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한국에 폐(迷惑)를 끼친데 대해 사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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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한국에 폐(迷惑)를 끼친데 대해 사과하라
  • 김정민 기자
  • 승인 2022.03.01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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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
시조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강남문학회이사. 저서로 산문집 『피아노 치는 시인』 등 3권. 시조집 『얼레와 어금니』 등 3권. 양천문학상, 『현대시조』좋은 작품상 등 수상
시조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강남문학회이사. 저서로 산문집 『피아노 치는 시인』 등 3권. 시조집 『얼레와 어금니』 등 3권. 양천문학상, 『현대시조』좋은 작품상 등 수상

일본사람들이 친절하고 여자들이 나긋나긋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은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여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국가다. 레스토랑이나 커피숍에 가면 손님이 부르기 좋게 언제나 손님을 둘러보고 있어 마치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면 곧장 뛰어올 사람처럼 항시 준비된 자세로 서있다. 이렇게 일본사람들이 친절한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이 있는데 가장 믿을만한 것은 상업이 발달했던 옛날에 주 고객이 신분이 높은 사무라이들이어서 만약에 손님들에게 잘못 보이면 목숨까지 위태로웠기 때문이다. 예부터 일본의 신분계급은 사·농·공·상으로 나뉘어 무사가 제일 높고 장사를 하는 사람이 제일 천대를 받았다. 사무라이정신이 통치수단이었던 일본사회에서 친절하지 않고는 무사들이 무서워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친절이 습관처럼 굳어버렸다는 것이다.

‘스미마셍’은 일본말로 미안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늘 스미마셍을 입에 달고 다닌다. 일본에서는 기차나 버스에서 사람의 발을 밟으면 밟은 사람이 스미마셍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밟힌 사람이 스미마셍이라고 한다. 한국사람 같으면 발이 밟히면 화부터 내는 데 일본사람은 정반대로 발이 밟힌 사람이 미안하다고 하니 처음에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일본에 몇 번 가보았지만 어느 곳에 가도 여자들의 친절은 도가 지나칠 정도다. 오죽하면 일본에 갈 때 스미마셍(sorry), 아리카도(thank you), 도조(sorry) 이 세 단어만 알면 일본에서 안 통하는 게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친절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일본에서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문화가 일찍부터 정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에게 폐(메이와쿠-nuisance)를 끼치는 것을 질색으로 아는 사고방식이 하나의 문화로 정착한 것이다.

일본에서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은 남에게 메이와쿠(迷惑:민폐)끼치지 말라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기차나 음식점 등 공공장소에서 뛰어놀며 떠들어대는 일이 없다. 밤 12시를 넘어 샤워를 하거나 세탁기를 돌리는 것이 금기시되고 위층에서 아래층 사람이 방해가 되도록 하는 소란한 행동은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생활문화로 정착되어 왔다. 일본에 지진이 나서 재해민이 구호품을 타기 위해 수백 미터를 줄을 지어 질서정연하게 기다리는 모습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수년 전 IS에 인질로 잡혔다가 참수를 당한 아들의 아버지는 울고불고 야단을 치는 게 아니라 “폐를 끼쳐 죄송하다”, “정부 노고에 감사한다”는 말을 하는 모습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아는 적이 있다. 이와 같이 메이와쿠문화가 정착한 것은 일본인들의 질서문화가 하나의 생활문화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일본정신문화의 근간이 되는 일본 특유의 메이와쿠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쇼토쿠태자(聖德太子:574~622년)가 정권을 잡은 대화(大和, 야마토)정권 때다. 야마토 정권은 일본 최초의 통일정권으로 고구려·백제·신라 및 중국의 수나라 문물을 받아드려 나라의 기틀을 잡았다. 특히 백제로부터 불교를 전파 받아 일본의 유명한 아스카문화를 발전시킨 593년부터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으니 대략 1419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쇼토쿠 태자는 유교와 불교를 진흥시켜 유교적 덕목과 중국의 관료제를 일본의 이상으로 접목시킨 정치개혁자이다. 즉 고분시대를 이끌던 야마토정권의 호족중심 체제를 호족들이 날뛰면 나라가 잘 될 수 없다는 신념으로 와(和), 즉 화합을 제일의 가치로 삼고 603년 백제의 관위제를 본 딴 관위 12계를 만들고 604년 관리의 태도와 윤리 등을 명문화한 헌법 17조 제조 등 관료제의 기초를 세워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한 일본의 몇 안 되는 유명한 정치가 중의 한 사람이다. 바로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는 「메이와쿠 문화」가 일본을 통치하는 철학이자 정신적 지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이처럼 1419년 동안 계승 발전되어 정착된 역사를 갖고 있다. 특히 이런 정신문화의 근저에는 고대에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이 일본의 문화를 지배했음을 보여준다는 역사학자들의 고증을 가볍게 흘려 넘겨서는 안 된다. 아스카정권을 건설한 주역은 스이코(推古)여왕으로부터 통치권을 위임받은 쇼토쿠태자와 백제계 도래인으로 추정되는 소가씨(蘇我氏)일족이었다. 따라서 메이와쿠 문화에는 우리나라 조상들의 정신도 깃들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일본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며 문화선진국이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를 36년간 식민지배해 왔으며 청일전쟁과 만주사변 그리고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미명하에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할 때까지 숱한 조선인들을 전쟁터로 내몰아 죽게 만든 장본인이면서도 위안부들에게 사과를 거부하고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며 징용배상을 거부하고 있다. 군함도 탄광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이때 강제노역을 시킨 조선인들에게 그 역사를 기록하고 반성하겠다고 하였지만 지금껏 이를 실행하지 않으면서 또 조선인을 동원해서 건설한 사도광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겠다고 한다. 그들 선조들은 우리나라 고구려·백제·신라 등 삼국시대 도래인들의 문화를 전수받아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웠으며 세계인들에게 자랑하는 메이와쿠문화로까지 발전시켰다. 유홍준 교수가 쓴 『나의문화유산 답사기-일본 편-』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문화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그냥 흘러간 적이 없다. 문명은 은혜롭게 가져다준 것도 있고, 열심히 모방해서 따라잡은 것도 있고, 돈 주고 사온 것도 있고, 훔쳐다 쓴 것도 있고, 점령당해 퍼져간 것도 있다”라는 글귀다. 일본의 ‘메이와쿠문화’는 우리 선조들이 ‘은혜롭게 가져다 준 정신문화’로 우리 민족의 DNA에도 흐르고 있는 정서적 유산이다. 일본이 이런 역사적 진실의 토대위에서 우리나라에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메이와쿠를 끼친데 대해 사죄한다면 한일 두 나라간의 우호친선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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