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휴의 귀촌일기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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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휴의 귀촌일기 14
  • 노원신문 백광현 기자
  • 승인 2016.11.24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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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소리를 듣다

해마다 하는 늦가을 여행을 올해도 어김없이 계획하고 길을 나섰다.

올해는 섬을 기행하고 싶어 울릉도로 향했다. 주로 산천을 배경 삼아 걷기가 위주였는데 이번 가을은 섬의 빛깔에 취해 만추의 정취를 느끼고 싶었다. 출발은 서울에서 묵호항으로 가는 코스를 택했다. 이곳에서 가까운 거리의 포항을 두고 굳이 묵호항을 택한 것은 서울에 들려 가족과 지인들을 만날 예정이었다. 늘 그렇듯이 그들의 팍팍한 일상을 듣고 맞장구도 쳐주고 또 평화로운 내 삶을 내심 자랑하고픈 마음도 있었다.

서울의 심장인 광화문 광장으로 나갔다. 오래 전부터 그 주변은 내 놀이터(?)이다. 경복궁, 경희궁을 비롯하여 다큐나 예술영화가 항시 상영되는 영화관도 있고, 대형서점도 있고, 입맛에 맞는 음식점과 찻집도 더러 있다.

엷은 햇살이 부서지는 한낮의 광장은 한적했다. 세월호의 천막은 여전히 바람에 펄럭이고 무심한 사람들은 세종대왕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분분했다. 사물놀이패도 공연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들린 광화문 광장은 분기가 탱천했다. 어떻게 이뤄낸 민주주의였던가. 모두의 가슴에서 촛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새벽 4시부터 서둘러 7시가 조금 지난 시간 묵호항에 닿았다. 승선 준비를 하는데 안내방송이 사람들을 맥 빠지게 했다. 기상 악화로 출항이 어렵다고 한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없는데 모두가 의아했다. 먼 바다의 기상은 예측하기가 어렵다고 하니 어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세상사를 재단할 수 있으랴. 언뜻 한 문장이 떠올랐다.‘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드러남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의 깊이’라는 프랑스 철학자의 글이 절묘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도로 서울로 돌아가기에는 도타운 햇발과 불타는 단풍이 뒷덜미를 잡아끌었다. 급히 내설악 백담사로 여로를 변경하여 버스는 달리기 시작했다. 만해(萬海) 한용운(1879-1944)과 일해(日海) 전두환(1931- )이 머물렀던 아이러니한 역사의 공간으로 어른어른 대는 촛불을 안고 들어섰다. 계곡 곳곳에는 작은 돌멩이로 쌓아올린 민초들의 돌탑이 즐비했다. 돌멩이 하나하나를 쌓아올릴 때마다 그들의 염원은 간절했으리라. 그 소박한 기원들이 모여 세상을 어우리는 빛이 되고 때로는 격한 촛불로도 변하지 않았을까.

바람은 한량없이 삽상하고 햇살 또한 넉넉했다. 인제군 용대리에서 황태구이를 먹으면서 내친김에 거문도로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나 또한 서슴없이 쌍수를 들고 반겼다. 어차피 가을빛에 젖고자 나선 섬 여행인데 어디인들 어쩌랴. 더구나 거문도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끝자락으로 기암괴석으로 이름이 난 백도도 품고 있으니 더욱 마음이 끌릴 수밖에.

다시 주말 새벽 버스에 몸을 싣고 전남 고흥의 나로도항으로 향했다. 이젠 설렘보다는 초조했다. 또 배가 뜨지 못 한다면 어쩔까, 먼 바다의 기상상황을 알 수가 없으니. 다행히 뱃길은 순조롭게 열렸지만 돌아오는 뱃길을 장담할 수 없다고 하니, 하늘의 뜻에 따를 뿐이라고 모두가 유쾌히 웃었다.

거문도는 여수에서 114km 떨어진 섬이다. 서도와 동도, 고도의 3개의 섬이 팔을 벌리고 하나의 섬으로 통칭된다. 1885-1887년 2년 남짓 영국군이 무단 점령했던 곳으로 영국군 수병 묘지도 있다. 때문에 제국주의의 흔적으로 당구, 테니스가 최초로 전래되기도 했고, 중국 한나라의 화폐인 오수전이 대량 발견된 지역이다. 이를 근거로 거문도는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국제해상 세력이 탐냈던 요충지였음을 짐작케 한다. 지금은 백도관광과 은갈치로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식당마다 갈치로 풍성하게 상이 차려져 나왔다. 회, 구이, 조림, 속젓, 찌개, 이름도 생소한‘한가쿠 갈치국’까지. 재료는 하나인데 맛은 각각이었다. 모두가 ‘한가쿠’를 궁금해 했는데 엉겅퀴 된장국에다 갈치를 넣고 끓인 국이었다. 엉겅퀴의 쓴맛과 된장의 구수한 맛, 갈치의 달고 비릿한 맛이 어우러져 특유의 곰삭은 맛으로 예로부터 뱃사람들의 속풀이국으로 즐겨먹었다고 한다.

싱싱하고 싼 갈치는 아침 일찍 위판장으로 나가면 살 수 있다고 했다. 밤늦게까지 지역 특산주인‘쑥막걸리’에 갈치와 삼치 회를 먹으며 내일 아침을 약속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국민안전처에서 모두에게 문자가 왔다. 전남 신안군 흑산면 남남서쪽 106km 해역규모 3.5지진 발생/여진 등 안전에 주의 바랍니다.’여긴 고흥군이라 모두가 무심히 문자를 읽었다.

다음 날 아침, 위판장으로 들어오는 배들은 썰렁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갈치가 차고도 넘쳤는데 웬 일인가. 이유인 즉 지진의 여파로 물고기들이 모두 먼 곳으로 가버렸다고 한다. 몰려들었던 사람들 모두가 아연실색했다.

듬성듬성 얼굴에 검버섯 꽃이 핀 한 노인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쓴소리를 했다.“진도3 지진에도 바다 속 미물들은 다 도망가는데 진도 10 지진이 나도 청와대는 썩은 기둥만 잡고 있네.”찬물 한바가지를 뒤집어씌운 일갈(一喝)이었다.

함께 온 사람 모두가 ‘서울의 소리’라며 허허롭게 웃었다. 웃음소리 따라 바다는 윤슬(달빛이나 햇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로 화답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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