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 떠나고 범의 해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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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떠나고 범의 해가 왔다
  • 영등포투데이
  • 승인 2022.01.0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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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노천의 우리역사 산책

움모뚜벅뚜벅 소가 걸어서 가고난 뒤어흥사부작사부작 거친 숲을 헤치고 범이 걸어 나온다.

우리네 할아버지 적에는 웬만한 산에는 범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대한암흑기 때만 해도 조선 땅에는 범이 많아서 포수들이 범 사냥을 많이 했다고 한다. 어떤 해는 한해 80여 마리를 포획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1년에 평균 40여 마리를 잡았다고 하면 35년 동안 일본인들은 한반도에서 잡은 범의 수가 1,500여 마리가 넘는 셈이다. 그 당시 늑대나 여우는 꽤 많았고 심지어 곰까지도 살았다고 한다. 전국의 웬만한 산에는 범이 살 정도로 먹이사슬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나중엔 만주나 시베리아로 범들이 쫓겨 갔다는 이야기다. 당시 웬만한 산에는 범이 출몰하기 때문에 높은 고개를 넘어갈 때는 행인들이 여럿 모여서 막대기로 나무를 치면서 환호성을 울리며 넘어 갔다고 한다. 그 당시 범에게 물려죽은 호총이 즐비했던 시기였다. 서울엔 인왕산에 마지막까지 범이 출몰했었고 청평호반의 호명산은 가장 늦게까지 범이 울던 산으로 알려져 있다.

범의 무서움은 그 어떤 것보다 그 울음소리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 범의 울음소리에는 포유동물들을 패닉상태로 몰아붙이는 저주파가 나온다고 한다. 범은 울음소리만으로 상대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범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내는 초저주파는 사람의 귀로는 들을 수 없지만 사람이나 동물의 근육을 진동시켜 얼어붙게 만든다는 것이다. 미국의 모 연구팀은 여러 마리의 범을 대상으로 으르렁거리는 소리 등 범이 내는 모든 소리를 녹음한 후 분석한 결과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주파수 대역인 20㎐∼20,000의 소리와 함께 18 이하의 초저주파도 있음을 알게 됐다.

소리는 주파수가 낮을수록 더 멀리 전파된다. 그래서 범의 울음소리는 멀리 떨어진 숲에서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범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몸이 움싹 얼어붙는 듯한 느낌을 갖는 이유가 온몸을 울릴 정도로 커다란 소리와 바로 이런 초저주파 때문인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분노한 범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오금이 저린다. 동네 개들의 왕왕거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데, 밤길을 가다가 어흥 울음소리를 내면 초저주파라 근육이 마비되어 그대로 주저앉는다. 옛날 산에서 범을 만나면 정신을 잃고 까무러치거나 오줌을 질질 싼다는 말이 있는데 거짓말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 선조들이 범을 영물이라고 여겼던 이유가 산속에서 범을 직접 보게 되는 날이면 살아 돌아와도 3일을 앓았다고 할 정도다. 그 눈빛에도 압도된다고 했다. 옛날 어느 포수가 범을 사냥해서 주막의 축담에 철퍼덕 던져놓았더니 이를 본 주막의 개가 놀라서 마루 밑에 쳐 박혀서 죽었다고 할 정도로 영물은 영물인가 보다.

그런 만큼 범은 혼자 포효하는 것이 아니라 산초초목을 울리며 오는 영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게 무서운 범보다 더 무서운 게 뭔지 아는가. 세금이라고 했다. 범은 피할 수 있어도 세금을 어디에 도망가도 따라다니는 괴물이라고 했다. 예로부터 나라가 문을 닫는 것도 높은 세금과 비대한 논공행상이라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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