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닦은 수건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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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닦은 수건 한 장
  • 송란교 기자
  • 승인 2024.07.2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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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 논설위원
송란교 논설위원

발 닦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더니 옆에서 이를 보고 있던 제 처(妻)가 기겁을 하며 하는 말,

‘아니 발을 닦은 수건으로 얼굴을 그렇게 닦고 싶어요. 아휴 더럽구려, 그 수건 그냥 세탁기에 넣어 두세요’. 나는 애써 못 들은 체하면서 얼굴 닦고 발 닦고를 반복하고서, ‘아니 얼굴이나 발이나 다 내 몸뚱이인데 뭐가 그리 더럽다는 것이요’ 하고 한마디 쏘아부쳤다.

발은 더럽고 얼굴은 깨끗하다는 인식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발은 낮은 곳에서 지저분한 것을 밟고 다니고 얼굴은 하늘 위의 천사를 업고 다닌다고 언제부터 믿어왔을까? 발뒤꿈치 치켜세우고 고개를 빳빳하게 쳐듦이 먼저이고 허리 숙여 속죄양 됨은 마지막이어야 한다는 것은 세상살이의 진리라 주장한다. 왜냐면 모든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몸의 가장 낮은 곳에서 고린내 나는 신발 속에 갇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견뎌내고 있는 것은 발이고, 내 몸의 가장 높은 곳에서 보고 싶은 것 다 보면서 가장 가벼운 짐을 지고 즐기고 있는 것은 얼굴이 아니던가. 발은 하얀 얼굴과 온몸의 무게를 말없이 받아주고 있는데 같은 수건으로 먼저 발을 닦고 나중에 얼굴을 닦는다고 왜 이리 야단이고 왜 이리 핀잔이란 말인가. 얼굴은 가장 먼저여야 하고 발은 가장 나중에라야 하는 법칙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우리 뇌 속에는 암암리에 낮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천한 사람이고 높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귀한 사람이라는 의식이 너무나도 뚜렷하게 박혀 있다. 높고 낮음의 가치 기준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무조건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하고 다른 사람보다 무조건 더 높아야 좋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산다. 지나친 편견과 고정관념은 아무리 높은 곳에 있더라도 자신의 시야를 더욱더 왜소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과의 소통도 지극히 어렵게 할 뿐이다.

바닥 인생이라고 지렁이처럼 언제까지나 바닥을 기어 다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바닥을 디딤돌 삼아 봉황새처럼 하늘 높이 올라서는 날도 있을 것이다. 생각을 뒤엎으면 하늘이 바닥이고 바닥이 하늘인 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6이라는 숫자가 넘어지면 9자로도 보인다. 때론 장애물이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꼴찌로 달리다 뒤돌아 뛰면 1등도 할 수 있음이다.

침대에 드러누우면 발이나 얼굴이나 모두 같은 높이에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모두 평등하자고 날마다 드러누워만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다 밤이 되면 모두 한곳으로 모이게 된다. 그러면서 같은 높이로 같은 수준으로 맞추어가는 것이다.

존경을 받는 사람도 존경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함께 공존하며 살아간다. 큰 돌을 쌓는데 작은 돌이 전혀 필요 없다고 말하지 말자. 조그만 틈새는 작은 돌로 메꿔야 하리라. 그래야 무너지지 않는다. 면적이 아니라 적당한 쓰임새가 중요한 것이다. 서로 어긋나게 밀고 당기고 버티고 어깨동무해야 튼튼하게 지어진다.

바닥에 깔린 공기도 위로 올라야 깨끗한 공기가 되고 그렇게 순환되는 공기 덕분에 사람들은 숨을 쉴 수 있다. 순환이란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장맛비에 강바닥이 뒤집어지면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오만 것들도 함께 솟구쳐 오른다. 우당탕탕 출렁거리면서 가슴 먹먹한 사연들도 한바탕 뒹굴다 흘러간다. 밑바닥에 새로운 토사물이 쌓일 때까지 위에서 흐르는 물은 아직도 흙탕물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맑은 물이 되면 세상은 또다시 평온해진다. 가끔은 이렇게 위아래를 뒤집어야 속이 시원하다. 마음속 응어리도 그렇게 해서라도 삭여야 편하다.

섬김의 자세와 출세의 탐욕을 생각해본다. 씨는 땅밑으로 들어가야 하고 꽃은 하늘 위로 피어나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연기는 바닥 아궁이에서 굴뚝을 타고 하늘로 오르고, 물줄기는 높은 곳의 저수지에서 물길 따라 아래로 내려와야 다툼이나 엉킴이 없는 아름다움인 것이다.

밑에서 위로 오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성적이고 월급이고 자산가치이다. 위에서 밑으로 내려오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스트레스와 물가가 아닐까. 웃음 장작을 패면서 눈꼬리는 내리고 입꼬리는 올리고를 무한 반복하다 보면 얼굴에 웃음꽃이 필 거라 믿는다.

추락하는 명예는 오명(汚名)일 뿐이다. 콧등에서 흘러내리는 오만을 마른 수건으로 잘 닦아야 하겠다. 발톱 밑에 낀 묵은 때라도 잘 씻어내야 하리. 건조대에 납작하게 걸린 수건을 걷어와 네모난 두부모처럼 가지런히 갠다. 그 수건으로 발도 닦고 손도 닦고 얼굴도 닦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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