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광동진(和光同塵)의 삶을 산 이봉창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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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광동진(和光同塵)의 삶을 산 이봉창 의사
  • 서울로컬뉴스
  • 승인 2017.09.3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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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열/서울지방보훈청 보훈과
김경열/서울지방보훈청 보훈과

『노자』에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이란 말이 있다. 이는 ‘자신의 지혜를 감추고 세속의 티끌과 같이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해 자신을 낮추는 등의 방식으로 그 진면목을 숨겨, 스스로가 의도한 바를 이룬다는 것인데, 자기희생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래에서 소개할 위인은 이렇듯 어려운 화광동진을 그 삶 속에서 충실하게 구연해 냈다. 오는 10월 10일이면 서거 85주기를 맞이하는 이봉창 의사가 바로 그이다.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이봉창 의사는 1931년 결성된 비밀결사 한인애국단의 단원이다. 이 조직은 일제의 주요 인물을 처단하여 일본의 제국주의와 식민통치를 와해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항일애국단체로, 1920년대 이후 꺼져가던 독립운동의 불씨를 되살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한인애국단원으로써 상해 의거의 안중근 의사보다 3개월 앞서, 의열투쟁을 전개한 인물이 바로 이봉창 의사이다.

이봉창 의사는 일제의 탄압과 항일운동전선의 내홍이 심해지던 1931년 초, 독립운동에 기여하고자 중국 상해의 임시정부를 찾아갔다. 하지만 임시정부 직원들은 이봉창 의사를 경계하며 즉시 쫓아내고자 했다. 일본인의 옷과 신발을 걸치고, ‘키노시타 쇼죠[木下昌藏]’라는 일본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일제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폄하해 부르던 가정부(假政府)를 운운하던 이봉창 의사에 대한 경계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이렇듯 일본에 영혼을 팔아버린 듯한 건달의 행색 속에 감춰진 이봉창 의사의 진면목을 파악한 것은 백범 김구 선생이었다.

“당신들 독립운동을 한다면서 일왕은 왜 못 죽입니까?”, “지난 31년 동안 쾌락이란 것은 모두 맛보았으니,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위해서 독립사업에 목숨을 바칠 목적으로 상해에 왔습니다.” 이처럼 이봉창 의사가 은연중에 밝힌 속내에는 ‘키노시타 쇼죠[木下昌藏]’라는 오명(汚名)으로 감춰왔던 웅대한 포부와 투철한 애국심이 담겨져 있었다. 이에 김구 선생은 이봉창 의사로 하여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성업(聖業)을 행하게 하리라 다짐했다. 이 성스러운 일이란 1년여의 준비 끝에 행해진 1932년 1월 8일의 거사를 가리킨다.

이날의 거사는 일본의 심장부 동경에서, 그들의 상징인 일왕 히로히토(裕仁)를 폭살하려는 것이었다. 비록 일왕은 무사했지만, 이날의 의거는 일본 열도를 전율케 하기는 충분했다. 일본의 중심지에서 그들의 하늘인 천황을 폭살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 거사에는 제국주의적 침략의 부당함에 대한 엄중한 경고와 함께, 23년 동안 이어진 식민지배에도 사라지지 않는 우리민족의 독립의지가 오롯이 담겨있었다. 더군다나 조국독립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이봉창 의사와 같은 젊은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일제의 전범들을 언제나 두렵게 하는 일이었다.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조국독립의 길을 찾아 중국에서 다시 일본으로 향했던 행보만큼이나, ‘키노시타 쇼죠[木下昌藏]’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를 넘나들었던 이봉창 의사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하지만 하오리(일본식 남자 옷)를 걸치고 게다(일본식 나막신)를 신으며 했던 일본인의 행색 속에 숨겨둔 뜻은 언제나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위국헌신의 길을 구하고자 서성였던 상해임시정부 앞에서,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던 안공근 선생의 집에서도, 일왕의 행차를 기다리던 사쿠라다문[櫻田門] 앞에서도 이봉창 의사의 마음이 향한 곳은 오직 조국광복의 대의뿐이었다.

이렇듯 조국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이봉창 의사의 행보는 1932년 10월 10일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멈춰졌다. 하지만 이봉창 의사의 의거는 거듭된 시련으로 좌절했던 민족지도자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고, 실의에 빠진 우리민족에게 독립에 대한 희망을 새롭게 심어 주었다. 이는 극심한 침체를 겪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성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스스로의 모든 것을 조국광복을 위해 아낌없이 희생했던 투철한 애국심은 오늘날까지 전해서 많은 국민의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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