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의 노포] 예아네 꽃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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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의 노포] 예아네 꽃집
  • 성동신문
  • 승인 2020.08.1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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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성수동에 즐비하던 농원들처럼 '예아네꽃집'
신경 안 써주면 '자살하는' 나무들, 아이들, 자식처럼 길렀다
예아네꽃집 홍종혁 사장이 화초를 손질하고 있다.
예아네꽃집 홍종혁 사장이 화초를 손질하고 있다.

 

예아네꽃집 아이는 예아

많은 동네 가게가 그렇겠지만, 자녀의 이름을 걸고 사업을 한다는 건 지순한 애정의 표현이다. 정직한 사랑을 아이들에게 바치는 것처럼, 26년여 동안 예아네 꽃집선 아름다운 꽃이 건강하게 자라왔다. 

지난 6월 4일, 꽃집엔 '업둥이'가 놓여져 있었다. 제멋대로 잎을 뻗친 식물이 검정비닐 봉지에 담겨있었다. 쪽지조차 남겨놓지 않은 터라 함부로 손 댈 수는 없지만, 말라죽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터였다. 아침마다 주는 물을 그 산세베리아도 받겠고, 옆 나무들 곁에서 그 식물도 조금씩 커갈 터였다. 

“처음 꽃집을 시작했을 때는 허리가 부서지는 줄 알았어요. 지금이야 스티로폼도 쓰고, 나뭇껍질도 쓰고 개량토도 쓰니까 화분이 좀 가볍죠. 집집마다 엘리베이터도 있고…. 그 시절엔 그런 게 없으니까 죄다 들고 나르는 거죠. 식물이 저절로 자라나는 줄 알지만, 이게 할 일이 아주 많아요. 살뜰하게 보살펴 주지 않으면 자살을 택하는 놈들이니까.”

이제 막 시작된 더위가 도시의 아스팔트를 데우고 있는 6월초 오후였다. 꽃집 안엔 바람이 일렁였다. 더위엔 한번쯤 물도 더 분무해 주고, 선풍기도 튼다. 운동을 시켜야 건강하게 식물이 자란다. 여전히 나무는 수형을 잡고, 주변 환경도 만들어주어야 한다. 

예아네 꽃집은 꽃집 안팎의 경계가 거의 없다. 많은 식물들은 가게 밖서 자란다. 꽃집 앞은 도열한 병사들처럼 혹은 환영인파들처럼 인도를 걷는 이들을 통과시킨다. 구아바, 석류, 올리브, 작약, 목단(모란), 녹보수, 만리향, 남촌, 은행, 소철, 공작단풍 등이다. 그곳을 건너가는 순간 적절한 습기와 청량감 그리고 향이 돈다. 그 빽빽한 나무들 뒤편에 흰 꽃잎이 점차 핑크빛으로 변해가는 수국, 떡갈수국도 있었다. 

“이건 내가 숨겨놨어요. 일부러. 아내가 그래요. 아니, 꽃을 보이게 놓아야 사람들이 보고 사가지. 이렇게 감춰져 있으면 어떻게 파느냐고. 이쁘니까, 좀 안 팔렸으면 싶은 거지.”

혼날 만도 하련만, 이 남자가 이런 '배짱'을 부릴 수 있는 건 이유가 있을 터였다. 꽃집 명함엔 부부의 이름이 나란한데, 아내 이문자 님 이름이 먼저다. 글을 잘 쓰는 아내에게 글 쓸 기회를 주고자하는 마음이 보인다. 도움을 청하는 이웃이 있으면 선뜻 도와온 남편. 도울 여력이 없으면 사람을 소개해 기어이 돕고 마는 성정을, 아내는 그간 참거나 혹은 동의하며 살아온 게 분명할 터였다. 그의 아이들도 잘 자라 다시 아이들 키우며 잘 살고 있다. 

성수동 농원 기억이 꽃집 낸 계기 

“나는 성수동에서 태어났어요. 지구대앞 435번지, 큰 기와집. 75년여를 이곳서 살았어. 성수동엔 꽃집, 농원들이 많았어. 우리나라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큰 농원 상록원도 여기 있었으니까. 가지, 오이, 고추, 배추, 무 같은 채소도 엄청 자랐고. 미나리꽝은 여기 성수동보다는 행당동, 지금 성동소방서 있는 데서 많이 자랐고. 그러니까 나도 식물 키우는 데 관심이 생겼지.”

그는 꽃집을 열기 전에도 두어 동 비닐하우스도 지어서 식물들을 길렀었다. 사업도 하고 취업도 해보았지만, 어느 순간엔 접고 꽃집이 하고 싶어졌다. 그는 서포 고속터미널 인근서 개최되는 3년 일정의 꽃꽂이 강의부터 들었다. 꽃꽂이도 하나의 산업이고, 이 안에서도 집중된 커리큘럼과 생태계도 있다. 그 업계의 거목 이윤선 회장께 3년 과정을 1년반 만에 속성으로 배웠다. 당시 100여 명의 사범 중에 남자는 겨우 서넛. 그도 출품을 시도하고, 반도호텔 같은 데서 장식도 하며 기예를 축적해 갔다. 그런 과정은 자원봉사로 연결됐다.

그는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하셨던 청소년 교화에 참여했다. 범죄 청소년들을 소년원 대신 사회의 어른들과 만나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아이들과 빵을 사먹고 대화하고, 때로는 이곳 일터로 와서 찬찬히 아이들 말을 들어주었다. 한때 약 삼십여 명의 아이들을 동시에 맡은 적도 있었다. 그와 함께 했던 아이들은 거의 재범을 저지르지 않았다. '실수를 다시 저지른 예외적 아이'를 위해서 그는 검찰에 전화해 '다시 용서해 달라!' 말했다. 용서받은 아이는 꽃집 아저씨와 약속을 지켰다. 그는 이 봉사를  20여년 쯤 지속했다. 

이웃 도시인 위한 꽃과 열매 키워 

그의 꽃집은 '도시인'을 위한 곳이다. 하지만 텃밭 채소들을 주로 파는 곳은 아니고, 그렇다고 행사나 축하에 드릴 꽃만을 전문으로 다루지도 않는다. (물론 이런 수요가 있고, 그를 채워주긴 하지만), 홍종혁 님의 관심은 유실수다. 꽃을 피운 뒤, 탐스럽게 열매를 맺어가는 과실수에 예아 아빠는 폭 빠져있다. 올리브, 오렌지, 석류, 낑깡, 귤, 한라봉, 포도, 자몽, 구아바 들은 가을이면 붉게 노랗게 혹은 녹색과 청색으로 그의 정원을 채워왔다. 그곳에 앉아 그들을 볼 때, 그는 가장 행복하다. 

만리향이 그의 꽃집 오른편에 서있다. 주인장보다 키가 더 큰데, 그가 처음 발견했을 때는 손가락만큼이나 작았다. 툭 벌어진 열매에서 떨어져 다시 자랐을 것이다. 10여 년의 세월, 그러니까 3천6백5십여 일의 시간을 묵묵히 이어온 흔적이다. 매해 형태를 위해 혹은 줄기를 굵게 하려고 가지를 잘라온 시간들, 겨울을 견디기 위한 보살핌들, 모든 외부적 환경이 변할 때마다 늘 나무의 입장에 서서 대처해온 시간의 축적들이 이 안엔 있는 셈이다.

열매 가득한 나무를 사간 곳서 감사 인사가 전해올 때가 있다. 교회로, 농협으로, 어느 집으로, 사무실로 실려 간 '아이들'의 새 주인들, 반려들이 전해주는 안부인사다. 그 말을 들을 때, 그의 가슴에도 뿌듯한 열매가 맺힌다. 그 열매의 이름은 사랑 혹은 감사일 터였다. 
예아네꽃집 : 02)464-9038 서울 성동구 뚝섬로 404 
【원동업 성수동쓰다 편집장】
3bigpictuee@naver.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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