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그 함의를 찾아가는 길 (상)—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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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그 함의를 찾아가는 길 (상)—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고—
  • 김정민 기자
  • 승인 2023.08.22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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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술
(전)상문고등학교 교사, (전)코이카 해외봉사단원(키르기스스탄), 서울자치신문 칼럼니스트
(전)상문고등학교 교사, (전)코이카 해외봉사단원(키르기스스탄), 서울자치신문 칼럼니스트

우리는 누구나 이미 읽었던 명저 중에 꼭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 한둘은 있을 것 같다. 19세기 러시아 문호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Фёдор Достое́вский; Fyodor Dostoevsky)(1821~1881)의 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Братья Карамазовы)』(1880)도 그러한 책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왜냐면 이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 구원(救援)이나 자유의지와 같은 삶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들여다보고 그 함의를 낱낱이 밝히기 때문이다.

작가 서문에 따르면 이 소설은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의 전기』이다. 이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전혀 위대하지 않는 알료샤(알렉세이의 애칭)가 어떻게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독자들의 예상 의문에 답을 한다. 즉, 알료샤는 뛰어나지는 않지만 좀 이상한 사람, 심지어는 괴짜라고 할 만한 인물이라고 말하는데… 하지만 이 소설을 읽어가다 보면 카라마조프 가의 셋째 아들 알료샤는 전혀 이상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조시마 장로 밑에서 수도사가 되고자 하는, 신앙심이 깊은, 스무 살의 평범한 신학생이다. 오히려 첫째 아들 드미트리와 둘째 아들 이반이 훨씬 더 이상하다. 또한, 그들의 아버지 표도르 파블로비치도 더욱 문제가 있는 그런 인물이다.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지방 도시 스코토프리고니예프스크 시(市)에 사는 지주이다. 하지만 그는 아들들의 양육이나 교육에는 아랑곳없이 오로지 돈 버는 일이나 여자 밝히는 일에만 몰두하는, 그런 탐욕스런 호색한이다. 이를테면, 그는 첫째 부인이 남긴 유산 때문에 드리트리(첫째 부인 소생)와 다투고, 또한 20살 연하의 여인 그루셴카를 두고서도 드미트리와 쟁탈전을 벌인다. 더군다나, 그가 말도 못하는 백치 소녀 리자베타에게 아이를 갖게 했지만, 그는 그렇게 태어난 아이를 아들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하인 그리고리와 마르파가 이 아이를 업둥이로 받아들여 키우고, 그렇게 성장한 스메르쟈코프도 카르마조프 가의 하인으로 일하게 한다. 한마디로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윤리의식과 책임감은 영점이다.

드미트리가 이렇게 파렴치한 아버지와 부딪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군대에서 막 나온 스물 여덟 살의 드미트리는 다혈질 성격으로 즉흥적이며 좀 과격한 면이 있다. 그는 순수한 감성을 지녔지만 문제도 있다. 그는 약혼녀 카테리나가 있는데도 아버지가 이미 점 찍어 둔 여인 그루셴카에게 반하고 만다. 그루셴카는 이런저런 풍문도 돌지만 모든 남자들이 선망하는 미인이다. 드미트리는 그러한 그루셴카와 함께 여행을 가려고 약혼녀 카테리나의 3천 루블을 도용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자간 갈등의 중재자로 둘째 아들 이반(둘째 부인 소생)이 소환되고, 이들이 만날 장소는 셋째 아들 알료샤(둘째 부인 소생)가 수련하고 있는 수도원으로 정해진다. 왜냐면 그들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조시마 장로가 뭔가 갈등 해결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 만남의 자리에서 표도르 파블로비치가 어릿광대처럼 천박하고 상스러운 행동을 하지만 조시마 장로는 조금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는 물론 자기 주변에서도 어떤 진실도 분별하지 못하게 되며, 그리하여 자기 자신은 물론 타인들까지 존경하지 않게 됩니다. 아무도 존경하지 않게 되면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되고, 사랑이 없는 상태에서 마음껏 즐기고 기분을 풀다 보니 조잡한 음욕에 빠져들고, 결국 짐승이나 다름없는 죄악의 소굴로 빠져듭니다.” 이는 표도르 파블로비치에게 한 말이지만 그 함의는 드미트리와 이반을 포함한 모든 인물들에게도 해당된다.

하지만 이들의 만남은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에게 고함을 지르고, 종래는 드미트리가 표도르 파블로비치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뜻밖에 이때 조시마 장로는 드미트리의 발 아래 무릎을 꿇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한다. 드미트리와 알료샤는 물론 주위 사람들도 충격을 받는다. 조시마 장로는 장차 드미트리가 ‘너무나 큰 고통’을 겪을 것으로 꿰뚫어본 것이다.

알료샤가 조시마 장로를 부축하여 침실까지 데려가 앉혔을 때, 장로가 유언을 한다. “아들아, 앞으로 네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다. 내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으면 곧바로 수도원을 떠나거라. 아주 떠나는 거다. 속세에서 위대한 수행을 할 수 있도록 너를 축복하노라. 너는 아직도 많이 방황해야 된단다. 결혼도 해야지. 일이 아주 많을 거야. 하지만 나는 너를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너를 보내는 거야. 그리스도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 이것이 내가 너에게 주는 유언이니 고뇌 속에서 행복을 구해라. 일을 해라. 끊임없이 일을 해야 한다.” 그는 한 마디 덧붙인다. “어서 가라. 형님 곁에, 두 형님 모두의 곁에 머물러라.”

스물 네 살의 이반은 수도에서 거의 혼자 힘으로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지만 신문에 짧은 기사도 쓰고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천재적인 지적 재능을 발휘한다. 그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합리적인 분석을 하고자 하는, 냉정하고 이성적인 인물이다. 이반은 부당한 인류의 고통, 특히 어린이가 겪고 있는 부당한 고통에 대해 번민하며 “과연 사랑의 신(God)이 존재하는가?” 하는 종교적 의문에 시달린다. 그는 거의 무신론에 가까운 생각을 하거나 “신이란 악의적인 존재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떨쳐내지 못한다. 그는 어린 시절에 어렴풋이 아버지가 어떤 인물인지 들었지만 수도원에서 부자간의 다툼을 보고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게 되는데… 이성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그가 가장 혐오하는 인물이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이에 이반은 누구보다도 극심한 내적 갈등에 시달린다.

이 소설의 또 다른 흥미로운 인물은 스메르쟈코프인데… 그의 온전한 이름은 파벨 표도로비치 스메르쟈코프이다. 즉, 그의 성(姓) 스메르쟈코프는 어머니 리자베타 스메르쟈쉬야에게 받은 것이지만 그의 부칭(父稱)은 카라마조프 가의 다른 형제들처럼 표도로비치(‘표도르의 아들’이란 뜻)이다. 그도 표도르의 아들이지만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전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양부모 그리고리와 마르파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하인으로 일하게 한다. 이에 스메르쟈코프는 굽실거리며 비굴하게 굴지만 때로는 악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하는, 좀처럼 가늠하기 어려운, 아주 영특한 면모를 갖고 있다. 그는 간질을 앓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래도 이반의 반종교적인 철학 이야기를 즐겨 듣는다. 특히, 영혼이란 불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도덕은 존재할 수 없으며, 선과 악의 범주는 인간 경험과 무관하다는 이반의 생각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드미트리는 수도원 난동 후에 카테리나에게 알료샤를 보내 파혼을 공식 선언하게 한다. 다음날 알료샤는 카테리나를 찾아간다. 그는 뜻밖에도 카테리나가 이반과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곧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 것을 알아채게 된다. 즉, 둘째 형 이반이 큰형의 전 약혼녀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이에 알료샤는 그들에게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두 사람은 너무 자존심이 세고 냉정해서 귀담아 듣지 않는다. 파혼 선언 후에 드미트리는 카테리나에게 빚진 3천 루블을 갚으려고 애를 쓰지만 그 돈을 구하지 못한다.

그날 저녁 식당에서 알료샤에게 종교적 의구심을 피력하는 이반의 말은 음미할 만하다. “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인간과 같이 야만스럽고 사악한 동물의 머릿속에 떠오를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결과적으로 나는 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창조한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반의 말에 알료샤가 묻는다. “무엇 때문에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거지?” “내 생각으론, 악마가 존재하지 않아서 인간이 악마를 창조해냈다면, 인간은 악마를 자신의 형상과 모습에 따라 창조했을 거야.”

“그렇다면 신도 똑 같은 방식으로 창조했겠군.” [하편에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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