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RZINE』간행과 발맞춰 전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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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RZINE』간행과 발맞춰 전시 개최
  • 이원주 기자
  • 승인 2024.06.1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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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짐승의 털끝 6.8.-7.7 갤러리 이레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위치한 갤러리 이레에서 중견화가 허진을 초대해 전시를 연다. <가을 짐승의 털끝>이라는 제목을 단 이 전시에는 허진 작가가 세밀하게 묘사한 야생 동물들의 털이 예리함을 발산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단지 짐승의 털을 묘사하기 위해 이 그림들을 그린 것이 아니다. 육중한 야생동물과 인간의 일상용품 사이에 현대인의 모습을 검은 실루엣으로 배치해 거친 자연과 매끄러운 문명 사이에서 부딪치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반추한다. 작가는 전시를 앞두고 이근정 출판 편집자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간 삶의 조건을 깊이 응시하는 시선으로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허진 작가의 생각을 이 응답에서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전시 제목 ‘가을 짐승의 털끝’이 인상적입니다. 작가님의 ‘유목동물’과 ‘이종융합동물’ 시리즈에는 동물이 주요한 도상으로 등장하는데요, 제목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가을 짐승의 털끝’이라는 제목은 《장자》에서 따왔습니다. 《장자-제물편》에 나오는 ‘추호지말秋毫之末’이 그것이지요. 고대 중국의 사상가 장자는 말합니다. “가을철에 짐승이 털갈이를 해서 새로 돋은 털끝보다 큰 것은 천하에 없다.” 가늘디가는 가을 짐승의 털끝도 비교 대상이 뭐냐에 따라 클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장자는 해석의 폭이 대단히 넓은 텍스트입니다. ‘가을 짐승의 털끝’은 상대주의적 관점뿐만 아니라 상호 연결성을 말하기 위한 비유로 해석할 수 있어요. 저는 제 그림 속에 표현된 인간, 동물, 문명의 관계를 성찰적으로 바라보자는 뜻으로 이 제목을 썼습니다.

작가의 그림에는 사람이 마치 픽토그램처럼 표현되어 있고 동물은 크고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또 수도꼭지나 신발 같은 인공물도 사람보다 크게 그려져 있습니다. 인간은 동물과 인공물의 틈바구니에 낀 존재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인간과 동물, 또 인간과 인공사물의 관계를 보는 작가님의 관점은 어떻습니까?

인간은 자연에서 유래했지만 문명을 발달시키고 동물의 제왕인 듯이 군림하면서 자연에 거스르는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동물은 인간의 타자(他者)인 동시에 인류의 원시성을 담은 존재죠. 저는 자연과 문명이라는 이중의 숙명 속에 놓인 인간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동물과 인공물을 함께 묘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린 인공물에는 비행기가 있는가 하면 신발도 있고, 커피캡슐 머신이 있는가 하면 헤드폰도 있습니다. 저하고 친한 어떤 지인은 그 인공물들의 모호성을 지적하더군요. 지나치게 무작위하다는 거죠. 제 성격하고 똑같다며 웃어요. 맞습니다. 제 첫 발표작 ‘묵시’ 시리즈에서 그랬던 것처럼, 저는 우연적인 이미지, 제 머릿속으로 들어온 충동적인 이미지를 수용하는 편입니다. 그것이 작품 해석에 애매함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것 인정합니다. 이런 면이 어떻게 변화해 나갈지는 저 자신에게도 숙제이자 궁금한 부분입니다.

‘동물’ 시리즈를 보면서 저는 신체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바닥’이 없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을 침대에 눕혀놓고 천장에 투사해 보여주는 환등극이 연상됩니다. 방의 벽과 천장을 따라 펼쳐지는 환등극 말이죠. 작가님이 해석한 이 세계에 대한 우화가 입체 공간에 펼쳐지며 지나가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환등극이라고 말씀하시니, 제 생각을 잘 건드려 주신 것 같습니다. 20대 중반에 독일 신표현주의 작가인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작품을 보고 충격 받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작가의 브랜드는 거꾸로 선 인간의 형상이에요. 맨 처음엔 어설프게 느껴졌는데 여러 번 보니 힘이 있더군요. 바젤리츠를 통해서 화면에 자유자재로 대상들을 종횡무진 배치하고 싶다는 계기를 제공받은 거 같아요. 다중시점으로 가상현실 공간에 빨려들어 가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산수화의 화중인물처럼 보는 사람이 그림과 혼연일체가 되어 무중력 상태를 느끼게 하는 게 제 희망이지요.

이번 전시에서는 예전에 작업하신 ‘현대산수도’도 볼 수 있습니다. 큰 화면에 돌산이 여러 개 수묵으로 그려져 있고, 그 주위를 16개의 작은 채색화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작은 채색화들에서는 지금 진행 중인 시리즈의 모티브도 엿보입니다. 동물 형상, 인체 장기의 형상인데요, 산수도 주위에 그런 것들을 배치하신 의도는 무엇인가요?

그 작업은 1999년 금호미술관에서 선을 보였습니다. 큰 화면을 차지한 자연 이미지는 인간이 결국 돌아갈 수밖에 없는 곳을 낙원으로 상정해 그렸어요. 요즘 ‘풍멍’이라는 말이 있는데, 풍경 보며 멍 때릴 수 있는 곳, 치유하는 곳이지요. 작은 화면들은 제 일상생활에서 느낀 것들을 일기처럼 기록하는 기분으로 그렸어요. 그 무렵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자주 갔는데 그런 경험도 반영돼 있지요. 삶을 가능하게 하는 몸은 한순간 부서질 수 있는 매우 연약한 물질이기도 합니다. 인체, 동물의 몸, 그리고 사물들에는 서늘한 품격이 있어요. 그 서늘함은 유한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제 생각을 자극한 것들을 강렬한 컬러로 표현했어요. 저는 늘 다층적인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된 풍경 화면과 작은 화면들이 모여 기이하고 아이러니한 분위기가 연출되길 바랐습니다.

작가의 초기작을 보면 동학군이나 일제 강점기 인물, 군인 등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적잖이 보입니다. 또 목포 앞바다의 섬이나 산수를 그린 그림에서는 자연을 대하는 각별한 태도 또한 느껴집니다. 현재 진행하는 시리즈는 작가님의 관심이 역사를 통과해 더 근원적인 인간 삶의 조건 쪽으로 옮겨졌다고 봐도 될까요?

제 작품세계를 일관하는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탐구입니다. ‘묵시’, ‘환’, ‘부적’에서 과거 시간이 현재에도 지속됨을 보여주었다면, ‘다중인간’을 하면서 인간의 몸과 감각에 집중하고, 4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는 자연에 대한 외경심이 생기더라고요. 결혼 후 광주에서 살면서 주말만 되면 가족과 함께 전국의 좋은 산천을 찾아 여행했던 7년간 경험에서 자연에 눈을 떴다고 할 수 있지요. ‘익명인간’ 작업을 하면서는 주도권을 자연풍경에 넘기고 싶어졌습니다. 불교에서는 삼라만상이라는 말을 씁니다. 모든 것은 다 연으로 이어지고 우주는 그 일체라고 하지요. 저는 가끔 내면세계로 침잠해 우주의 파동을 느낍니다. 그러면 내가 곧 동물이며 또한 사물이며 심지어 남도 나입니다. 제가 계속 작업하는 ‘유목동물’, ‘이종융합동물’ 시리즈 근저에는 하늘, 땅, 인간을 하나로 보는 삼재(三才) 인식이 있어요. 제 그림을 보는 사람이 이 삼박자를 느낀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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