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굳건한 '한미동맹'으로 선진강국 도약하는 우리나라 만들어야"
전쟁의 포화를 뚫고 맺어진 혈맹 '한미동맹'이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했다. '한미동맹'은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전후 한국의 안보를 보장할 한미 간 방위조약 체결의 필요성을 주장한 끝에 1953년 8월 8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임시로 서명하고 10월 1일 정식으로 체결돼 한미동맹이 공식적으로 출현하게 됐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우리나라의 방위를 위해 외국과 맺은 최초이자 유일한 군사동맹으로 한미동맹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본지는 올해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한미동맹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백운당한의원 김영섭 원장(한의사, 前 동대문문화원장)에게 들어보았다.
앞서 김영섭 원장은 20여 년간 동대문문화원 원장으로 동대문구 문화를 이끈 동대문구 대표적인 원로다. 또한 동대문구 활동 외에도 (사)한미친선연합회 운영위원장으로 한·미 양국 경제, 사회문화, 안보 등 양국 국민의 상호 이해와 친선교류를 통한 우호증진 및 한·미 동맹 강화와 양국 간의 문화와 경제 등 다방면의 교류 촉진을 도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한·미 양국 국민의 우호증진과 한·미 양국 간 자원봉사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당시 도날드 트럼프(Donald John Trump) 대통령이 수여하는 GOLD 공로 사회공헌 표창을 받기도 했다.
<편집자 주>
■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한미동맹'의 시초
70년 역사의 한미동맹은 6·25전쟁 속에서 태동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유엔안보리 소집을 요청했다. 이후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라 미국 등 16개 참전국을 포함해 총 63개 지원국의 도움에 힘입어 공산군의 침략을 방어했으나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것.
당시 한반도의 통일 없는 휴전에 반대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조기 종전을 원했던 미국 정부와의 외교적 협상에 나섰으며 우리나라의 안보를 보장할 한미 간 방위조약 체결의 필요성에 따라 양국 간 교섭 끝에 1953년 8월 8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가조인됐다. 이어 10월 1일 정식 조인돼 '한미동맹'이 공식화됐다. 다만, 한미상호방위조약은 1954년 7월 한미정상회담을 거쳐 11월 18일 정식 발효됐다.
■ '한미동맹' 지난 70년간 북한 도발 막는 역할 톡톡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미 양국이 안보문제에 관해 긴밀히 협의할 것과 당사국 일방이 침략당할 경우 공동 대처하고, 미군의 한국 주둔을 인정하고 있다. 이 조약은 1년 전 통고가 없는 한 무기한 유효함을 선언, 한미 양국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양국 간의 우호 동맹관계가 계속되는 것.
김영섭 원장은 "한국상호방위조약은 한국에 대한 제2의 침략을 막는 목적으로 지난 70년간 북한의 도발을 막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한국전쟁 당시 무차별적으로 북한에게 당한 우리나라를 도와주고, 전쟁 이후 재건과 북한 도발을 막아준 것은 '한미동맹'이 역할이 가장 크다"고 설명했다.
■ 굳건한 한미동맹 유지 위해 '한미친선연합회' 노력
잘 사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준 '한미동맹'의 더욱 굳건한 유지를 위해 (사)한미친선연합회(대표회장 홍사광)는 다양한 활동으로 노력하고 있다.
(사)한미친선연합회는 2007년 2월 14일 비영리, 비당파적인 순수 민간조직으로 창설된 이래 현재까지 한미동맹 강화 및 우호증진과 친선교류를 통해 여론 형성을 주도하며 그 중요성을 국내 및 미국에 알리고 양국 정부에 전달과 촉구하는 각종 활동과, 한·미 간 문화 및 학술관련 현안문제에 관한 연구결과의 대안제시와 보급, 그리고 양국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제안, 강연회, 세미나, 6·25 한국전쟁참전 미군추모사업, 출판물 발간 등의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으로 하고 있다.
특히 김영섭 원장은 (사)한미친선연합회 운영위원장으로 오랫동안 활동하며 미국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 소식이 김 원장 고향 경남 하동군까지 전해지자 때마침 하동군은 '하동 전투 사망자 가족찾기 운동'을 전개하던 온갖 노력에도 미군 사망자 이름조차 찾기에 실패를 거듭해 포기하던 중 김 원장을 찾았다. 이에 김 원장은 (사)한미친선연합회 운영위원장으로 미국 행정부, 국무성, 국방부, 재향군인회, 태평양사령부, 주한미대사관 등 협조를 통해 하동군은 사망자 이름과 가족들을 찾았고, 하동군이 전개한 '하동 전투 사망자 가족찾기 운동'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했다.
■ 한미동맹, '안보동맹'에서 '경제동맹'으로 발전
한의학 박사이기도 한 김영섭 원장은 한의사이기 전에 건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경제학도로 경제 분야에도 전문성을 지니고 있다.
김영섭 원장은 "안보동맹으로 시작한 한미동맹이 현재는 안보동맹에 경제동맹으로 발전했다"고 전했다. 이어 "경제동맹은 2012년 공식적으로 발효된 한미 FTA를 기점으로 과거 미국의 원조를 받던 한국이 미국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의 가치를 공유하는 주요 경제 파트너 관계로 발전한 것"이라며 "시대별 전략에 따라 변화한 한미동맹은 한미 양국의 협력으로 상호 시너지를 발휘하며 새로운 70년을 향해 전진해야 한다. 높아진 우리나라의 위상과 국력을 바탕으로 한미동맹은 글로벌 현안에 대한 공조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 우리나라 선진강국 도약 위해 '한미동맹' 더욱 굳건해져야
'한미동맹'은 6·25 한국전쟁이라는 국가 생존 위기에서 탄생했고, 한국전쟁 휴전 후 한국의 군사력 현대화를 촉진시켰다. 이를 통해 한반도 안정으로 우리나라가 경제력을 신장시키는 데도 기여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나라가 현재까지 미국과 동등한 위치에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함께 수호하는 국가가 될 수 있도록 했다.
김영섭 원장은 "'한미동맹'은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미래 후손을 위해 계속 유지는 물론 더욱 굳건해져야 한다"며 "강대국 사이에 존재하는 우리나라가 자주국방을 통해 국방의 안보를 확보한다 해도 경제·문화의 안보를 위해서라도 세계 최강국 미국의 동맹은 꼭 필요하다. 우리는 힘없이 나라를 잃었던 경험이 있고, 힘없어 같은 민족들에게 자유민주 진형을 잃을 뻔했다.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영섭 원장은 "지금 우리나라는 '한미동맹'이 없었다면 이만큼 성장은 물론 한국전쟁으로 공산화된 나라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며 "지난 70년의 한미동맹이 2023년을 기점으로 더욱 굳건한 신뢰를 유지해 미국은 강대국으로서 지위를 유지하고, 한국은 선진강국으로서 도약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