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괜찮게 그린 그림을 기꺼이 망치는 거예요. 훌륭하게 그릴 기회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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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괜찮게 그린 그림을 기꺼이 망치는 거예요. 훌륭하게 그릴 기회를 위해서.“
  • 성광일보
  • 승인 2023.09.2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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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광진투데이 논설위원
김정숙

-영화 <반쪽의 이야기>를 보고

연인이든 부부이든 친절, 지성, 신뢰성, 운동능력, 용모, 경제적 전망 등의 환상적인 조합이 몽땅 이루어진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이 준엄한 사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애시 당초 이런 게임에 진입하는 걸 아예 포기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피할 수 없는 경쟁이라 여기며 게임의 시험장에 무턱대고 들어서기도 한다. 그 게임이 어느 땐 무모하기도 하고 어느 땐 인생을 시험당하는 꼴이 되기도 하지만, 어찌됐건 인간의 성 호르몬이 들끓는 젊은 시기엔 물 불 안 가리고 투신하듯 자신을 맡긴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하이틴의 로맨스, 코미디 영화이다. 자신의 반쪽을 찾아 사랑을 쟁취하려는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잔잔하면서도 폭력적이지 않은 구도로 엮어냈는데 청소년기의 가장 예민한 사랑 쟁취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장래와 가업, 타인에게 말할 수 없는 각자만의 고민을 가을 저녁의 신선한 바람처럼 잔잔하게 풀어낸다.

이야기의 발단은 러브레터의 대필이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앨리학생이 친구들의 숙제를 대신 해 주며 20달러씩 벌어 용돈을 벌고 가정을 꾸려가는 상황에서, 폴 학생은 학교에서 가장 아름답고 인기 있는 에스터에게 러브레터를 써 달라고 제안한다. 자신의 감정을 담아 주관적이고도 극히 사적인 내용을 교환하는 러브레터를 대필해 달라는 제안에 그건 절대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전기세를 못 내서 당장 전기가 끊기는 상황에선 “그것만은 할 수 없다”던 불굴의 의지도 딱 전기세만큼의 금액 “50달러!”로 수락된다.

이렇게 러브레터를 대필하고 교환하던 중 앨리와 폴과 에스터는 사랑의 막대기를 폴과 에스터로 기울게 하려고 애쓰지만 영혼을 넘나드는 감정을 교류하게 되고, 어떤 일을 추진하는 동안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상대에 대해 깊이 알게 되는 계기들이 발생한다. 결국 영혼을 나누고 감정의 깊이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이들에게 사랑의 막대기는 애초 원했던 상대가 아니라 서로 다른 곳으로 감정의 추들이 움직인다.

앨리와 폴은 에스터에게 보낼 러브레터와 답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가정환경과 서로가 원하는 것,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서로의 고민을 치열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러브레터의 당사자인 에스터는 대필을 해 주는 앨리와 또 다른 세계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감정을 교류하며 서로를 지지한다. 이들이 본래의 목표를 달성하려던 목적은 시간이 지날수록 딴 곳으로 향하고 있어서 애초에 폴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반쪽의 사랑은 딴 곳으로 향한다. 폴만 그런가, 세 사람 모두 그렇다.

사랑은 그랬다. 어린 시절의 사랑이든 성인기의 사랑이든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모든 것은 추상이며 관념이었지만 그래도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사랑이라고 믿으며 젊음을 보내고 세월을 보냈다. 손에 잡히지 않아도 사랑은 여전히 아름다워서 사랑하려 하고, 그 사랑이 한 여름 밤의 꿈이었을 지라도,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으로 몇날 며칠을 자리보전하고 누웠을 지라도 사랑은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철옹성 같은 것이었다. 그 사랑이 완전한 사랑이 아니어도 완전하다고 믿고, 미숙해도 성숙하다고 자기 체면에 빠진 사랑은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사랑이라 믿으며 사랑의 도가니에 몸을 던진다. 그러나 어디 그런가? 환상적인 조합으로 이루어 진 사람의 반쪽을 만난다는 게 평생 살아도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이런 점을 일찌감치 알아차린 영화의 앨리는 어린 청소년기에 이렇게 말한다.

“ 사랑은 엉망진창에 끔찍하고 이기적이고 대담한 거예요. 반쪽을 찾는 게 아니라 노력하는 거예요. 그리고 손을 내밀고 실패하는 거예요. 사랑은 괜찮게 그린 그림을 기꺼이 망치는 거예요. 훌륭하게 그릴 기회를 위해서.”

영화의 앨과 폴과 에스터는 사랑의 막대기가 추를 겨누며 저울질 하는 동안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미래를 그려 나가게 되고 열정을 쏟고 임했던 사업에도 눈을 뜨게 된다. 러브레터는 도구일 뿐 세 사람의 진정한 삶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진행형의 이야기는 영화를 보는 내내 미소를 짓게 한다.

결국 사랑은 그랬다. 젊음과 청춘이 지나버린 갱년의 사람들은 사랑을 추억할 때마다 느끼는 거겠지만 사랑은 그저 과정이었다. 괜찮게 그린 그림을 기꺼이 망치고 또 망치면서도 훌륭하게 그릴 기회를 위해서 기꺼이 노력하는 거였다.

사랑은 그런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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