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면 못참지
상태바
맛보면 못참지
  • 송란교 기자
  • 승인 2024.06.13 17: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란교 논설위원
송란교 논설위원

날씨가 제법 따뜻해졌다. 옆의 나라는 넘치는 홍수에 힘들어하고, 바다 건너 어떤 나라는 가뭄과 폭염 때문에 대지가 타들어 가고 있다. 조금만 걸어도 땀방울이 송알송알 배어 나온다. 올여름의 지독한 무더위 예고편인 듯하다. 시원한 냉수 한 잔이 그립다. 그 냉수가 바로 복(福)이 아닐까.

복(伏)날이 다가오면 습관적으로 ‘복달임’ 음식을 찾지만, 복날이 아니더라도 ‘복(福) 드림’ 음식은 지천으로 널려 있을 것이다. 주는 복은 뭐고 먹는 복은 뭐꼬?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시게’, ‘세상 뭘 그리 복잡하게 계산하며 살려고 해. 그냥 주는 복도 복이고 먹는 복도 복이지’.

오늘도 ‘복많이’는 복 받으러 오는 사람에게 복 많이 내주고 있다. 그들에게 빚진 것도 아닌데 이름값 하느라 복을 무한정 베풀고 있으니 이름 없는 천사가 따로 없다. 음식점 이름을 ‘복많이네집’으로 결정한 사장님도 넉넉한 복 많이 받을 것이다. 암튼 날마다 복 타령하는 사람들에게 복 많이 나누어주는 것은 선한 덕을 쌓는 일이라 생각한다. 누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보다 스스로 알아서 베푸는 복이 훨씬 더 효과 만점 아닌가.

생업이나 생계를 밥에 비유한 표현이 제법 많다. 밥벌이·밥줄·밥그릇이 대표적이다. ‘밥값 좀 하라’고 다그치기도 하고 ‘밥심을 내야 일할 수 있다’고 밥 타령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먹고사는데 필요한 밥은 중요하다. 그러니 밥벌이를 찾지 못하고, 밥줄이 끊기는 상황에 직면하면 누구나 감사를 잊고 고달파 한다. 탯줄만 생명줄인 줄 알았는데 밥줄도 생명줄이었구나.

관자(管子)가 중요시했던 것도 먹고사니즘의 해결이었다. 창름실즉지예절(倉廩實則知禮節 : 곡식 창고가 가득하면 예절을 안다), 창름실이영어공(倉廩實而囹圄空 : 백성의 생계가 풍족하게 되며 자연히 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없게 되므로, 따라서 감옥(監獄)은 텅 비게 된다는 뜻)에 그 뜻이 잘 나타나 있다. 함포고복(含哺鼓腹 : 배불리 먹고 배를 두드림. 풍족하여 즐겁게 지냄을 뜻함)을 누리고자 하는 마음도 여전하다.

어느 작가의 글 중에 “아이들과 어떤 도시를 여행하던 중, 이야기의 주제가 그리스·로마 신화로부터 문명의 발생 등이었다. 큰아이가 ‘아, 그러니까 이 도시는 청동기 시대의 모습을 간직했고. 그다음은 여기는 철기시대 유적이 있고, 그다음은…. 아빠, 철기시대 다음은 무슨 시대지?’ “곰곰이 생각하려던 찰나 둘째 아이가 대답하길 ‘뭐긴 뭐야 먹기 시대지. 아, 배고파.’”라는 일화가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달리 생겨났겠는가.

불평불만이 넘치는 감옥과 감사와 기도가 충만한 수도원의 공통점은 일반인으로부터 조금은 격리된 곳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곳에서 고립에 대한 불평불만을 갖느냐 아니면 자신을 성찰할 수 있음에 감사를 하느냐에 따라 골방에 갇힌 어둠의 삶을 살게 되든지 광명의 세상으로 나올 수도 있음이다. 고독한 골방 탈출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감사를 외치며 사는 것이다. 두 사람의 인생을 갈라놓을 수 있는 건 결국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느냐 안 가졌느냐 하는 것이다. 집 나간 행복을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방법도 감사인 것이다. 감사의 생활화, 감사의 외침은 우리들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다.

방문 없는 방에 아이들을 가두어 놓고서 밤새워 방전된 핸드폰 배터리 충전하듯 지식의 급속 충전을 감시하는 부모의 시뻘건 눈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성적 떨어지는 꼴을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날마다 불침번을 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아이들을 지식 공부만을 위하여 독방에 가둔 채 지혜가 아닌 지식 로봇으로 만들면서 감사하는 마음보다 감시가 먼저라고 주장하니 온 동네가 싸늘한 불야성이다.

어느 참치 집 사장님의 ‘맛보면 못참치’라는 상호를 보면서 ‘감사를 맛보면 그냥 못 참지’를 외쳐본다. 빨간 사과 홍옥보다 더 붉게 익어가는 햇살이 구르고 있다. 먹거리 찾아 발품을 부지런히 팔아야 할 귀한 시간이다. 입맛 당기는 맛있는 음식을 찾아 맛 거리로 뛰쳐나갈 시간인 것이다. 불평불만 가득하고 고소 고발만 가르치는 동네에서 ‘복많이네집’, ‘기쁨이네집’은 어디 메쯤 서 있는가? 맛 거리는 배고픔에 둘러싸여 있나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