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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서양천신문사
  • 승인 2023.06.1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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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였으나 한평생 몽사노(夢死老)로 살아간 김시습

조선시대에 여러 천재가 있었지만 금오신화로 유명한 매월당 김시습(1435~1493)만한 천재도 드물 것이다.

 

김진호 원장 서울강서문화원
김진호 원장 서울강서문화원

생후 8개월에 글 뜻을 알았다 하며, 3세에 유모가 맷돌로 콩을 가는 모습을 보고 비도 안오는데 천둥소리 어디서 나는가(無雨雷聲何處動) 누런 구름이 풀풀 사방으로 흩어지네(黃雲片片四方分)’라는 시를 지었다 한다.

5세 때 이미 중용, 대학을 익혀 신동 소리를 들었고 집현전 학사 최치운(1390~1440)이 그의 재주를 보고 경탄하여 시습(時習)’이라는 이름을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에서 따서 지어주었다.

이렇듯 명성이 자자한 다섯 살의 김시습에게 세종시절 좌의정을 지낸 허조(1369~1440)가 찾아와 내가 늙었으니 늙을 노()자를 넣어 시를 하나 지어 달라부탁했다. 이에 김시습은 늙은 나무에 꽃이 피었으니 마음은 늙지 않은 것이다(老木開花心不老)’라고 시를 지어 주위를 감탄케 했다.

결국 김시습의 소문은 세종대왕의 귀에도 들어갔고 세종대왕은 승지를 시켜 테스트 해보게 하였다.

승지는 김시습을 궁으로 불러 이렇게 운을 띄웠다. “동자의 학문은 마치 백학이 하늘 끝에서 춤을 추는 것 같구나(童子之學 白鶴舞靑空之末)”.

그랬더니 김시습은 어진 임금님의 덕은 마치 황룡이 푸른 바다를 뒤엎는 듯합니다(成王之德 黃龍飜碧海之中)”라고 답하였다.

이에 세종대왕은 크게 칭찬을 하며 비단 50필을 선물로 하사했고, 김시습은 그 비단의 끝을 이어 서로 엮은 뒤 허리춤에 묶고 끌고 나갔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렇게 신동 소리를 들으며 자란 김시습에게 시련이 닥쳐왔다. 15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3년상을 치루는 중 김시습을 애닳게 돌봐주던 외할머니마저 돌아가셨다. 결혼을 했지만 배우자도 죽게 되었다.

거듭된 불행 속에 과거시험을 보았지만 낙방하였다. 조선 최고의 천재로 불렸던 김시습이 과거에 낙방했으니 주변은 물론이고 본인 역시 매우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심기일전하여 삼각산 깊숙한 곳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던 중 세조의 계유정난 소식을 듣고 3일동안 통곡했고, 공부하던 모든 서적을 불태워 버리고 설잠(雪岑)’이라는 법명으로 출가하여 전국을 떠돌아 다니게 되었다.

관서 지역을 돌고 24세에 탕유관서록이라는 시집을 만들었고, 26세에 관동 지역을 돌고 탕유관동록, 29세에 호남 지역을 돌고 탕유호남록을 저술하였다.

조선 최고의 천재로 칭송받던 그가, 장래가 촉망되었던 그가 왜 승려로 또는 유학자로 팔도를 유람다니며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녀야 했을까?

아마도 첫째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 외할머니, 그리고 두 명의 부인을 잃은 것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상처가 매우 깊었을 것이다.

둘째는 계유정난으로 인한 왕권의 찬탈 과정과 충신들의 처참한 죽음 속에 대의와 명분을 중시하는 유학자로서 벼슬을 할 수 없는 양심이었을 것이다.

그는 죽으면서 무덤에 몽사노(夢死老)’라 적은 비석을 세워달라 하였다. ‘꿈꾸다 죽은 늙은이라는.

그렇게 좋은 재주를 가지고 태어났으나 한평생 꿈을 펼쳐보지 못한 아쉬움이 담긴 것은 아닐까.

그의 애민의(愛民義)’라는 글을 보면 그의 사상의 기본은 백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계유정난이 없었던 조선의 조정 대신으로 역할을 했다면 백성을 기본으로 하는 선정을 베풀지 않았을까.

 

 

곡식창고와 재물창고는 백성의 몸이요

의상과 모자와 신발은 백성의 가죽이며

술과 밥과 음료수와 반찬은 백성의 기름이고

궁실과 수레와 말은 백성의 힘이요

세금과 물건은 백성의 피다

그러므로 임금이 음식을 받으면

백성들도 나와 같은 음식을 먹는가를 생각하고

옷을 입으면 백성들도 나와 같은 옷을 입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몽사노의 주인공이 쓴 애민의의 한 부분이다. 정치인들이 한번쯤 새겨야 할 글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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