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정신과 폴리페서
상태바
선비정신과 폴리페서
  • 김정민 기자
  • 승인 2022.05.09 0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정원
시조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강남문학회이사. 저서로 산문집 『피아노 치는 시인』 등 3권. 시조집 『얼레와 어금니』 등 3권. 양천문학상, 『현대시조』좋은 작품상 등 수상
시조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강남문학회이사. 저서로 산문집 『피아노 치는 시인』 등 3권. 시조집 『얼레와 어금니』 등 3권. 양천문학상, 『현대시조』좋은 작품상 등 수상

예부터 학식이 높고 지조를 지키는 자를 선비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선비는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부정과 부패에 타협하지 않으며 관직과 재물을 탐하지 않는 한편 의로운 일이라면 죽음도 불사하였습니다. 조선 사람의 피 속에 흐르는 이 숭고한 정신을 이른바 ‘선비정신’이라 일러왔습니다. 이런 선비정신은 고려말기에 원나라에서 도입된 성리학에서 출발하였으며 이조 개국공신인 정도전과 권근 등에 의하여 유교적인 도덕규범의 실천을 강조함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부터 성리학은 변화하는 사회조류에 대체할 수 있는 학문·사상으로부터 역할을 상실하여 대신 실학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학문·사상 조류가 등장했습니다.

대표적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은 그가 저술한 ‘목민심서’에 지방 관리의 폐해를 없애고 지방행정의 쇄신을 주문하는 실학사상을 강조하였고 “임진왜란 이후 온갖 법도가 무너지고 모든 일이 어수선하여 털끝 하나도 문제 아닌 것이 없으니 지금이라도 바꾸니 않으면 나라가 망하고 말 것”이라며 정부의 과감한 개혁조치를 요구하였습니다. 같은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은 국가와 자본의 권력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는 실학자였으며 그가 쓴 허생전에서 그가 꿈꾼 나라는 백성이 권력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이상사회였습니다.

이후 세계주의와 현실지향적인 실용주의적 개념의 실학을 모색하게 되었고 따라서 독재와 권위주의에 항거하는 4.19혁명이나 6.10항쟁, 작년의 촛불시위도 진일보한 실학의 현실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연발생적인 민중운동으로 승화된 필연적 결과라고 봅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많은 교수와 지식인들이 독재에 항거하여 민중을 계도하고, 언론과 강연을 통해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고고한 선비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1960년대 자유당 일당독재에 온 국민이 신음할 때 함석헌, 조지훈, 유진오, 장준하, 양호민, 안병욱, 김준엽, 정병욱, 한우근 현승종 등이 지적(知的) 저수지인 ‘사상계’를’ 통해 국민과 소통하고 독재와 맞서 싸웠습니다.

당시 고려대학교 교수인 조지훈은 ‘지조론(志操論)’을 ‘새벽’에 발표하여 친일파들이 정치일선에서 당당히 활동하고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변절을 일삼는 당대의 세태를 꼬집었습니다.

또한 이문열이 발표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당시 자유가 억압되고 민주주의가 자리 잡지 못했던 한국사회의 모습을 우회적으로 묘사한 작품입니다. 1960년대 말 시골로 전학을 간 ‘나’는 막강한 힘을 가진 반장인 엄석대의 횡포를 담임선생에게 고발하지만, 오히려 따돌림을 당하게 되고 결국 살아남기 위해 석대에게 굴복하고 그의 특혜 속에서 편안한 학교생활을 한다는 줄거리의 소설입니다. 현실과 야합하는 세태를 풍자한 것이지요.

시인 김지하는 박정희 군사독재시절에 재벌·국회의원·고급공무원·장성·장차관을 오적(五賊)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부패상을 고발하며 새로운 통치 질서 수립을 요구한 사회 고발적 풍자 담론시를 발표했습니다.

여기서 필자는 문득 한국의 정치현실과 소위 지성인이라는 대학교수들이 어떻게 시대와 야합하여 학문을 버리고 출세 지향적 정치꾼이 되는지를 고발하고자 합니다. 대학교수는 최고의 지성인입니다. 따라서 불의에 항거하고 후학들에게 부정부패를 일소해야한다는 국가관·세계관 을 가르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직접 권력의 대열에 참가하려 합니다. 이는 대학발전이나 대형프로젝틀 따오기 위한 방편으로 정치·행정 엘리트들과 관학유착에 몰두하게 되고 그 결과 그 교수들은 관학유착의 선봉장으로 대접을 받는 이상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요즘 출세의 지름길로 가는 길에 많은 폴리페서(Polifessor)가 합류합니다. 폴리페서는 정치(politics)와 교수(professor)의 합성어입니다. 적극적으로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정책으로 연결하거나 그런 활동을 통해 정계(政界)나 관계(官界)의 고위직을 얻으려는 정치교수를 일컫는 신조어입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문·안 대선후보 캠프에 무려 500여명의 교수들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제까지 줄기차게 핏대를 올리면서 언론에 반대주장을 발표해오던 교수로서의 주장이 정권의 부름을 받고는 하루아침에 당시의 관행이라는 내노남불의 곡학아세를 서슴치 않는 야누스의 두 얼굴을 보면서 그들에게는 ‘폴리(poly)’는 있어도 “페서(fessor)‘가 일순 사라졌음에 실망을 금할 수 없습니다.

폴리페서는 궁극적인 목표에 따라,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현실정치에 뛰어들고자 하는 '진정한 폴리페서'와 일신의 영달을 위하여 배워온 지식을 팔아먹는 '사이비 폴리페서'로 나뉩니다. 조선시대에도 폴리페서는 있었습니다. 많은 사대부나 재상집이 유력고관의 집을 드나들며 앞날을 위해 선을 댄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이를 분경(奔競)이라 했습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많은 괴리가 있습니다. 아카데미니즘을 정치에 접목하려면 수많은 시행착오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대학이론과 정치이론은 오십보백보라는 착각에 빠지면 이는 곧 "사람은 죽었어도 병은 고쳤다"는 어느 의사의 해괴한 논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론과 현실은 다릅니다. 그래서 이상과 현실의 조화 즉 '중용'의 길을 택하는 것이 정치라고 수많은 성현들은 주창해 왔습니다.

요즘 뜨거운 이슈로 등장한 최저임금문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문제, 각종 정책이 양산됨에도 불구하고 청년실업이 줄지 않는 문제, 평창올림픽을 보면서 20, 30세대가 느끼는 불공정의 문제, 평창올림픽에서 태극기를 없애고 한반도기를 드는 문제, 기존산업이나 대기업에 대한 규제해제는 빠져 있는 현실외면의 문제, 국민세금으로 공무원을 늘리는 것이 일자리대책이 되어버린 문제, 탈 원전정책 문제 등을 보면서 이러한 정책들이 혹시 강단정치를 해 온 아마추어 폴리페서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정치는 얄팍한 대학노트로 운영되는 아마추어의 무대가 아니라 고도의 책략과 타협과 치열한 정쟁을 통해 탄생하는 프로의 무대입니다. 정치는 한번 연주해 보고 시정하는 아무추어 관현악단의 무대가 아닙니다. 그래서 정치에는 프로의 지혜와 전략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와 전쟁은 연습이 없다는 말이 생겨난 것입니다.

박정희 군사독재시절에 유능한 대학교수들이 폴리페서로서 이 나라의 경제개발모델을 수립하여 고도성장을 이루어 온 사실을 기억하는 보수주의자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남덕우 경제기획원장관은 개발독재시대 한국식 경제성장 모델을 완성한 서강학파의 대부였습니다. 그를 사이비 폴리페서라고 매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진정한 폴리페서였기 때문입니다.

철학가 사르트르는 “지식인은 영원한 자기비판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폴리페서만 늘어나는 현실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면서 조상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선비정신’은 어디로 갔으며 그 많던 지식인들은 어디로 숨었는지 최고의 지성인인 교수님과 학자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얄팍한 지식을 무기로 소위 권력에 아부하는 사이비 폴리페서들은 없는지 국민 모두가 냉철하게 주시해 보아야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