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영산(靈山) 가는 길(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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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영산(靈山) 가는 길(끝)
  • 성광일보
  • 승인 2024.06.1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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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당
소설가
성동문인협회
소설분과장
김근당 소설가

그러나 다시 보니 물은 흐르지 않고 높이 앉아 있는 둥근 형상의 머리에서 은빛이 반짝인다. 새로운 도시를 컨트롤하는 박스가 들어 있는 것 같다.
남자는 광장 한가운데 서서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망설이다 남쪽 길을 택한다. 영산이 있을 것 같은 방향이다. 건물들은 공장이거나 사무실 아니면 아파트인 것 같다. 도로 양쪽으로 높이 솟아 있는 건물마다 넓은 유리창 속에 녹색의 잎들이 출렁거리고 가지각색의 과일들이 매달려 있는 것도 보인다. 천장에서 비추는 엘이디 조명이 녹색 식물들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층마다 사람들이 즐겨 먹는 야채를 기르는 빌딩이 있는가 하면 각종 꽃을 기르는 빌딩, 과일을 기르는 빌딩, 곡식을 기르는 빌딩이 있다. 이곳에 있던 농장을 건물 속으로 넣은 것 같다. 

건물마다 붙어 있는 간판에는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중앙통제실에서 각각의 식물마다 필요한 온도와 습도, 빛의 밝기, 거름의 양을 자동으로 조절해 최상의 품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라고 씌어 있다. 

남자는 길을 잘 찾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에도 농장 지대를 지나 영산에 갔었다. 남자는 기억을 더듬는다. 머릿속에 남아있는 영산이다. 골짜기를 흐르는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정신을 맑게 해 주고 햇빛에 반짝이는 나뭇잎들과 싱그러운 꽃들, 그리고 밤하늘의 별들이 삭막해진 가슴을 적셔 주었다. 생명의 숨결이, 숨죽이던 영혼이 되살아나기도 했다. 그러나 영산은 보이지 않는다. 도로 양쪽으로 줄지어 선 건물들이 영산은 없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연푸른색 또는 연분홍색 건물들은 대부분이 연구실 겸 병원들이다. 병원에서도 연구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정형외과와 성형외과는 물론 인간의 오감을 관장하는 기관들과 모든 장기를 전문으로 연구하고 치료하는 병원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출입문 옆에 붙어 있는 진료 안내를 보니 치료뿐이 아니라 못쓰게 될 장기는 인공 장기로 교체해 준다고 한다.

안과에는 인공눈이 있고, 정형연구소에는 인공 뼈가 있고, 성형연구소에는 인공 피부가 있고, 심혈관   치료에 인공피를 이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자는 적이 놀란다. 사람을 인공으로 다 만들 수 있다는 말 같다. 연구소마다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오고 있다. 남자는 혼란스럽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다른 길은 없다. 좀 더 들어가자 둥근 모양의 커다란 공들을 여러 개 쌓아 놓은 것 같은 건물이 있다. 온통 연초록으로 칠해진 건물에 '성격연구소'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현수막에는 푸른 글씨로 '당신의 성격을 테스트하고 교정하여 드립니다.' 성격은 사람사이의 윤활유입니다. 당신의 성격을 교정하여 Z시에 잘 적응하도록 해드리겠습니다.’라고 씌어 있다. 남자는 그 자리에 멍하니 멈추어 섰다.
“시술을 받으러 오셨지요? 들어가시지요.”

연분홍 옷을 입은 아가씨가 남자에게 말한다. 남자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사모님께서 부탁 전화가 왔었는데요”

여자가 팔을 붙잡아 끌어들이려 한다. 남자는 뿌리치고 앞으로 나간다. 다음 건물은 둥근 돔 모양의 큰 건물이다. 커다란 문 위에 '정신연구소'라고 씌어 있다. 안내 현수막에 '당신의 정신을 검색하고 개조하여 드립니다. 정신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원천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뇌 속의 뉴런을 개조해 보다 완벽한 인간으로 만들어 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남자는 정신이 멍해진다. 뇌를 인위적으로 개조한다고? 뇌는 부모님이 만들어 준 것인데, 그것을 개조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자 들어오시지요, 시술은 아주 간단합니다.” 연분홍 옷을 입은 사내가 남자를 끌어들인다.
“아 아닙니다” 남자가 감짝 놀라 사내의 손을 뿌리친다. 
“부인 되시는 분이 부탁했습니다. 꼭 개조해 달라고,” 사내는 막무가내다. 꼭 그렇게 해야 할 의무라도 있는 것처럼, 남자는 그런 사내를 뿌리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자 또 하나의 사내가 나와 남자를 붙잡는다. 남자는 두 명의 사내를 당해 낼 수 없다.

수술실은 눈이 부시도록 환하다. 남자가 정신을 차리는 사이에 두 명의 젊은 사내들이 합세하여 남자를 번들거리는 스테인리스 수술대에 똑바로 눕히고 손과 발을 고정대에 묶는다. 남자는 꼼짝할 수 없다. 눈에도 검은 안대가 씌워진다.

“잠시만 참으면 됩니다. 수술은 간단하니까요.” 의사가 들어온 것 같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다.
“이제 당신을 쓸데없는 꿈과 환상에 빠지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당신의 정신을 Z시의 신호체계에 맞도록 개조하여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도록 해 드릴 겁니다.”의사가 설명하고 이마 위에 알 수 없는 기계가 설치된다. 머릿속에서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환영처럼 지나간다. 그러나 남자는 이제 어찌할 수 없다. 이마가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정신을 잃었는지 잠이 들었는지 모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알 수 없다.

“이제 끝났습니다.”
의사의 말에 눈을 뜨자 정신이 청명하다. 환상의 세계를 보는 것 같다. 의사도 간호사도 오래전에 알고 있었던 사람들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
“앞으로 생각의 갈등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겁니다.”

의사가 문밖까지 나와 배웅  해 준다. 밖으로 나오자 세상이 새롭게 보인다. 오고 가는 사람들도 오래 사귄 것처럼 생각과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고향도 세나도 까마득히 사라지고 그리움도 슬픔도 기쁨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내를 생각하자 아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느껴진다. 팀원들이 자신을 왜 배척했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남자는 그렇게 다른 사람이 되어 도시로 들어가고 있다.(끝)
※ 그동안 애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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