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빵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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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빵꽁이
  • 성광일보
  • 승인 2024.02.2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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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률
수필가.
성동문인협회 이사
박병률 수필가

열대어 '구피' 배가 볼록하고 꼬리 부분에 실처럼 가느다란 걸 달고 다녔다. 새끼 낳을 것 같아서 작은 어항 하나를 샀다. 어항에 물을 채운 뒤 구피를 옮겼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새끼를 낳았는가 싶어서 어항 속을 보고 있을 때 아내가 다가와서 한마디 거들었다.

“불빛이 밝아서 새끼를 못 낳는교?”

아내가 신문지를 접어서 어항위에 덮었다.
“아직 나올 때가 안 되나벼, 신문지를 덮으면 물고기가 숨을 못 쉬제!”

내가 신문지를 치우려 하자 아내가 말했다.
“남자들이 애를 낳아봤어야 그 심정을 알지요...”

아내가 툭 던지는 말에 뒤통수가 간지러웠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임신한 부부의 체험 프로그램을 보았다. 부인이 애 낳을 때 남편이 옆에서 힘내라고 손을 잡아주고, 부인이 산달을 앞두고 있을 때 남편도 임신한 것처럼 배가 볼록했다. 부인의 고통을 알기 위해 태아의 무게만큼 남편이 무언가 배에 두르고 있는 모습을 보았으므로, 이런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뭐가 떨어진다는 지나간 시절 탓으로 돌리기엔 염치가 없다. 남자는 설거지를 하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감시망(?)에 사로잡혀 아내를 도와주기는커녕 여자가 할 일이려니 하고 살았다. 

아내가 산부인과에 애 낳으러 갈 때 함께 가자니 눈치가 보였고, 자식을 키울 때 어른들 앞에서 애를 안고 있는 것조차 쑥스러웠다. 새끼 밴 구피를 바라보는데 지난 일이 떠올랐다.
때마침 구피가 산통을 겪는 듯 정신없이 물속을 헤집고 다녔다. 아내는 안쓰럽다며 자리를 피했다. 구피가 한동안 돌아다니다 지쳤는지 몸을 풀숲에 숨기고 움직이지 않았다.  
새 생명이 태어난다는 건 인간과 무엇이 다를까. 신비하고 존경스러운 마음에 나는 잠시 어머니를 떠올리고 아내를 생각했다. 

양손으로 볼을 감싸고 생각에 젖었는데 오랜 기다림 끝에 구피가 새끼를 낳았다. 새끼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물 위로 솟구쳤다. 간격을 두고 새끼 7마리를 낳았다. 갓 태어난 치어 한두 마리가 배 아랫부분에 혹을 달고 있었다. 

어미를 큰 어항으로 옮긴 뒤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다. 치어는 노란색 난항을 달고 있는데 이틀 정도 먹을 만한 양식이다. 한 이틀 치어 먹이를 주지 않아도 된다. 새끼가 태어나자마자 헤엄칠 수 있기에 큰 물고기들이 먹잇감으로 알고 잡아먹는다. 

보통 20~30마리 새끼를 낳는다, 한 번에 새끼를 많이 낳는 게 아니라 간격을 두고 오랜 시간 동안 낳는다. 새끼를 낳으면 치어 통을 설치하거나 어항에 수초를 많이 심으면 새끼들이 수초 사이에 숨어 산다.

새끼 한 마리가 헤엄쳐 다닐 뿐 나머지는 어항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얼마 후 2마리가 꼬리를 흔들고 물 위로 솟구쳤다. 다른 놈도 잠에서 깨어나라고 어항을 두 손으로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아래 가라앉아 있던 치어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물위로 떠올랐다. 4 마리는 죽었다. 죽어있는 치어를 건져내고 물을 갈아주었다. 치어 3 마리가 물속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닐 때 아내를 불렀다.

“재네 노는 거 봐, 아이들이 뛰노는 것 같애,”

새끼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데 애들 어릴 적에 뛰놀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 아내와 결혼 후 나는 아이 키우는 법도 잘 몰랐다. 아내는, 내가 장남이라는 무게에 맞물려 시동생이 줄줄이 사탕처럼 달려 있고, 시부모 모시고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가재는 게 편이라지만 나는 매사 부모님 편에 서서 아내가 이해하기를 바랐다. 아내와 함께 다시 신혼 초로 돌아간다면 부모님이 이 눈치를 채지 못하게 아내 편에 서고 싶다. 그러면 과거가 지워지고 핑크빛으로 물들까 싶어서 용기를 냈다. 

“허 여사는 다시 태어나도 나랑 결혼하시겠습니까?”
“아니요!”
하며 아내가 한마디 덧붙였다.

“내가 남자로 태어나고 당신이 여자로 태어난다면 혹시 모릅니더!”
아내를 바라보는데 눈가가 촉촉이 젖어있었다. 나도 까닭 없이 눈물이 핑 돌았다, 어항을 바라봤다. 큰 어항에 5마리구피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작은 어항에는 치어 3 마리가 꽁지 빠지게 돌아 다녔다. 치어들 이름을 지었다.

“빵꽁이1, 빵꽁이2, 빵꽁이3”
머리가 새까맣고 꼬리가 진한 놈을 1번, 머리가 검고 꼬리는 옅은 놈을 2번, 머리와 꼬리가 쥐색인 새끼를 3 번이라 정했다. '빵꽁이'는 내가 아내를 부르는 애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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