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유진 박
상태바
<특별인터뷰> 유진 박
  • 강서양천신문사 장윤영 기자
  • 승인 2018.02.05 09: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Born in 뉴욕, 강서에서 미래를 꿈꾸다

 

2018년 첫 해가 떠오를 때, 강서구 개화산 정상에는 유진박의 힘찬 연주가 울려 퍼졌다. 이 속에서 강서의 이웃들은 함께 새해 소망을 빌고 벅찬 감동으로 서로의 손을 마주잡았다. 뉴욕에서 태어나 전 세계,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화려한 연주 인생을 펼쳐 온 유진박. 지금은 강서에 정착해 제2의 인생을 위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지금 제 곁에 계신 김상철 대표님의 고향이 이곳 강서구여서 자연스럽게 함께 살게 되었어요. 강서구는 제가 태어나고 자란 뉴욕과 많은 것들이 비슷한 도시에요. 레이브, 테크노, 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거리 곳곳에 쏟아져 나와 매력이 넘치죠. 북적이는 상가 불빛, 바쁘게 오고가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대로변에서 몇 걸음 걸어 들어가다 보면 갑자기 싱그러운 자연 냄새가 코끝에 전해져 와요. 가끔 우장산 근린공원에서 한가롭게 산책하기도 하고 농구 코트에서 좋아하는 농구를 실컷 하다 내려올 때도 있어요. 또 사람들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조용한 주택가가 많은 것도 좋아요. 정감이 넘치죠. 그래서 그런지 상점주인 분들도 금세 이웃이 되었어요. 다들 편안하게 대해주시고 서로 안부인사, 이야기도 많이 나눠요.”

그가 강서구에 살게 된 것을 누구보다 기뻐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강서 주민들이다. 2018년 1월1일의 개화산 해맞이 행사에서 그의 연주를 직접 듣는 ‘영광을 누렸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온라인상에 올라오고 있다.

“이웃들과 같이 첫해를 맞이해 어느 때보다도 기운찬 일 년이 될 것 같아요. 새해 소망이 있다면 대표님에 관한 거죠. 제가 조울증(기분 조절 장애)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분들이 아실 겁니다. 많은 예술가가 경험하는 증상이라고 위로해 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의 경우는 언어 소통의 어려움까지 더해져서 대표님이 아주 많은 것들을 힘들게 감당하고 계세요. 항상 감사하고 있지만 2018년 새해에는 대표님께 이에 대해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기길 바래요.”

올해로 한국 데뷔 20년을 훌쩍 넘긴 그의 연주 인생에는 화려했던 연주 경력만큼이나 수많은 고통·고뇌의 시간들이 있었다.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인생의 새로운 출발선에 서기까지 그를 인도한 이는 그를 한국에 데뷔시켰던 매니저, 김상철 대표라고.

“먼 길을 돌고 돌아 대표님과 재회한 것 자체가 제 인생의 행운이죠. 덕분에 데뷔 초에 함께 했던 밴드 멤버들도 다시 모여 유진박 밴드를 결성했고요. ‘함께’라는 감동이 더해져 라이브 연주가 더 다이내믹해지고 풍부해짐을 느껴요.”

개인사를 풀어놓으며 수줍은 미소를 머금던 그의 눈동자는 음악 이야기로 전환되자 열정의 불꽃으로 금세 타올랐다.

일렉트릭 바이올린의 선구자,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등의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 만큼 화려한 테크닉을 보여줄 수 있는 곡을 선곡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길 법도 하다. 하지만 그는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설명하기 전에 ‘소통’이라는 말을 앞세웠다.

“학생시절 병원 위문 공연으로 자원 봉사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환자들은 정통 클래식을 연주한 저의 음악보다 락을 피아노로 연주한 친구에게 더 큰 호응을 보여줬죠. 처음으로 ‘예술’과 ‘소통’에 대해 생각했어요. 그것이 저를 크로스오버의 세계로 끌어들인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저는 그때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해요. 블루스 스케일에 기초한 즉흥연주를 가장 좋아하고 공연 때 Dramatic Punk 등과 같은 자작곡을 선곡하기도 하지만 The Beatles, Green Day, Nirvana의 팝, 펑크, 얼터너티브 락부터 Antonio Vivaldi, Sarasate 등의 클래식까지 모든 장르의 음악을 리스트에 올려요. 다양한 사람들과는 다양한 음악으로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힘차고 격렬한 연주로 듣는 이들의 귀는 물론 보는 이들의 눈까지 사로잡는 유진박은 최근 인생이 주는 성숙함까지 더해져 깊고 풍부한 울림으로 청중의 가슴을 두드린다는 평을 받고 있다.

“공연은 저 혼자만의 음악으로 채워지는 게 아니에요. 일단 무대 위에 서면 바이올린 속에서 선율을 뽑아내는 저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청중이 만나 하나의 예술을 만들게 되는 거죠. ‘공연은 무대와 관객석에서 펼쳐지는 순간 예술’이라는 표현이 어울리겠네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관객들과의 교감 능력도 더 높아지는 것 같아요(웃음). 공연장만의 특별한 바이브도 예전에 비해 더 깊게 다가와요. 지난 연말 공연 때 팬들과 만난 소극장에서는 마치 가장 친한 친구와 일대일로 대면해 속이야기를 털어놓는 듯 한 감정이었다면 저희 부모님 모교였던 서울대와 경기여고에서의 공연은 자랑스러움과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꺼내놓는 자리였어요.”

줄리어드 장학생, 세종문화회관·예술의 전당 단독 콘서트 전석 매진 등 화려했던 시간 속에서도 전 소속사와의 깊고 상처뿐인 터널 속에서도 다시 한 번 힘찬 도약을 약속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손에는 언제나 바이올린이 들려 있다.

“앞으로도 음악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싶어요. 일상의 언어로 안에 있는 생각을 잘 표현해내지 못하는 제가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음악이기도 하니까요. 크고 작은 행사, 해외 연주 등이 많이 계획돼 있는데 낯선 무대, 사람들과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행복해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