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시대, 의존적 장례 문화를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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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시대, 의존적 장례 문화를 돌아보며
  • 광진투데이
  • 승인 2016.11.2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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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군 교수/건국대 대학원 통일인문학과
김종군 교수/건국대 대학원 통일인문학과

근래 언론에 상조회사의 부도 관련 기사가 종종 보인다. 노부모를 모시고 있는 이들이 부모의 장례를 대비해서 매달 일정 금액을 납입했는데, 가입한 회사가 부도가 나자 막막해 한다는 기사이다. 상조회사는 한국 사회에 화장 문화가 확산된 2000년 이후로 급성장하여 2012년에는 307개로 정점을 찍고, 올 9월 현재 197개로 축소되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110여 업체는 자본잠식 상태로 위태롭다는 분석도 함께 실렸다.

산업화 시대를 맞아 생애의례의 방식들은 급변하고 있다. 혼례는 전문 예식업체가 전담하고 있으며, 장례는 장례식장에서 상조회사가 전담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관혼상제의 생애의례 가운데 가장 심오하고 번다한 장례의 절차를 전담해주는 상조회사 시스템은 현대인의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하였다. 부모의 장례를 자신이 가입한 상조회사에서 전담해 줄 것으로 믿었는데, 부도가 났다고 하니 막막할 수밖에 없는 사정은 이해가 간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우리의 사회 구조가 상조회사가 없으면 부모의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할까 염려해야 하는 세태로 변한 듯하여 씁쓸하기도 하다.

상조회사가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대에는 각자 나름대로의 대비책이 있었다. 도회지의 경우는 친인척과 더불어 자신이 믿는 종교단체의 신도 모임에서 장례를 도와주었다. 시골의 경우는 마을 단위의 위친계(爲親契)가 장례를 대비한 대표적인 상호부조 조직이었다. 위친계원들이 장례 절차의 외부적인 일들을 전담하고, 친인척은 유복친(有服親)을 중심으로 장례 절차에 주체로 참여하면서 상제로서 의무를 다했다. 지금도 이런 상호부조의 조직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직의 역할은 상조회사에게 넘겨주고 조문이나 부조로써 의무를 대신하고 있다. 일정 금액을 납입하면 친인척과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수고로움을 대신해주는 상조회사의 역할은 실로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편리함을 쫓고자 한다. 삼일장 기간 동안 의무적으로 부여된 수고를 대신해주는 상조회사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상주의 입장에서도 친인척과 지역 공동체에 폐를 끼치는 미안함을 덜 수 있으므로 다소의 경제적 부담이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편리함을 위주로 생각하다보니 친인척이나 지역 공동체에게 부여된 의무도 희석되어 버린 점이다. 초상이 나면 상주를 위로하기 위해 밤을 함께 지새우고, 손을 걷어붙이고 도와주던 미풍양속은 사라져 가고 있다. 자신이 가입한 상조회사가 부도가 났을 때 우리가 가장 낭패감을 갖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이 아닐지? 큰 일을 믿고 맡기려는 계산이 어긋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노부모를 모시고 사는 우리 세대들이 다소의 경제적인 부담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부모의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상조 시스템의 효용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외형은 시류에 따라 변해간다고 해도 그 가운데 깃든 의미는 어느 정도 유지하고 살아간다면, 돌발적으로 그 외형이 깨졌을 때 당황하지 않고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대비책이 친인척과 지역 공동체와의 연대감이다.

이와 더불어 돌아봐야 할 것이 고령화 시대에 부모의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당사자가 죽음의 질에 대해 결정권을 가지는 문제이다. 노령의 부모가 병들면 병원을 찾는 것이 상례이고, 진료 결과 치료가 불가능하거나 운신이 어려울 경우는 요양원으로 옮겨가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양상이다.

그리고 시신은 장례식장으로 옮겨지고, 자녀가 미리 들어둔 상조회사 사람들의 손에 맡겨져 한 줌의 재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식의 품에 안기게 된다. 이러한 생의 마감 과정은 도회지에 사는 노인들에 국한된 문제만이 아니다. 시골의 노인들은 심각한 질병이 아니라도 거동이 불편해지는 순간 자식들 손에 이끌려 요양원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한 달에 한두 번 찾아오는 자손을 기다리고, 쓸쓸한 명절을 보내다가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시신은 인근 장례식장으로 옮겨져 상조회사에서 준비한 삼일장을 거쳐 비로소 자신이 평생을 살았던 마을을 찾아간다. 더러 상여로 운구를 하는 경우 마을회관이나 본인의 집 대문 밖에서 노제를 지내고 묘지로 운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시골의 노인들은 엠블란스 소리를 가장 두려워한다고도 한다. 자식들이 거동이 불편한 자신을 요양원으로 보낼까봐 그렇다는 말이다.

유쾌한 주제도 아닌 장례 문화를 새삼 언급하는 이유는 최근 20여년 사이에 한국 사회의 죽음 처리 문제가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현재 노령층에만 국한된 사안이 아니라 고령화 사회에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부모의 임종을 집에서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병원에서 위중한 상태가 되면 집으로 모셔서 임종을 하겠냐고 반드시 물었다. 그리고 도회지가 아니라면 장례도 집에서 치르는 경우가 많았다. 20년의 시간동안 자택에서 안정되게 임종을 할 선택권을 노령의 부모들은 박탈당했다. 그리고 집에서 장례를 치르고, 자신의 시신을 매장이나 화장으로 결정한 권한도 놓치고 말았다.

시대는 변했고, 우리의 주거 형태나 공동체의 의미도 20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럼에도 부모의 노후를 평생 살아온 자택에서 자녀들과 함께 하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의료진에 맡겨져 한두 달 생명을 연장하는 일이 말년의 삶의 질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면 그 선택권도 당사자에게 주어야 할 것이다. 장례의 절차가 심오하고 번다하므로 전문적인 상조회사에게 맡기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 우리는 직계 자손을 제외한 친인척 공동체의 장례 참여 의무를 무화시켜 버렸다. 종교 공동체나 마을 위친계의 상호부조의 미풍양속도 놓아버렸다. 잘 살아온 삶을 마무리하는 잘 죽는 법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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