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Talk] 뮤지컬 ‘곤 투모로우’ 속 '고종'의 무게를 짊어진 배우, 고영빈
상태바
[Culture Talk] 뮤지컬 ‘곤 투모로우’ 속 '고종'의 무게를 짊어진 배우, 고영빈
  • 김정민 기자
  • 승인 2023.09.13 14: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뮤지컬 곤투모로우 공연사진 ㅣ 제공=PAGE1
뮤지컬 곤투모로우 공연사진 ㅣ 제공=PAGE1

뮤지컬 ‘곤 투모로우’가 2023년 삼연으로 관객들에게 돌아왔다. 이 작품은 근대적 개혁운동인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의 삶을 모티브로 탄생한 작품으로 초연부터 그 인기를 끊임없이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 8일, 본지는 조선의 마지막 왕인 '고종' 역할의 고영빈 배우와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강남구 신사동에서 만난 그는 자신이 연기하는 고종의 캐릭터에 대해 깊은 이해와 애정을 갖고 있었다. 배우로서 30년의 경력을 자랑하는 그에게 ‘곤투모로우’는 특별하다.

‘곤투모로우’의 성공은 단순히 스토리나 음악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진심어린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의 노력과 헌신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고영빈 배우 역시 그 중 한 명으로, 그의 연기를 통해 우리는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의 삶과 감정을 깊게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 공연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뮤지컬 곤투모로우 공연사진 ㅣ 제공=PAGE1
뮤지컬 곤투모로우 공연사진 ㅣ 제공=PAGE1

Q. 아직 안 보신 분들을 위해 ‘곤 투모로우’, 그리고 고영빈 배우님이 맡으신 고종 배역에 대해 소개 부탁 드립니다.

조선 구한말을 배경으로 고종, 김옥균 그리고 한정훈이라는 인물이 갑신정변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에요. ‘한정훈’은 실제 인물은 아니고 약간의 가상을 섞어낸 인물이에요.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켜서 역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이야기를 더 풍부하고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극이라고 말씀드리면 될 것 같아요. 사실 상당히 방대한 이야기라 직접 와서 확인하시는 편이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웃음).

Q. ‘곤 투모로우’는 많은 팬들에게 사랑을 받는 극이다 보니, 삼연을 준비하는 자세와 감상도 남달랐을 것 같아요. 어떤 부분들을 집중적으로 준비했는지 알려주세요.

오랜만에 무대를 준비하느라 고민이 많았는데, 다행히 저에게 시간이 주어져서 보여주지 못했던 부분을 보여드리고 싶더라고요. 가장 중점적으로 준비했던 부분은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고 싶었어요. 고종의 심리 상태를 최대한 많이 반영해서 노래를 소화해 보고 싶어서 기존에 하던 발성도 많이 바꾼 부분이 있었죠.

극장마다 음향이 다르기 때문에 사운드가 커지면 배우의 가사전달력이 떨어질 수 있는데 발성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잘 들리기도 하더라고요. 그런 부분을 공부하며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Q. 재연 때 고종은 혁명가 같은 느낌과 특유의 예민미가 느껴졌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무능하고 욕심 많은 권력자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번에 고영빈 배우님이 분석하신 고종은 어떤 인물인가요? 역할의 강조한 부분과 집중한 포인트도 알려주세요.

재연 때 했던 고종은 ‘나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며 씌워진 왕관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다면 제가 삼연에 표현하고 싶었던 건 ‘인간 고종’이었어요. 인간적으로 ‘저렇게 흔들릴 수 있어? 저렇게 감정이 밑바닥일 수 있어?’ 이런 부분까지 보여줄 수는 있는 쪽으로 과감하게 갔었던 것 같아요.

좀 더 집중한 포인트라면 연기자가 캐릭터를 연기할 때 본인의 성격이 반영되거든요. 우스갯소리로 제가 실수를 했을 때 밤에 이불킥 하는 정도의 감정이라면 고종처럼 더 큰 책임감과 무게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감정선이 수천 배는 되는 거죠. 감정을 극대화해서 표현하기 위해 업다운이 많은 캐릭터를 가져가려고 했어요. 예를 들면 정훈을 처음 만났을 때 희한하게 부르면서 약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만든다거나 하는 것들이요.

세심하게 보는 관객이라면 첫 부분에 등장했을 때 고종과 월광 부르기 전 고종의 모습은 같은 모습이고 중간의 고종은 굉장히 변화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거에요. 중간의 고종은 삶 속에서 흔들리는 굉장히 다른 사람이에요. 그런 것들이 디테일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어요.

Q. 갑신정변 때 고종의 옥균에 대한 감정은 마음을 주었으니 온전한 사랑이라고 느꼈거든요. 나중에 옥균의 암살을 명할 때까지 고종의 옥균에 대한 감정선의 변화가 궁금합니다.

갑신정변 이후 암살지시까지 우리 극에서는 갑자기 2년 후로 점핑이 되죠. 그 2년 사이에 고종은 자책과 분노 속에서 많은 감정이 오갔을 것이고 끝내는 “저놈을 죽여야겠다.”, “나를 이렇게 홀로 남겨서 힘들게 해 놓은 저놈을 죽여야겠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죠. 그런 감정들이 2년 후의 고종에 반영되어 사람이 약간 넋이 나간 상태로 어딘가 모르게 한 곳만 바라보는 눈빛으로 변해 있죠.

우리 극의 특성상 고종의 라인이 어떤 시대적 배경이라기보다는 옥균을 쫓아가는 영상 위주로 가다 보니 그 부분을 중점으로 분석할 수 밖에 없고 그 이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그 사건이 우리 극 속에 들어와 있질 않아서 애매하고요.

옥균이 죽은 뒤의 감정은 슬픔이긴 한데 슬픔이 너무 크면 헛웃음도 나오고 미쳐버리겠죠. 그리고 가장 큰 감정은 ‘이렇게 사라질 것을’이라는 허탈감이죠. 뭐가 달라지는 게 없잖아요.

뮤지컬 곤투모로우 공연사진 ㅣ 제공=PAGE1
뮤지컬 곤투모로우 공연사진 ㅣ 제공=PAGE1

Q. 이 극을 볼 때 옥균과 정훈의 관계에서 옥균이 죽음으로써 자신의 혁명적 기반을 정훈한테 주는 거에 대해서 일단 관객들이 그 부분을 이해하고 넘어가잖아요. 정훈이 고종에게 일본을 조심하라는 옥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고종은 헤이그 밀사사건의 교지를 내리죠.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요?

서로 죽고 못 사는 그런 감정 상태에 다시는 안 볼 것처럼 하지만 결국에 옥균과 고종은 나라에 대한 독립과 ‘이 나라를 지켜야 되겠다’라는 그 생각으로 둘 다 포기를 못 한 거예요. 그 사이에 정훈이 있었고 결국에는 트라이앵글처럼 모여서 정훈을 통해서 이루겠다고 생각한 거죠.

옥균도 고종이 보낸 정훈이기 때문에 ‘내가 죽더라도 네가 그 뜻을 이어다오’라고 감히 얘기했을 것이고 고종도 정훈을 보고 ‘옥균 대신에 네가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을 수 있구요. 옥균은 고종이 위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스스로를 희생하고 정훈을 보내지 않았을까요?

Q. 헤이그 밀사 사건뒤에 고종은 왜 한정훈을 희생양으로 삼았을까요?

고종이 폐위되고 나면 할 수 있는 게 더 없잖아요. 만약 고종이 의리를 지키고 “내가 모든 걸 실토하고 내 잘못이오” 하고 죽어버리면 그 이후엔 누가 나라를 위해 뭐라도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그 갈등 속에서 결국 고종은 한정훈을 희생시키는 입장이 되는거죠.

Q. 고영빈 배우님이 좋아하는 ‘곤 투모로우’의 넘버는?

‘월광’이 제일 좋구요, 다른 사람의 넘버로 보자면 옥균의 ‘난 아직도 널 그린다’랑 ‘저 바다에 날’을 되게 좋아해요.

Q. 같은 역할을 소화하고 있는 박영수 배우님, 김준수 배우님의 고종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고종은 분량도 적고 되게 플랫한 왕의 모습일 수 있는데 영수가 초연 때 너무 입체적으로 잘 만들어놨어요. 덕분에 재연 때 제가 팁을 금방 얻고 ‘이렇게 표현해도 더 광기로 가도 더 질러도 정말 밑바닥이어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재연을 했어요.

그리고 준수 같은 경우는 말할 필요가 없는 게 소리꾼들이 갖고 있는 그 소리에 묻어난 恨이 있어요. 준수는 그냥 그걸로 최고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그 恨과 표정과 목소리는 우리는 못 쫓아가죠.

Q. 고영빈 배우님의 고종은 우아하고 기품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우아함과 기품은 의도하신 건지 기본으로 배어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의도하고 캐릭터를 연기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하다못해 마돈크를 하더라고 단 한 순간도 없었어요. 제가 본래 갖고 있는 액션인 것 같은데 생각을 해보면 제가 굉장히 차분해요, 사람이 느리고 뭘 하나 집어도 되게 천천히 집어요, 걸어도 천천히 걷구요.(웃음)

커튼콜 연습할 때 이지나 연출님이 “고영빈 배우 걸어나오니까 여기 있는 여자 사람들이 다 소리 질렀어. 배우는 저렇게 걸어야 돼”라고 하셨어요.(웃음)

저는 아무렇지도 않게 평생을 그렇게 걷고 행동하는데 ‘몸짓 하나가 예사롭지가 않다’라고 평가해주시니 항상 감사하죠.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장기라 생각하고 무대에서는 조금 더 디테일한 성격들을 넣고 연기합니다.

Q. 이번 공연에서 ‘웃참’에 실패할 만큼 웃겼던 해프닝이나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요?

페어가 계속 바뀌잖아요. 한 페어랑 계속 한 2주간을 하다가 오랜만에 만나는 페어들이 있어요. ‘이완’ 같은 경우는 갑신정변이 끝난 다음에 김태한 배우는 그냥 걸어 나오면서 대사를 쭉 해요. 그러면 저는 떠나간 옥균을 바라보고 있다가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보면 이완이 나오는 동선인 거죠.

근데 별이는 또 다르게 해요. 별이는 쏜살같이 앞에 딱 나와서 서 가지고 대사를 하거든요. 근데 제가 2주간 한 페어랑 하다 보니 그 동선을 깜빡한 거죠. 떠나간 옥균을 보고 있다가 소리가 나길래 뒤를 봤는데 아무도 없는 거에요. “이건 뭐지? 얘가 왜 등장을 안 했지?” 하고 돌아보다가 그 순간 앞에 와있었던 별이를 보고 고종 아닌 인간 고영빈으로 깜짝 놀라 진짜 ‘어머나’ 소리가 나올 뻔 했어요.

또 하나는 태한 배우가 월광 부르기 전에 “폐위하겠습니다” 하면 음악이 딱 끝나고 대사를 칼같이 맞추는 배우거든요. 근데 리허설 때 한 두 번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본인도 되게 신경이 쓰였나 봐요. 안 맞는다고 연습 리허설을 끊으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폐위하겠습니다” 하고서 음악이 계속 나오니까 거기다 한마디를 더 붙여 “꼭 하겠습니다.” 이래서 너무 웃겨 제가 연습실 리허설에서 노래를 못했어요.(웃음)

태한이하고 저하고는 너무 오래 데뷔 때부터 알던 동생이라 서로를 너무 잘 알죠. 제가 어떻게 해도 태한이는 다 받아줘요.

Q. 설치되어 있는 높은 타워에서 연기하면 무섭지 않나요?

무지 무서워요. 저희가 홍아쎈(홍익대 아트센터)에서 했을 때에는 바닥이 평평했어요. 근데 이번 공연장은 회전 무대 때문에 바닥에 틈이 있어 타워가 굉장히 많이 흔들려요. 그리고 타워 무대 안쪽보다 끝쪽에 서야지 조명이 잘 받아요. 지금은 조금 적응이 됐지만 많이 흔들려서 굉장히 무서워요.(웃음)

Q. 자신이 맡은 고종 캐릭터에게 한마디 말을 건넨다면?

저하고 똑같은 것 같아요. 저도 공연이 굉장히 간절한 나이잖아요. 중견이고 공연을 정말 많이 했으면 좋겠고 무대가 굉장히 소중한 사람이고 쓰임새가 많은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공연이 전부이다 보니, 공연 하나를 접하는 마음이나 고종이 나라를 지키려는 마음이나 크기는 다를지언정 일맥상통할 것 같아요.

그래서 진정성 있게 “어찌 됐든지 간에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다”라고 고종한테 그리고 또 저한테 얘기해 주고 싶어요.

뮤지컬 곤투모로우 공연사진 ㅣ 제공=PAGE1
뮤지컬 곤투모로우 공연사진 ㅣ 제공=PAGE1

Q. ‘곤 투모로우’를 함께 이끌어 가는 다른 배우분들 얘기도 안 할 수가 없는데요. 배우들 간의 호흡이나 분위기는 어떤지 넌지시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다들 진심으로 편한 사이라 한마디를 주고받아도 호흡이 참 찰떡인 것 같아요. 그래서 공연이 끝나고 나면 필석 배우도 재웅이도 재범이도 “너무들 잘했다” 이런 얘기를 되게 많이 했어요.

많이 편해지고 많이 좋아지니까 공연 안에서의 호흡은 말할 것도 없구요. 다들 이 작품을 굉장히 사랑하는 게 느껴져요.

Q. 삼연은 전개속도가 빨라졌다는 생각이 들던데 그 부분을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1막이 길다고 생각되는데 너무 엑기스만 있어 줄일 게 없었고 대신 스피드를 많이 붙였어요. 반면에 2막 같은 경우는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서 숨 돌릴 수 있는 부분을 조금 첨가했는데 이런 부분을 정말 많이 고민해서 모두가 정말 초연처럼 굉장히 많이 연구하고 연습했어요.

Q. 앙상블 인원이 늘어서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좋았는데 배우님들은 어떻게 느끼셨을까요?

앙상블 하는 친구들이 제 아들 딸뻘이에요.(웃음) 연습 중반이 지났는데 칼군무를 하는 거예요. 앙상블이 해줄 수 있는 건 에너지 딱딱 맞는 칼군무 그거면 정말 99점이거든요. 거기에 각자의 캐릭터가 다 살아나면 그건 100점인 거죠. 이번 앙상블들은 무대를 꽉 채워주며 너무 훌륭하게 잘하고 있어요.

Q. 지금까지 많은 역할을 연기해왔는데, ‘고영빈’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는 캐릭터가 있나요?

저는 좀 현실과는 동떨어진 캐릭터들을 주로 해서 굳이 닮은 캐릭터를 찾자면 2008년도에 했던 ‘컴퍼니’의 ‘바비’에요. 다시 무대에 올라와도 30대 역할이라 제가 못하겠지만.(웃음)

제가 했던 역할이 왕 아니면은 좀 저쪽에 다른 삶을 사시는 분들, 드랙퀸(여장남자)이나 드라큐라처럼 현실적이지 않은 인물들이거든요, 저는 지금 캐릭터가 배고픈 상태인 것 같아요.

고영빈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인생작을 하나 만났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요. ‘이 역할은 참 찰떡이다. 누가 봐도 고영빈이네’ 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아직 못 만난 것 같아요. 그래서 ‘한 번쯤은 더 와라’ 이렇게 기도하고 있어요.(웃음)

Q. ‘곤 투모로우’를 보시는 관객분들께 인사를 전해주세요.

“이게 될까? 말까?” 고민하며 1년 가까이 작품의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레슨을 받고 준비했는데 관객분들이 모르고 그냥 넘어갔으면 되게 힘들었을 것 같았거든요. 이번 작품에서 관객분들이 변화를 알아주시는 게 너무 감사했어요.

제가 워낙 sns를 안 해서 잘 못 느꼈었는데 연출부나 또 보러 오신 분들이나 (강)필석이도 요즘에 저한테 힘을 많이 주고 있고 응원을 해주고 있어 너무 뿌듯해요.

관객분들한테 이번에 진짜 고마운 건 그런 변화를 알아봐 주셔서 제가 너무 행복해요. 앞으로도 끝없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제 욕심인 것 같은데 큰 변화들이 많이 자주 있을 거예요. 항상 관심갖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