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면 분만휴가를 끝내고 직장으로 복귀해야 하는 은경 씨는 요즘 우울하다. 매일 새벽 깨서 보채는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재우느라 피로가 너무 쌓였기 때문이다. 아이는 도대체 왜 밤잠을 제때 안 자는 건지, 언제까지 이런 독박육아를 해야 하는지 궁금하고 답답했던 은경 씨는 검진 받기 전 이런 고충을 호소한다.
신생아기나 영유아기의 아이들이 먹고 자는 것만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아이들에게는 어른과 상호작용을 하며 학습하는 능력, 소음과 빛 등 자극을 스스로 차단해 잠을 연장하는 능력도 있다. 밤잠을 자지 않는 아이 때문에 고민인 은경 씨는 월령에 따른 아이의 발달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고, 가족들의 이해와 상호 협의가 잘된 상황이라면 ‘수면 교육’을 시도해볼 수 있다.
수면교육을 권하는 이유는 첫째, 어른과 함께 자는 경우 아이에게 질식의 위험이 있기에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기원전 10세기 솔로몬의 재판에 등장하는 두 여인의 분쟁에서도 어른과 함께 자다 질식사한 아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둘째, 아이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기르기 위해서다. 신생아일지라도 배울 힘이 있으며, 인격적으로 독립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셋째, 전체 가족 구성원의 건강과 화목을 위해서이다. 신생아기와 영아기의 뇌파를 분석해보면 비활동수면, 렘수면인 활동수면, 중간단계 수면 등 3가지 형태로 이루어진 수면 패턴을 보인다. 이중 중간단계 수면은 얕은 수면상태이기 때문에 쉽게 잠에서 깰 수 있다. 또 렘수면이 수면의 50% 정도로 어른의 25%보다는 월등히 길게 차지하며, 수면 주기는 50~60분마다 반복된다. 소위 통잠이란 걸 잘 수가 없다.
신생아는 하루에 16~18시간 자지만, 한 번에 2.5~4시간 이상 지속해 수면을 취하기는 어렵다. 그러다가 생후 2개월 무렵이 되면 낮밤이 바뀌는 ‘낮밤혼동’의 시기가 온다. 생후 3개월은 아이의 수면에서 중요한 터닝 포인트인데, 신체적으로 7~8시간을 먹지 않고 내리 자더라도 저혈당에 빠지지 않으며 성인과 같은 밤낮 주기를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면교육을 시작할 수 있는 적절한 월령은 생후 4~6개월로 본다.
<영아에게도 자연스러운 수면교육>
산업혁명 이후부터 수면교육이라는 개념이 알려졌지만, 실제로 적용 가능한 일반적인 수면교육 방법은 미국의 소아과 의사인 리처드 퍼버(Richard Ferber)에 의해 소개됐다.
그는 1985년 자신의 저서 『자녀의 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서 아기가 혼자서 잠을 자기가 어려운 이유는 ‘혼자 자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며 ‘아기들은 배우기를 좋아한다’라고 한다. 매우 유명한 방법이어서 ‘퍼버라이징(Ferberizing)’이라는 동사가 생겼을 정도다.
아기의 수면교육에는 자장가와 무드등, 인형과 애착물이 필요하다. 아기가 ‘엄마가 불을 끄고 저녁 자장가를 불러주는 걸 보니 밤잠을 잘 시간이 되었구나’라고 학습할 수 있도록 일관성 있게 수면교육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다가 깨서 보채는 아이에게 환한 불빛을 비추고 큰 소리로 반응하거나 몸을 흔들어 다시 재우려 하는 노력은 오히려 아기를 자극하여 중간단계의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게 할 수 있다.
아기가 피곤해야 잠을 더 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아기가 낮잠을 충분히 자고 피곤하지 않을수록 밤잠을 더 잘 자기 때문이다. 수면교육을 잘 받은 아기라고 해서 단 한 번의 흔들림도 없이 잠을 잘 자는 것은 아니다. 잘 자던 아기도 9~12개월 무렵 다시 중간에 깨어나 잠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이 시기의 아기는 분리불안이 생긴다거나 기거나 걷기, 구르기, 높은 곳에 기어오르기, 말 배우기 등 엄청난 양의 반복학습을 하며 교감신경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기여서 한밤중에 일어나 다시 잠들지 못할 수 있는데, 이것을 ‘수면퇴행(sleep regression)’이라고 한다. 아이들의 발달단계 중 일어나는 일시적 ‘퇴행’은 정상적이며, 다음 단계로 도움닫기를 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이제까지 설명한 수면교육은 우리 사회에서는 아주 낯선 개념이다. 영유아에게 교육을 한다는 개념이 낯설기도 하고 아이를 혼자 재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기거나 정서적으로 상처를 입힐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서구의 많은 국가에서는 아기가 수면교육을 받고, 부모와 따로 잠자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여러 장점을 고려해 본다면 아기의 발달과 상황에 맞는 수면교육을 선택해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 자료제공
- 한국건강관리협회 서울서부지부
글. 김택선 한국건강관리협회 울산지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소식 2022년 6월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