는 탈북 체험과 북한에서의 처참한 실상을 접하면서 많이 놀라고, 그들의 울먹임에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그런데 회차를 거듭하면서 점점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지 않게 되었다. 자신들의 고향이야기, 북에 두고 온 가족이야기, 지난한 탈북 노정에서의 공포감 등은 필자에게 커다란 공명으로 다가왔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북한체제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평양에 거주하는 부유층의 사치와 비리, 군대에서 벌어지는 비인도적인 일상 등을 자신이 보고 들은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놓았다. 북한의 시스템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필자에게는 지극히 연출된 증언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폐쇄적인 북한 사회에서 함경도나 양강도에 거주했던 탈북민이 평양 부유층들의 일상, 그것도 비리를 알 수는 없다. 우리처럼 다양한 방송채널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SNS를 통해 다른 지역의 실태를 전해들을 수도 없는 북한 사회에서 같은 마을이나 직장이 아닌 곳의 사람들의 이야기는 접하기 어렵다. 

탈북 미녀들이 나와서 북한에서의 비참한 삶, 탈북 과정에서의 공포, 가족과의 처절한 이산 경험을 눈물로 이야기할 때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시청률은 급상승하였다. 
인기에 부응하기 위해 더 많은 미녀들이 섭외되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넘어선 이야기들을 천연덕스럽게 쏟아냈다. 그리고 이젠 그 프로그램을 보고 눈물을 흘릴 일은 없어졌다. 그 가운데 다른 방송사에서 <남남북녀>라는 예능프로그램을 제작하였고, <모란봉클럽>도 <이제 만나러 갑니다>와 유사한 컨셉으로 제작되었다. 이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탈북민들은 마치 자신이 거주한 지역의 대표라도 된 양 다양한 북한의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지만 그들의 경험은 아닐 수 있다고 판단된다.

남북이 경쟁하는 분단체제에서 탈북민은 북한체제의 패배를 대변하는 존재로 남한 사회에서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시도는 국가 정보기관에서나 시도해봄직한 일이다. 탈북민들은 국내에 적응하면서 겪게 되는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편으로 다양한 증언 프로그램에 초청되어 강연료 수입을 얻는다. 

대형 교회에서 기획한 간증 프로그램, 안보교육 차원의 북한 실상 폭로 프로그램, 그리고 방송 매체에서의 탈북 체험 증언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탈북민들이 간직한 탈북 과정에서의 상처와 공포를 폭로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일은 그들의 탈북 트라우마를 풀어 놓는 계기가 되어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들 프로그램들은 점점 더 강도가 센 이야기를 원하고, 그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는 작가나 기획자들이 자료를 제시하는 형태를 보일 수밖에 없다. 

탈북민들은 국내에 적응하면서 소수자로서 한국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눈치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아직 순진한 일면을 가지고 있다. 방송이라는 매체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적절하게 허구와 조작으로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사실에 아직 길들여지지도 않은 상태이다. 그러니 전혜성씨와 같이 북으로 돌아간 이들은 남한 방송들이 자신을 철저하게 이용했다고 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자칫 이러한 남한 방송사들의 행태가 탈북민들의 국내 적응을 적극적으로 돕는 남한 정부나 사회 단체들의 진심까지도 허상으로 만들어버릴까 염려스럽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